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월화', 강원도립극단이 형상화 한 한국 최초 여배우의 예술혼과 짧은 삶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월화', 강원도립극단이 형상화 한 한국 최초 여배우의 예술혼과 짧은 삶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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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00년의 해’에 연극으로 조명된 이월화(李月華)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배우’로 존재했던 한국 최초의 여배우. 최초의 무성영화 ‘월하의 맹세’에 등장했던 이월화(李月華)가 ‘영화 100년의 해’에 연극으로 조명되었다.

8월 17~18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려진 강원도립극단의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요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연극계에 잔잔한 공명을 일으켰다.

신여성 윤심덕, 나혜석은 영화와 공연예술로 알려졌지만 연극사와 영화사에서나 읽던 ‘전설의 여배우’ 이월화의 예술과 삶을 강원도립극단의 덕으로 보았다는 것은 뜻밖이고 문화계로서도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관극을 하기 전 유민영 교수가 쓴 『한국인물연극사 1』에 실린 이월화 편을 다시 보았다. ‘선구적 대중문예 운동가’ 윤백남, 총리대신과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의 아들 박승희에 이어 기술된 이월화는 “박행(薄幸)한 초창기 여배우”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끼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운명에 무너지고 만 요절 예인이었다.

한 예술가의 삶을 무대 위에 형상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더라도 연극적 특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 희곡 공모에 당선한 한민규 작가는 이월화를 “변혁과 혼돈의 시기에 피어난 혁명의 꽃”이라고 정의했다.

전체 구성에서 인물의 성격이 보다 입체적으로 형상화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작가는 배우로서의 이월화를 명징하게 부각시키면서 그녀의 박행한 짧은 삶을 빛과 그림자로 대비시키고자 한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이월화를 희곡화하면서 “배우로 대접 받지 못하고 기생보다 천대받던 시절에 여배우 시대를 열었던” 이월화의 초상을 각인시키면서, 일제 강점기의 강압을 뚫고 연극과 영화에 매진한 선구자들의 열정을 함께 보여주었다.

특히 이 작품을 요즘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대작으로 만든 동력은 김혁수 예술감독, 양정웅 총괄디렉터와 이치민 연출의 협동에서 나왔다고 할 만하다.

신문화 시대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무대디자인과 영상 활용이 돋보였고, 가야금을 연주하며 당시 멜랑코리한 노래를 부른 이정표가 조성한 아우라도 살았다.

연출에서 아쉬웠던 점은 10분의 인터미션 후에 펼친 후반부에 휴지(休止)가 길고 밋밋해 라스트의 클라이맥스의 감동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 없이 작품을 압축했더라면 극의 밀도는 물론 운명과 대결한 신여성의 예술혼이 주는 인간적 감동이 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연극의 역량이 최근 크게 향상되긴 했으나 ‘월화’가 보여준 ‘강원도의 힘’은 대단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정평을 얻은 강원도립이 춘천에서 초연 후 원주, 경주, 속초를 거쳐 서울 무대에 올린 ‘월화’는 젊은 관객은 물론 연극계 원로들의 관심을 모았다.

80년대에 소련에 갔을 당시 모스크바에서 키예프 국립 발레단의 교환 공연을 본 것이 인상 깊었는데, 강원도의 색채와 정서가 묻어있는 대형연극, 더욱이 초창기 연극사의 주역들의 열정과 암울한 시대를 조명한 지역연극을 서울에서 보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강원도립극단의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월화’를 빛낸 주역들은 배우였다. 특히 타이틀롤을 맡은 문수아는 외모나 연기에서 나무랄데가 없을만큼 필자에겐 신데렐라였고, 일본 감독 왕평렬 역의 박현철이 보여준 파워플하면서도 섬세한 성격 연기도 일품이었다.

초반 윤백남 역 이선휘의 안정된 연기에 강수일 역 김호준의 콤비 연기가 극을 흥미 있게 이끌었다면, 중반 박승희 역 강승우와 최성해 역 정인혜의 찰떡 앙상블이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복혜숙 역 조은의 깔끔하고 에지있는 연기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강원도는 서울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긴 하지만 특유의 강원 사투리가 묻어나는 멀티 배우들(전시연, 김수웅, 정효진, 손상혁, 김희재, 이현아)의 연기 변신과 춤이 받쳐주어 ‘월화’는 한국 연극사와 영화 100년의 시의성 있는 기획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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