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배우 안성기, 한국 영화와 함께해온 62년 배우 외길 "배려와 겸손, 그리고 연기라는 한 우물"
[인터뷰365] 배우 안성기, 한국 영화와 함께해온 62년 배우 외길 "배려와 겸손, 그리고 연기라는 한 우물"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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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혼열차'로 5살에 데뷔 후 올해 데뷔 62주년
-영화 '사자'로 구마 사제 역 맡아 연기 투혼..."라틴어신 위해 목욕탕에서도 맹 연습"
-60년 배우 외길...배우 생활의 정답은 "한 눈 팔지 않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영화 '사자'의 배우 안성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5살에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로 스크린에 데뷔한 지 올해로 62년을 맞은 배우 안성기(1952~)는 100년 한국 영화사와 함께 호흡해온 살아있는 영화계 전설이자 거장이다. 

영화계 대선배지만 늘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영화계 안팎으로 배우들의 귀감이 되어온 그는 진정성 있는 연기력으로 탄탄한 신뢰도를 구축해왔다. 데뷔 후 지난 60여년간 구설수 없이, 그의 이름 석자 앞에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초심을 지키며 배우란 한길 만을 묵묵히 걸어온 우직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출연한 작품 수만 약 130여편. 동시대 스크린을 누비던 선배 배우들은 하나 둘 현장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해마다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현역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31일 개봉을 앞둔 오컬트 장르의 영화 '사자'에서 배우 박서준과 투톱으로 영화를 이끄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극 속 그가 맡은 캐릭터는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 '안신부'. 선한 기운과 인품을 소유한 안신부는 김주환 감독이 각본 단계부터 안성기를 염두해 놓고 썼던 캐릭터다. 

극 속 안성기는 악령과의 몸싸움 연기 투혼 뿐 아니라, 촬영이 이미 끝난 현재까지도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수천번 연습한 라틴어 신을 카리스마 있게 소화해내며 극을 이끈다. 

오랜만에 100억대 대작으로 관객을 찾는 안성기는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연륜과 관록이 묻어있는 묵직하지만 따뜻한 말씨, 그리고 재치 넘치는 답변으로 인터뷰 현장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배우로서의 갈증이 여전하다는 그는 "앞으로도 촬영 현장에서 좋은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우 안성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 데뷔 62주년을 맞았습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영화를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도 있고요. 배우로서나, 인간으로서도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하죠. 

-올해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한국 영화 역사 중 반세기 이상을 함께 해온 셈입니다.

학업이나 군대 생활로 공백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네요. 너무나 행복한 생활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죠. 선배님들이 현역으로 활동하신지가 오래됐고, 한국에선 사례가 없거든요. 

그러나 외국에서는 많아요. 저보다 10살 더 많은 로버트 드니로란 할리우드 배우가 영화 '인턴'에서 따뜻하고 매력 있는 인물로 나왔고, 90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감독이자 배우도 활동하고 있지요. 준비를 잘해서 노력한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배우로서의 목표죠.  

(안성기의 데뷔작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다. 그 때 나이 5살. 부친이자 원로 영화인 고 안화영 선생과 동반출연해 '부자출연'이란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배우이자 영화제작자로 평생 영화계에 몸담았던 아버지 안화영 선생은 동문이자 서울대 연극반 출신이었던 김기영 감독과 절친이었는데, 출연 당시 아역배우를 물색하고 있던 김 감독이 안 선생에게 5살이었던 안성기를 출연을 제안해 캐스팅 된 일화는 유명하다. 10대 중반까지 꾸준히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변신했다. 이후 '고래사냥'(배창호·1984), '칠수와 만수'(박광수·1988), '투캅스'(강우석·1993) 등을 통해 1980-9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에도 '사냥'(이우철·2015), '필름시대사랑'(장률·2015), 영화 '사자'(김주환·2019) 등 총 130여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작 '사자'로 많은 관객과 호흡하고 파 

