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끝나지 않은 140년 전의 ‘논쟁’...연극 ‘인형의 집, Part 2‘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끝나지 않은 140년 전의 ‘논쟁’...연극 ‘인형의 집, Part 2‘
  • 주하영
  • 승인 20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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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 루카스 네이스(Lucas Hnath) 극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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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형의 집 Part 2‘ 콘셉트 컷. 토르발트(박호산)와 노라(서이숙)./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1931년 여성참여협회 강연에서 ‘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보다 작가로 먼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엄청나게 “저렴한 종이 값”으로 인해 가족의 돈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가족의 평판을 떨어뜨리지 않는 “무해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작용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유령’과 싸워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말한다.

울프가 “가정의 천사”라 부르는 유령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의 바람과 요구에 맞추어 선택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문화로 습득된 ‘여성의 코드’이다.

“여성은 언제나 매력적이어야 하며, 화해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하는 ‘가정의 천사’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없었던 울프는 “그녀는 가상의 존재이지만 실체보다 환영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완전히 그녀를 해치웠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녀가 다시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울프의 이러한 진술은 시대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 온 사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대변한다.

그녀는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재능을 발휘하는 모든 기술과 직업 분야에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의 무대. 루카스 네이스는 '토론과 논쟁의 공간'으로서의 무대를 강조한다. 딱딱한 나무의자 몇 개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소품이 없는 무대는 인물들의 관계가 드러내는 감정의 '거리'에 따라 의자가 놓이는 방향과 거리가 달라진다. 또한, 인물들이 '쌍'을 이루며 논쟁의 상대를 달리할 때마다 천장에 달린 '이름판'에 불이 들어온다./사진=LG아트센터

LG아트센터에서는 페미니즘의 시작이자 전 세계에 ‘노라’라는 이름을 알린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1879년 극 ‘인형의 집‘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인형의 집 Part 2‘의 막바지 공연이 한창이다.

2017년 미국 언론의 호평 속에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으로 주목을 받았고, 무려 토니 어워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뿐 아니라 27개의 극장을 휩쓸며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상연된 연극”으로 꼽히는 ‘인형의 집 Part 2‘는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최신작이다.

2016년 ‘크리스천스‘(The Christians)로 오비상을 받으며 ‘종교’를 둘러싼 믿음과 신념의 문제를 제기했던 네이스는 2017년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노라”를 가정하여 ‘결혼’이란 제도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와 문화, 자유, 그리고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질문들을 이어나간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노라'역의 서이숙 배우와 '토르발트'역의 손종학 배우./사진=LG아트센터

네이스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뉴욕의 한 아방가르드 극장에서 “도마뱀의 꼬리를 달고 있는 7명의 배우”에 의해 연기되는 ‘노라’를 보게 된 후부터 꽤 오랫동안 ‘인형의 집‘의 후속편을 쓸 생각을 해왔음을 밝히며, 구체적인 출발점은 2014년 크로아티아로 여행 중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형편없는 번역본”이었다고 설명한다.

엉망인 대사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옮기던 작업은 일종의 ‘각색’처럼 변해갔고 네이스로 하여금 극본을 계속 발전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네이스는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더 뉴요커‘를 통해 자신이 ‘여성’이 아닌 이상 “무엇이든 놓친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러 배우들과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었음을 피력했다.

그는 워크숍 과정에서 집을 나간 ‘노라’의 삶을 묻는 질문에 모든 배우들이 ‘매춘’이나 ‘감옥’, ‘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정반대로 ‘작가로의 성공’을 그리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19세기 노르웨이의 이혼 법률과 결혼의 역사, 입센의 드라마투르기와 같은 책들을 섭렵한 네이스는 여러 학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의 저자 토릴 모이가 제안한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견인’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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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노라'(서이숙)에게 '문'을 열어주는 유모 '앤 마리'(전국향)./사진=LG아트센터

‘인형의 집 Part 2‘에서는 8년이라는 결혼 생활에 자리한 ‘거짓과 위선, 허상’을 깨닫고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교육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집을 떠났던 노라가 남편 토르발트가 제출하지 않은 ‘이혼신청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년 만에 집으로 되돌아온다.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결혼한 여자’에게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사업을 하고, 다른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한” 노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던 자신의 정체를 밝혀 ‘사기죄‘로 고소하고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망쳐버리겠다는 한 판사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르발트의 ‘이혼 신청’이 매우 다급함을 토로한다.

