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무대에 오른 사법부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무대에 오른 사법부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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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고발 사회극...목적이 연극성 약화시켜
-신평 변호사의 동명 원작을 신성우 작가가 희곡화
신성우 극본, 박장렬 연출의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포스터/사진=극단 청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이제 우리 사법부가 연극무대에까지 올랐다. 법으로 심판을 내리는 법원이 연극으로 심판을 받는 현실에서 관객은 배심원이 되는 셈이다.

김용선 배우의 초청으로 신성우 극본, 박장렬 연출의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4월 19일~5월 19일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를 관람하며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생경했다. ‘사법농단에 맞서는 현실 고발극!‘이라는 구호를 달긴 했지만 신평 변호사의 책 제목을 그대로 옮긴 제목 자체가 연극적이기 보다는 정치 사회적 속내를 너무 직설적으로 드러낸 감이 없지 않아서였다.

원작자 신평은 1993년 돈 봉투가 오가는 사법부의 비리를 고발해 ‘내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한 현직 변호사이다. 일기 형식의 원작을 신성우 작가가 희곡화했는데 제목처럼 내용이나 메시지가 원색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각색했다.

작품의 주인공인 변호사 신평호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 받는 자신의 소송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해고 노동자의 사건을 맡는다. 동료 사무장과 취재 기자가 가세해 법원과 맞서보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어버린다.

이 정도의 줄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 얼마든지 있어왔는데 연극에서는 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까?

우선 정권 교체 후 사법부의 적폐와 농단을 바로잡겠다며 지난 정권의 사법부 수장을 구속했으니 법원을 법정에 세웠다는 제목은 현실적으로 맞는지도 모른다. 기획의도에도 “사법개혁에 대한 의미와 질문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했으니...

문제는 어떤 소재나 제목도 연극에 담아낼 수 있지만 무대에 올리려면 연극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요소보다 직설적인 메시지가 앞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당한 판결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해고 노동자의 변호를 맡아 법원과 맞서 보지만 힘에 부쳐 좌절한다는 줄거리에 사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판사가 돈과 권력으로 회유하려 든다는 픽션을 가미해 법원을 법정에 세우기로 결심했다는 줄거리는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이 연극을 통해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되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문제,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잃은 판결의 사례를 적시한 것은 시의에 맞았고 관객 입장에서 공감이 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사법부의 인식은 개선되어야 하고, 사법정의가 바로 서도록 사법부 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없지만 사법부 자체를 법정에 세우자는 제목은 연극이니까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법원을 법정에 세우자는 주장으로 연극이 끝났다는 점이다. 연극적으로는 다소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 이상을 무대에 형상화했다면 연극의 영역을 넘어 버렸을텐데 ‘법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선에서 멈춤으로서 연극성을 살린 것이다.

작가 신성우는 일기 형식의 원작을 각색을 통해 연극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해고 노동자 경중이 딸과 통화하고 토끼 모자를 써보는 모습은 딱딱한 무대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이 같은 사회극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느냐는 연출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필자는 이 공연의 내용이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강하게 표현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 중 첫째가 연기자들의 연기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인공 신평호 역을 맡은 맹봉학의 연기는 필요 이상 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와 닿으려면 연기가 보다 진솔해야 하는데, 연출자나 배우가 그 메시지를 강렬하게 색칠해 버리면 오히려 관객의 공감대는 약해진다는 것을 객석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유독 신평호라는 캐릭터는 강렬하게 연출했으나 다른 배역들은 진지한 연기를 펼쳤다. 판사 역 김용선, 사무장 역 정종훈, 기자 역 김지은, 경중 역 문창완의 연기 앙상블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사회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중견 배우 김용선이 맡은 판사 캐릭터는 여배우들이 탐낼 만큼 개성도 강했고 매력도 있었다. 유리천장을 깬 사법부 중진 판사가 지닌 카리스마, 권력의 속성, 권위 의식 등을 온몸으로 표출해야 하는데 김용선 배우는 사법부를 상징하는 메신저 역할을 ‘엣지‘ 있게 해냈다.

의상이 보다 세련되었다면 개성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다소 아쉬웠다. 해고 노동자 경중 역을 맡은 문창완 배우의 연기가 살아있어 돋보였다. 후반부에 다소 긴장이 풀렸으나 중반까지 대사나 감정처리가 자연스러웠고 에너지를 수반해 생생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사무장 역 정종훈은 다소 과장된 감은 없지 않으나 오히려 그렇게 설정한 캐릭터가 극 전반에 활력소 역할을 했다. 기자 역 김지은도 정형화된 기자 틀을 벗어나 인간미가 있는 개성 연기를 보여주었다.

극의 첫 부분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캄비세스 왕의 심판‘은 섬뜩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다비드가 1498년에 그린 벽화로, 고대 페르시아 황제 캄비세스가 부패를 저지른 판사의 살가죽을 도려내는 장면과 그 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은 후임 판사 아들까지 보여주고 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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