배우로서 갈망 여전 

-개봉을 앞둔 영화 '사자' 이야기를 해볼까요. 악과 선과의 대결을 그린 오컬트란 영화적 장르나 구마사제란 역할은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고 할 만큼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작품을 제안 받고 캐릭터나 장르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영화 '사자'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강력한 악(惡)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7년 개봉해 565만 관객을 모은 영화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전혀 고민 안 했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떠나서 이 영화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큰 영화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죠. 아무래도 큰 영화를 하면 확률적으로 많은 관객들과 만나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구나는 마음이 컸어요. 그동한 작은 영화들을 쭉 해오다 보니 관객들과의 만남이 적은게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그리곤 '안신부'란 캐릭터를 봤더니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티칸에서 온 전문 구마 사제로서의 진지한 모습도 있었고, 중간중간 유머스러움, 따뜻한 인간미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여서 너무 좋았죠. 김주환 감독이 각본을 쓸 때부터 저를 떠올리며 '안신부'란 역할을 제안한 것도 고마웠죠. 특별출연을 했지만, 우리 '최신부'(배우 최우식)도 배역이 '최신부'라고 해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 많은 관객들과의 호흡을 원하는 모습에서 배우로서의 갈망이 느껴집니다.   

그럼요. 갈망이 있죠. 혼자면 외롭죠. 하하.

-이 영화에는 오컬트, 유머, 버디 무비, 히어로물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는데, 어떤 장르인가요.

제 촬영 부분만 봤을 때는 구마에 치우쳐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는데, 후반 액션신을 보니까 조금 더 재미난 영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지함보다는 재미 쪽이 더 강조된 느낌이랄까요. 박서준씨에게서 영웅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처음엔 무서운 영화 쪽에 가깝고,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영화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과 재미난 부분이 잘 혼합되어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사자' 속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 '안신부' 역을 맡은 배우 안성기

 

지금도 입에서 '라틴어' 대사 잊어버리지 않으려 중얼중얼 

40년 이상 체력 관리...안신부 역할 위해 왜소하게 보이려 노력

-악을 쫓는 구마 의식을 할 때 거친 몸싸움도 등장하던데요. 어느 정도까지 액션신을 소화했나요. 

액션이랄 게 있나요. 박서준 씨와 우도환 씨가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부끄럽네. 하하.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땐 부마자와 맞붙는 액션을 떠올렸는데, 그 생각은 첫날 촬영에서 바로 접어야 했습니다. 무술 감독이 "선배님은 그런 액션을 하시면 안됩니다"며 단칼에 자르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아, 나는 '라틴어'로 액션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죠. (웃음) 

영화 '사자' 속 악을 쫓는 구마 의식을 하는 안신부(안성기)의 모습/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라틴어 신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악령을 퇴치하는 신에선 소리도 많이 지르면서 굉장히 세게 나갔어요. 그 부분을 김 감독도 좋아했던 것 같고요. 한 단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모든 라틴어 신에선 한 번도 NG를 내지 않았어요. 김 감독이 언제나 한 번에 오케이 하더라고요. 부족하면 언제든 다시 찍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런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고요. 김 감독도 그 정도까지는 생각을 안 했었나 봐요. 싸우듯이 질러대니까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도 했지만, 다행이다 싶었죠.

-라티어 문장이 굉장히 길던데, 연습은 어땠나요.

제가 잔상이 많이 남아서 무서운 영화를 못 봅니다. 그래서 다른 영화에서 어떻게 라틴어를 소화했는지 비교할 수가 없었죠. 따로 본보기를 삼은 건 없었습니다. 궁금은 했지만 방법이 없었죠.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 4-5개월간 연습을 상상이상으로 많이 했습니다. 목욕탕에서든 어디서든 하루 종일 라틴어 대사를 입에 달고 살았죠. 지금도 입에서 막 나와요. 머리에서 이 대사들이 털어지지가 않아서 야단났어요. 하하. 지금도 멍하니 있으면 그 대사가 뭐였더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점검하고 확인해요.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 잊어버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고요.

예전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에서 피아노 한 곡을 쳐야 하는 신이 있는데, 왼손 한 달, 오른손 한 달 연습을 해서 촬영을 소화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음악방송프로그램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삑사리'도 내가면서 피아노를 쳐본 적이 있죠. 잊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침마다 일어나서 쳤는데, 한 곡만 계속 치니 지치더라고요. 두 곡만 됐어도 번갈아 치면 괜찮았을 텐데. 하하. 그래서 일주일간 손을 놨더니 잊어버렸어요. 일주일만에 끝나더라고요. 그걸 지금까지도 했으면 아휴, 잘했을 텐데. 그때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지 지금도 계속 라틴어를 중얼중얼하는 것 같아요. 날마다 해대니까 이렇게 하면 우리 동네 근처에는 악령이 얼씬 못한다는 자부심은 있죠. 하하. 