때마침 서류를 깜빡 잊고 출근했던 토르발트가 집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여전히 노라에게 화가 나 있다. 남자가 이혼신청을 할 경우,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여자가 이혼신청을 할 경우, 남편이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음을 증명해야 하는 법률은 노라로 하여금 토르발트가 자신의 삶에 드리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청하도록 만든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노라'(우미화)를 위해 자신이 '이혼 신청서'를 제출했음을 말하는 '토르발트'(박호산). 하지만 노라는 토르발트의 '도움'을 거부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밝히고 또 다시 세상과 싸울 것을 '선언'한다./사진=LG아트센터

하지만 토르발트는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을 망쳐버린 노라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노라는 유모 앤 마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앤 마리는 자신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 노라의 ‘이기심’을 비난하며 당장 돌아갈 것을 권한다.

결국 노라는 이혼 신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오랜 ‘상처’인 딸 에미와 마주하게 된다.

엄마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에미는 자연스럽게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 ‘노라’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 오히려 노라가 ‘사망 신고서 위조’에 동의해 줄 것을 제안한다.

15년 전 ‘공문서 위조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노라는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는 토르발트의 ‘공간’에서 또 다른 ‘각성’에 이른다.

구성은 심플하다. 인물들의 대립과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사들은 흥미롭고, 때로는 쓴웃음을 때로는 폭소를 자아낸다.

커다란 문과 몇 개의 딱딱한 나무 의자만이 차지하고 있는 단출한 무대는 마치 법정이나 토론장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네이스는 희곡 대본의 무대설명을 통해 “공개토론(a forum)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것”과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대사들과 멈춤, 침묵”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할 것을 규정한다.

극은 노라가 집을 떠난 15년 후의 삶이 아니라 노라의 ‘선택’이 각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변화를 낳았는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를 탐색하는 ‘토론의 장’을 열어 보인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오래된 '상처'인 딸 '에미'(이경미)와 직면하게 된 '노라'(우미화)./사진=LG아트센터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토론극(discussion plays)’의 형태를 닮은 극은 앤 마리와 노라, 토르발트와 노라, 그리고 에미와 노라로 쌍을 이루며 마치 노라가 각 인물을 상대로 ‘논쟁 시합’을 벌이는 구성을 이어나간다.

최근 ‘힐러리와 클린턴 Hillary and Clinton‘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 ‘더 뉴요커‘는 “결투(duelling)”처럼 진행되는 관점 경쟁, 날카로운 논쟁과 토론에 주목하며 네이스를 “소크라테스 대화법의 대가”, “조지 버나드 쇼의 제자”라 표현하는데, 이는 쇼의 극작 방식에 대한 네이스의 깊은 ‘관심’에 기인한다.

네이스는 “어떻게 불쾌한 논쟁을 지속시켜 관객들이 의심할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지”에 있어 쇼의 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인정하며, 그러한 방식들이 “그리스 시대의 대화법과 유사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군가와 끊임없는 논쟁을 하는 가운데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또 다른 논쟁”을 벌이면서 한 층위씩 ‘핵심’으로 파고드는 접근법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극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논쟁의 핵심을 찌르는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반론을 제기하는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의견에 동의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순’을 경험한다. ‘모순‘은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고, ‘질문’은 자신의 사고체계를 의심케 한다.

관객들은 ‘감성’을 통해 누군가와 동일시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논쟁에 뛰어듦으로써 동의하고 반박하는 ‘이념 대 이념’의 대결을 벌인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책' 속에 담긴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해 논쟁하는 '토르발트'(박호산)와 '노라'(우미화)./사진=LG아트센터

19세기 말이라는 배경은 의미가 없다. 노라와 토르발트, 앤 마리, 에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과 관점들은 21세기인 현재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충분히 변화하지 못했고, 여전히 고정관념에 갇혀있으며, 새로운 인식의 길은 멀기만 하다.

