[인터뷰이 나우]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자서전 펴내...인생행로 편린 모은 회고록 ‘구르는 돌’
[인터뷰이 나우]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자서전 펴내...인생행로 편린 모은 회고록 ‘구르는 돌’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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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서 태어나 예술의전당 사장까지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사진=예술의전당&nbsp;<br>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연임 임기까지 6년을 무난히 재임하고 명예롭게 퇴임한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지난 3월부터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압구정동 윤당아트홀 8층 사장실로 돌아가 예술의전당으로 가기 직전까지 하던 일들을 다시 계속하고 있다. (▶관련 인터뷰 아트홀관장 된 <손오공>의 그때 그 프로듀서 고학찬)

국내 최대의 복합 문화예술공간의 운영책임자로 분주했던 일상을 떠나면서 자그마치 25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멈추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 최근 ‘구르는 돌’이라는 자전적 회고록을 내놓았다. 그는 책머리에 ‘롤링스톤’으로도 일컫는 ‘구르는 돌’을 왜 제목으로 정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학찬 예술의전당 전 사장이 펴낸 ‘구르는 돌-나의 미완성 자서전'

분명한 것은 실제로 나는 늘 구르는 돌이었다는 점이다. 거친 흙바닥도 굴러봤고 아찔한 낭떠러지도 굴러봤고 때로는 짠 내 품은 바닷물에 굴러도 봤다가 아찔하게 흐드러진 꽃밭을 굴러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위대한 철학자인양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을 생각은 없다. 그저 거칠게 굴러온 삶이었다는 것, 그런 내 삶이 싫지 않다는 것, 후회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굴러가는 중이라는 것, 그것뿐이다 .

바텐더도 해봤고 옷장사도 해봤고, 공장 용광로에서도 일했고 학생들도 가르쳤다는 자신에게 누군가가 “도대체 직업이 몇 개였습니까?”하고 질문을 해온다면 그저 잠시 거쳐 간 일을 빼고 대략 25개 직종의 일을 다양한 장소에서 체험한 것을 꼽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TBC동양방송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제일기획,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국장직에 머물었고, 서울예대 추계예대 상명대 한세대 제주국제대 등에서 겸임교수나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재미있는 인생비화의 중요한 부문인 미국 이주생활 중에 ‘구르는 돌’로 열심히 살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도 방송국 일을 할 때가 있었다. 노후에 맞이한 예술의전당 사장 책무는 다양한 그의 재능이 발휘되는 기회의 시간이었고 그는 도랑에 놀다가 큰 냇가로 간 물고기마냥 열심히 ‘구르는 돌’의 열정을 다했던 일화를 이번에 공개했다.

첫 임기 때는 출근하면서 매일 첫 출근이라는 느낌으로 사장실을 찾았고 연임이 되어서는 매일 마지막 출근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의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 직장을 떠나는 기분은 홀가분하다는 소감도 곁들여 놓았다.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한라산을 바라보며 성장한 제주도 출신인 고 사장은 자신의 가슴 속에도 작은 분화구까지 370개를 품은 한라산처럼 수많은 분화구가 있어서 ‘구르는 돌’이 쉬지 않고 구르며 또 몇 개의 분화구를 터뜨릴지 모르겠다는 말을 책머리에 달아놓았다.

그는 틈만나면 글씨(서예)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른다. 스페인 합창단의 내한 공연 때 가창력이 프로수준인 그의 노래 공연이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대학동기인 노주현 탤런트와 평생 절친의 관계를 유지해온 그는 예능적인 소질, 즉 ‘딴따라 끼‘에서 오히려 노주현 친구의 끼를 압도하고 있다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듣는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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