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설치극장 정미소 마지막 무대 장식한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설치극장 정미소 마지막 무대 장식한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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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석화의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
-돌꽃의 이샹향(理想鄕)이자 공연예술의 요람이었던 설치극장 정미소의 마지막 무대
설치극장 정미소 마지막 무대인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끝난 후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윤석화/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필자는 윤석화 배우를 44년간 지켜봐왔다.

1975년 민중극단의 '꿀맛'으로 데뷔해 '신의 아그네스'(실험소극장)로 선풍을 일으키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산울림소극장)로 관객을 울리고, '마스터클래스'(LG아트센터)에서 당당했던 그를 기억한다. 무엇보다 그가 연출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역동적 감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배우로서 뿐 아니라 인간 윤석화의 인생도 곁에서 보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굴곡도 많았다. 캐스팅에서 배제되어 슬피 울던 밤, 매스컴에 난타당하며 아파하던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일어섰다.

윤석화는 배우 그 이상의 아티스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는 기획자이자 경영자이고 디자이너이자 설치미술가이며 대단히 능력 있는 연출자이기도 하다.

아티스트 윤석화의 전성기는 1990년대다. 자신의 이름(石花)에서 따온 돌꽃(실제로 깊은 산 바위에서 자라는 풀꽃이 있다)으로 돌꽃컴퍼니를 설립했다. 1999년 음악전문지 월간 '객석'을 인수해 종합예술지로 발행했고, 방송대 뒤 3층 건물을 확보해 설치극장 정미소와 갤러리를 만들었다.

필자는 기억한다. 한 건축가와 의기투합해 낡은 공중목욕탕 건물을 부숴 설치극장을 만들 당시 석화의 열정을, 갤러리도 있고 커피샵도 갖춘 예술 공간으로 가꾸려던 석화의 꿈을, 2-3층에 예술단체가 둥지를 틀고 여기서 우리 문화가 꽃피우기를 염원하던 원대한 석화의 이상을...

17년간 공연예술의 요람으로 불렸던 설치극장 정미소.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사진=정중헌 

실제로 지난 17년 동안 바위처럼 척박한 풍토에서 작은 풀꽃이 피어났다. 박정자의 '19 그리고 80', 한태숙의 '서안화차' 등 정극과 실험예술, 전시회와 예술인 행사들이 정미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설치극장 정미소는 돌꽃 윤석화의 이상향이었고, 공연예술의 요람이었다. 깊은 산 바위에서 돌꽃이 피듯 이곳에서 예술 인재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예쁜 꽃들을 피워냈다. 곡식을 빻아 먹거리를 만드는 정미소처럼 정제된 작품으로 우리의 정서를 채워주었다.

이제 설치극장 정미소가 사라진다니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돌꽃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한 배우의 유토피아였고 가난한 예술인들의 요람이었던 방앗간의 동력이 멈춘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아픔이자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안타까움이 열정으로 불타오른 무대였다.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 중인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 시대의 배우 윤석화가 자신의 이상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올린 이별의 무대여서 연기하는 배우도, 관람하는 관객도 마음이 헛헛했다. 그래서 더욱 절절하고 애틋했다.

아무리 100세시대라지만 60대 중반의 배우가 90분간을 쉴 새 없이 대사하고 연기하고 노래하며 독무대를 이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화는 책 한권 분량의 엄청난 대사량을 물흐르듯 풀어내며 감정을 실어 나르고 고음도 마다않는 호소력 짙은 허스키한 노래로 관객을 압도했다.

설치극장 정미소 마지막 무대인 배우 윤석화의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 장면/사진=들꽃컴퍼니

이 같은 1인극은 윤석화의 장기(長技)이며 윤석화의 매력이다. 수십년 전 미국 뉴욕의 야외 카페에서 윤석화를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는 5시간 넘게 혼자 이야기 하며 웃고 울었다. 그 수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런 저력이 있기에 모노드라마를 해내는 것이다.

필자는 1992년 초연 당시 산울림소극장에서 초연을 보았는데 윤석화는 그때 눈물을 쏟았던 그 대목에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번에도 라스트에 북바치는 감정을 주체 못해 훅 하고 터지고 말았다.

공연을 마친 윤석화는 “30~40년을 지켜본 팬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북에서도 정미소의 머슴을 자청했던 그가 정미소를 내려놓으며 “연극배우로 산다는 것이.... 엄숙하고 고된 꿈이며 눈물겹도록 서러운 꿈”이라고 토로했다.

그만큼 윤석화는 여리고 감성이 풍부하다. 혹자는 윤석화의 화술이나 목소리가 연극배우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필자는 “윤석화란 배우는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만드는 노력형 연기자”라고 신문에 썼고 그의 공연 프로그램에도 썼다.

17년이 흐른 지금 윤석화는 더욱 곰삭고 노련해졌다. 노래와 춤에서도 그는 자기만의 매력을 물씬 풍겼다. 60대라고 하면 믿기지 않을 에너지에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호소력이 더해져 엄마의 마음이 더 선연하게 부각되었다.

아놀드 웨스커의 이 작품은 윤석화에 의해 세계 초연되었는데 작가가 2012년 희곡을 수정하고 가사를 붙인 노래도 새로 선보였다. 윤석화는 2020년 영국 런던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계획임을 밝혔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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