“문 닫히는 소리”로 끝났던 입센의 이야기는 “문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텅 빈 무대를 채우고 있는 커다란 문은 그 자체로 ‘경계’를 의미한다.

‘문’은 갇힌 공간에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이자 외부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가둘 수 있는 ‘감옥’의 경계로 작용한다.

15년이란 세월동안 다른 세상과 삶을 경험하고 “여자들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들”, 세상이 여자들을 대하는 잘못된 방식과 왜곡된 사고와 같은 것들에 대해 글을 써 온 노라는 토르발트의 ‘공간’에서 변한 것이라곤 자신의 물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세월의 그림자뿐임을 감지한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공연장면. '이혼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구청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돌계단에 머리를 찧는 사고를 당한 '토르발트'(박호산)는 '노라'(우미화)가 쓴 책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표시한다./사진=LG아트센터

네이스는 ‘인형의 집 Part 2‘의 구조를 노라를 키워주었을 뿐 아니라 엄마 없이 남겨진 노라의 세 아이들도 키워준 앤 마리와의 재회로 시작한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난 이기적인 여자’라는 굴레는 언제나 노라의 해방을 논함에 있어 첨예한 갈등을 불러오던 주제였다.

네이스는 노라가 토르발트와 재회하기 전 자신의 아이들을 키워 준 유모 앤 마리와 먼저 재회토록 설정함으로써 결혼과 육아, 여성의 자아실현의 문제를 끌어당긴다.

앤 마리는 전통적인 관점의 시선,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상 속에 품고 있는 관습적 사고를 상징한다.

노라에 따르면, 혼자가 된 여자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에 ‘행운’이 작용한다는 생각은 “가정을 버린 여자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세상에 의해 주입된 사고이다.

사회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해야 할지, 무엇을 옳다고 여겨야 할지를 결정한다.

자유로운 속성의 사랑을 강제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고통스러운 본질”을 지적하고 “구시대의 유물”에서 벗어날 필요를 주장하는 노라를 향해 앤 마리가 말한다.

“도리에 어긋나. 본능에 어긋난다고. 세상만사 다 이치가 있는데 가정을 버리고 제도를 거스르면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20~30년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노라의 예측은 140년에 달하는 시간을 건너뛰고도 도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앤 마리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앤 마리 덕분에 노라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라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 준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노라를 비난하는 앤 마리에게 노라가 묻는다.

“남자가 가족을 떠나면 엄마는 남아서 애들을 지켜야만 하고, 여자가 떠나면 그 여자는 괴물이 되고, 아이들은 버려져 방치되는 건가요?”

자신의 아이들을 떠나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종사한 앤 마리 역시 자신과 같다고 말하는 노라를 향해 앤 마리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나와 노라는 달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다 어린 나이에 죽거나 길에 나가 몸을 파는 것뿐이었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문제는 토르발트와 노라의 관계에 있어서도 논쟁의 고리가 된다. 15년 만에 마주한 노라를 향해 토르발트가 느끼는 ‘분노’는 자신이 먼저 노라를 떠나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버려졌다는 ‘패배감’에 기인한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15년 전 자신이 먼저 '노라'(서이숙)를 떠날 수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회고하며 후회하고 분노하는 '토르발트'(손종학)./사진=LG아트센터

자신이 먼저 노라를 떠날 수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되짚으며 후회를 토로하는 토르발트를 향해 노라가 말한다.

“당신은 기억을 왜곡하고 있어요.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죠. 비난받을 수 없도록. 우리 둘 중 더 옳고 더 나은 사람은 당신이어야 하니까!”

네이스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오래된 담론을 끌어낸다. 여성보다 항상 우월하고자 하고 지배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남성에 대한 비난은 자신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 우월함을 과시하는 남자를 추구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과 상충된다.