영화 '사자' 속 안신부(안성기)와 용후(박서준)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신이 있다면요. 

정지훈 아역배우와 함께 하는 지하실신이 가장 힘들었어요. 화면에서는 안 나오지만, 보이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죠. 일주일 동안 지하에서 촬영을 했는데, 워낙 오래된 곳이어서 청소를 했는데도 불빛을 비추면 뿌옇게 보일 정도로 먼지가 많았어요. 공기가 탁해서 스태프들이 마스크를 쓰고 촬영했을 정도였는데, 그 장면 촬영이 끝나고 저를 비롯한 스태프 80% 이상이 감기에 걸렸죠. 혼났어요. 

-잔상 때문에 무서운 영화를 못 본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악령을 분장한 후배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전혀 안 무섭죠. 무서운 영화는 프레임 밖에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무서운 거니까요. 촬영 현장은 프레임 밖이니까, 스태프나 마이크도 있고 무서울게 하나도 없죠.  

-극 속 안신부는 유머러스한 면모도 있던데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애드리브도 좀 있었죠. 계속 쉬어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 속에 있다가 그런 장면이 나와서 반갑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했던 안신부와 용후의 술 마시는 장면을 위해 맥주 두어 잔을 마신 후 촬영했더니 분위기가 좋았어요. 물론 취하진 않았구요. 하하. 

-영화 속 안신부는 어떤 사람인가요.

영화에서 그러쟎아요. 러브레터도 많이 받았고 한때 잘 나갔다고. 굉장히 믿음이 강한 신부라는 사실은 틀림 없어요. 힘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무장이 잘 되어 있고, 신이 사랑하는 사제입니다. 그 일을 떠나서 재미도 있고 유머도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지요. 주님의 사자(使者: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 신의 계신을 받은 선지자)로서, 선을 위해서 악을 퇴치하는 목표로 살고 있죠. 스승처럼 자기도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죠. 

-실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데. 영화적 접근 방식이 궁금합니다.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구마 쪽 자료를 봐도 영화와 밀접한 관계나 본보기가 되긴 힘들었지요. 그래서 저와 김 감독의 생각으로 풀어나갔어요. 우리 스타일로 만들어나가자 했죠. 라틴어로 크게 질러대고, 구마 기구들도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영화 '사자'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안성기와 박서준의 화기애애했던 촬영 비하인드 컷

-안신부와 용후(박서준)는 부자 같기도 하고, 버디 무비 같은 느낌도 듭니다.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현장은 즐거워야 해요. 촬영은 힘들어도 현장이 즐거워야 현장 가는 맛이 있거든요. 이를 위해선 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시작해야 쉽지, 상대방이 다가오는 건 더 힘들거든요. 박서준 씨에게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바로 알아채고 "선배님"이라 부르더라고요. 배려하고 잘 따라요. 그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화면에서도 나타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체력 관리가 궁금합니다. 

평소 운동을 계속해요. 매일 한 시간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40년 이상을 해왔어요. 개인적으로 배가 나오는 걸 싫어해요.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한 적은 없지만, 운동을 계속 하니까 뱃살이 안 생깁니다. 웨이트도 하고 빨리 걷거나 뛰기도 하고 보통 하는 운동들이죠. 철봉도 스트레칭에 좋아요. 고교시절 올려다 본 친구들이 이제는 제가 조금 내려다 봐요. 나이가 들면 키가 줄어드는데, 계속 운동을 하다 보니 유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영화 속 상처 난 상반신 부위가 드러날 때 왜소해 보여야 할 것 같은 안신부의 체력이 굉장히 좋아보이던데요. 하하.

김주환 감독이 내가 몸이 왜소하고 약하게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이는게 쉽지 않아요. 하하. 영화 '신기전'(2008)에서 세종대왕 역할을 맡을 때도 욕창으로 누워있는 신이 있었는데, 근육이 보여서 어떻게 줄여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었죠. 

배우 안성기

-속편 계획이 있는지요.

관객의 선택에 달린거죠. 많은 선택을 받으면 당연히 속편으로 연결이 되겠지요. 그러면 바티칸에 가고 싶다고 처음에 '떼를 썼던' 그 희망도 이뤄질 수 있을 것 같고요. 하하. 영화 속 용후(박서준)의 격투기 장면이 비록 짧게 등장하지만 영화의 필연성을 위해 미국 LA 촬영을 했듯이 속편에서는 바티칸에서의 안신부의 모습도 보여줬으면 하는 게 저의 희망입니다. 

