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명불허전 보여준 김광보 연출 '그게 아닌데'
[리뷰] 명불허전 보여준 김광보 연출 '그게 아닌데'
  • 정중헌
  • 승인 201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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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소통부재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린 소극장 연극의 진수
'그게 아닌데' 공연 장면/사진=극단 청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7월 12일~28일 혜화동1번지)가 왜 2012년 연극상을 휩쓸고 베스트 작품으로 선정되었는지 수긍이 갔다. 짧지만(러닝타임 70분) 메시지가 강렬했고 극적인 울림이 컸다. 극작, 연출, 연기의 3박자가 맞아떨어진 '웰메이드' 연극임에도 기획사 작품과 달리 수제 느낌이 드는 소극장 연극의 진수를 맛본 기분이었다. 

몇 해 전 김광보 연출(서울시 극단 단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게 아닌데'와 '물고기 인간'을 주저 없이 꼽았다. 불행히도 필자는 그 작품들을 보지 못했다.

검색해 보니 201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한국연극협회가 선정한 그해 베스트 3 안에 들었다.

인터뷰하던 해에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김광보 연출은 '옥상 밭 고추는 왜', '함익' 등을 시민연극으로 발표했지만 이번 소극장 작품 '그게 아닌데'를 보고서 그의 진가를 새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대학로 소극장 연극은 주제나 연기, 관객 수에서 이렇다 할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에 비해 '그게 아닌데'는 소통 부재를 우화적으로 그려낸 이미경의 희곡이 재미있고, 좁은 공간에 테이블 하나로 이야기를 압축시킨 김광보의 연출력이 돋보였으며, 더 이상 이런 앙상블은 없다고 할 만큼 배우 5명의 케미가 완벽했다.

그중에서도 조련사 역을 맡은 윤상화의 연기는 발군이었다. 그가 출연한 '불역쾌재', '미국 아버지' 등을 보았지만 이번 작품은 윤상화라는 배우가 있어 가능했다고 할 만큼 그의 외모나 표정이나 연기가 무대를 압도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 포스터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인 작가 이미경은 상상력도 풍부했지만 우리말의 음운과 말맛, 느낌의 구사가 탁월했다.

'그게 아닌데...'는 부정의 의미보다는 진실이 있다는 뉘앙스가 다분한데 작가는 마치 시조의 운율처럼 아닌데로 이어지는 화술을 빚어내고 있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코끼리가 선거 유세장을 쑥밭으로 만들자  경찰 취조실에서 조련사가 조사를 받는다. 조련사는 비둘기와 거위 때문에 벌어진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형사는 정치적 음모로 엮어가고, 정신과 의사는 성 도착증 환자로 몰아간다. 경박해 보이는 조련사의 어머니는 모든 걸 풀어주려는 아이였다고 황당한 이야기를 떠벌인다. 

조련사는 계속 "그게 아닌데..."라고 중얼거리지만 부조리 연극처럼 대사는 빗나가고 엉킨다. 마침내 조련사가 외친다. 진실은 그게 아니라고. 

김광보 연출은 70분을 단절 없이 하나의 상황으로 끌어간다. 팽팽한 긴장 유지가 관건인데 배우들이 쉼 없이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책상 밑에 들어간 왜소한 몸집의 조련사는 마침내 코끼리로 변신하여 책상 위에서 듀엣으로 코끼리 춤을 춘다. 이 장면이 너무 가슴 아팠다. 엄마(문경희)와 빵을 먹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니 덩치 큰 코끼리(강승민) 옆에서 춤을 추는 작은 코끼리의 몸부림은 더욱 세게 누선을 자극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힘으로 조련사를 다루는 형사(한동규)의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설정된 캐릭터로 온갖 수사를 쏟아내는 정신과 의사(유성주)도 이 연극의 한 축을 잘 받치면서 객석에 이완과 웃음을 주었다.

말이 안 통하면 소리 치게 되고, 그 도가 넘으면 미쳐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라스트 장면에서 조련사가 덩치 큰 배우에게 넌 왜 코끼리가 되었냐고 묻자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아서..."라는 대사가 귓가를 맴돈다. 이런 쫄깃하고 짜릿한 맛에 연극 보는게 아닐까. 

이 무더운 날씨에 더해지는 답답한 현실에서 필자도 더 넓고 거침없는 곳으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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