15년 전 촉발되었던 갈등은 그대로이며,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를 깨달은 순간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는 대신 “역겨운 것들”을 피해 도망간 ‘무책임’을 비난하는 토르발트를 향해 노라는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음을 꿰뚫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두 사람의 관계와 소통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했던 것은 토르발트의 말처럼 “함께 쓰레기 더미를 헤쳐 나가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이 아버지에 의해, 남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주입된 ‘누군가’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먼저 필요했던 것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었음 또한 분명하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공연장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토르발트'(손종학)를 비난하는 '노라'(서이숙)./사진=LG아트센터

토르발트와 노라의 대립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넘어 세상에 길들여진 개인의 인식의 한계와 새로운 인식의 어려움을 노출한다. 노라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2년이란 세월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보냈음을 말한다.

바느질로 모은 돈으로 장만한 작은 오두막에서조차 세상의 잣대에 기대어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신을 발견한 노라는 “무엇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내 소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토로한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반복해서 드리워지는 ‘유령’의 그림자는 에미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 노라가 분투해 온 길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세상”을 품고 있다는 ‘각성’을 통해 또 다른 논쟁으로 연결된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옳지 않은 길'을 거부하고 새롭게 세상과 직면할 것을 말하는 '노라'(우미화). 노라는 딸 '에미'(이경미)가 살아갈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나쁜 규범"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투쟁'을 시작할 것을 공표한다./사진=LG아트센터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게 될 때 더욱 사회의 ‘거짓말’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는 노라의 말은 딸 에미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엄마가 부재한 가정의 아이가 겪게 되는 정서적, 현실적 불안은 ‘결혼’을 통해 서로 ‘구속’하고 ‘강제’하는 관계 속에서 안주하고픈 갈망을 불러온다.

노라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그 어떤 사회의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한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엄마가 부재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역할을 일부 계승해야 했던 딸은 자신에게 정상적인 ‘가정’이 무엇인지, ‘결혼’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한다.

에미의 논리 또한 지극히 일리가 있지만 결국 노라의 과거가 똑같이 반복되는 수순임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노라 역시 엄마가 부재한 가정에서 앤 마리라는 유모에 의해 키워진 딸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어쩌면 앤 마리는 젊은 시절의 노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기 이전의 노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과거는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서 ‘필명’ 뒤에 숨는 방어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책을 팔리게 할 요량으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병으로 죽게 만드는 ‘타협’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모든 진실을 그대로 ‘폭로’하는 대신 난관이 생기자 좀 더 쉬운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토르발트를 찾아온 ‘편법’을 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투쟁해 온 모든 것들이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인식은 노라로 하여금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 공연장면. 자신의 '결혼'이 안전하게 성사될 수 있도록 모두 죽은 줄 알고 있는 노라의 '사망신고서'를 위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딸 '에미'(이경미)를 뒤로 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또 다시 '투쟁'에 나설것을 선언하는 '노라'(우미화)./사진=LG아트센터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여인은 이제 또 다시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공표하고 다시 일어선다.

그녀는 외친다.

“세상은 아직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변하질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언제가 모든 것이 달라질 거란 걸 알아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질 테죠!”

토르발트가 말한다.

“상상이 안 되는군!”

노라가 응대한다.

“살아서 내가 그 날을 볼 수 있기를 바래요!”

노라는 또 한 번 ‘혁명’을 일으키고자 커다란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선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결코 살아서 변화한 세상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은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생각은 충분히 변화하지 못했으며, 앤 마리의 진술처럼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미래’는 남겨질 것이다.

적어도 네이스가 무대 위에 소환한 140년 전의 논쟁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관객이라면 자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00년 뒤 ‘인형의 집 Part 2‘의 후속편을 쓰게 될 누군가는 무대 위에 어떤 ‘논쟁’을 불러오게 될까?

노라가 예측하듯 “미래의 사람들”은 “저 시대의 사람들은 쓸데없이 스스로를 고문하는 제도 속에 갇혀 살았네!”라고 말하며, 완전한 ‘자유’ 속에 살아가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28일까지 LG아트센터.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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