60년 배우 외길...배우 생활의 정답은

단단한 가정,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촬영 현장 

한 눈 팔지 않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신뢰받는 국민 배우로 불립니다. 실제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구설수가 없는 배우로도 꼽히는데, 자기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했고, 성인이 되고 나선 정답을 알고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유명하고 대단했던 분들이었는데 변화를 많이 겪었죠.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가정이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기라는 것이 허망하는 것도 미리 알았죠. 그(인기) 쪽은 쳐다볼 게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그 순간이다라는 것을요. 

촬영 현장에선 모든 노력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하고, 다른 것에 한 눈을 팔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일을 하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는 사실 등. 이런 몇 가지를 깨우치고 시작했어요. 그러니 다른 것엔 관심이 없었죠. 주변에서 "메뚜기도 한 때야, 벌 때 지금 벌어야해" 이런 얘기들로 휘둘리기 시작하고, 마음이 약해져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타협하게 되면 그렇게 될 수(휘둘릴 수) 밖에 없어요. 

-데뷔 후 어렵거나 좌절했던 순간이 있었는지요. 슬럼프도 겪었나요.

큰 부침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남들이 보기엔 슬럼프 같은 것이 있었죠. 전 그런 시간을 좋아했어요. 오랜만에 나를 다시 돌아보면서 충전하는 좋은 시간이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죠. 그 시간을 잘 보냈을 때는 틀림없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고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보면 슬럼프는 없었던 거죠.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팁을 후배들에게 주자면요.

스스로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생활에 충실하면서 소모가 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바쁜 모습보다는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자꾸 쌓아나가야 하는데 바쁘면 결국 소모가 되거든요. 저 역시 남이 보기엔 슬럼프였지만, 해마다 한 편씩 작품 활동을 했어요. 성적은 안 좋았지만, 그건 제게 큰 실망으로 다가오진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름을 받았을 때 언제든지 현장에 나가서 쓸모가 있고, 요구하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의 모습을 가져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늘 충만해있죠. 김주환 감독도 날 처음 만났을 때 이 양반이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런 느낌을 받았을겁니다. 하하. 자신을 놓지 않고 단단하게 만드는 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내부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연출이나 제작에 대한 계획은 없는지요.

그릇이 틀려요. 배우와 연출자의 생각은 출발점부터 틀린 부분이 많습니다. 혹시 연출을 하려고 하면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대충 달려들면 안됩니다.

-예능 출연에는 관심이 있나요.

예능은 배우에게 독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갈 수도 있지만, 예능 속 캐릭터 잔상이 남으면 영화 캐릭터로 들어가는게 어려울 것 같아요. 인기를 얻은 만큼 배우로서의 부분엔 타격을 받을 수도 있죠. 배우로서 어쩌다가 출연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연이어 출연하는 건 안될 것 같아요. 그동안 몇 번 제안이 오긴 했지만 못한다고 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단편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를 이끄는 집행위원장이자,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 영화계 안팎 일을 도맡으며 영화계 발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영화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영화인이자, 선배로서 한국 영화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영화를 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오락과 재미 쪽으로만 몰리는 게 아닌가 그런 아쉬움과 두려움도 조금 있어요. 영화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고 카타르시스도 있는, 이런 식으로 가야 하거든요. 좀 더 차분해졌으면 좋겠어요. 현실감 없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도 영화의 본연의 모습을 갖춰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독립영화 부분을 좀 더 끌어올려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보 봅니다. 영화의 본연을 갖춘 작품들이 많은데, 여기에 조금 더 자본력이 뒷받침되면 훨씬 볼 만한 영화, 생명력이 긴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해요. 바로 효과가 날지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가 공급되고 사람들도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좋은 관객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독립영화도 하고 상업영화도 해보니 독립영화 현장에 사람이나 물자를 좀 더 투입하면 더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 텐데 아쉬울 때가 있죠. 큰 숙제인 것 같아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익이 나야 할 테니까. 그 지점이 참 어렵죠.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요. 

제가 좋아하는 게 영화이고, 현장입니다. 현장에서 좋은 영화를 계속 하는 것이죠. 이게 저의 행복입니다. 제가 이뤄나가면, 저를 본보기로 또 이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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