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21세기에 살아남기
복잡한 21세기에 살아남기
  • 김세원
  • 승인 200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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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기계는 언제쯤 발명될까?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하이테크 기업의 천재 공학자 '마이클 제닝스'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극비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가로 엄청난 금액의 보수(Paycheck)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기업기밀 유지를 위해 프로젝트 기간 동안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는 조건이다. 그러나 3년간의 프로젝트를 마치자 엄청난 금액의 보수 대신 총알, 클립, 기밀구역 출입증 등 영문 모를 19개의 물건이 담긴 봉투가 주어진다. 봉투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기억이 지워지기 전의 제닝스 자신.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위협 속에 제닝스는 이 사건이 단지 보수만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한다. 제닝스는 동료이자 연인인 레이첼의 도움을 받아 과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제닝스는 자신이 주관한 프로젝트가 개인의 미래를 보여주는 기계 제작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봉투에 붙은 우표에 그려진 아인슈타인의 눈 속에서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말살되는 인류의 끔찍한 미래를 본다. 자신이 개발한 미래 예측기가 바로 인류를 핵전쟁으로 몰아넣는 장본인임을 알게 된 제닝스는 미래 예측기를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얼마 전 케이블 TV로 영화 <페이첵>을 보았다. 분주함 때문에 극장에 개봉했을 때 보려했으나 놓친 영화였기에 잃어버린 것을 찾은 듯 한 반가움에 처음부터 끝까지를 볼 수 있었다. 영화 <페이첵>은 대부분 SF영화가 그렇듯, 강인한 의지와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인류의 파국을 막아내는 해피엔드로 끝났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SF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영화가 끝난 뒤 현실로 돌아왔을 때 일상의 안온함과 평화로움에 새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해자


‘드라큘라’ ‘늑대인간’ 같은 고전적인 공포 영화는 관객을 공포로 몰아가는 가운데서도 마늘, 십자가, 은말뚝, 은탄환 같은 나름의 반격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비는 베푼다. ‘양들의 침묵’ ‘레드드래곤’ ‘한니발’처럼 식인습관을 가진 연쇄살인범의 이상심리를 그린 영화들도 피해 대상자의 범위를 한정시키거나 가해자의 행동반경을 제한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딥 임팩트> <인디펜던스 데이> <우주전쟁>등 요즘의 SF영화가 각종 특수효과로 실감나게 그려내는 재앙은 전 지구적이어서 어느 누구도 재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터미네이터>의 사이보그 팔이나 <페이첵>의 미래예측기, <여섯 번째 날>의 인간복제공장처럼 인류 파멸을 불러오는 존재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발명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설적이게도 위험방지를 목적으로 제작된 시스템이나 설비가 오히려 인간을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실제로 2004년의 급성중증호흡기질환, 지난해의 쓰나미홍수와 대규모 지진같은 천재지변과 자살 폭탄 테러, 인종폭동 같은 인재(人災)가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터지면서 SF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던 인류 파멸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재앙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재앙의 원인제공자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이 국경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복잡계 이론과 재앙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할수록 재난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진다는 사실이야 말로 문명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물리학에서 시작돼 생물 공중보건 경제 경영 사회 등 전 학문으로 파급되고 있는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종모양의 정규분포 보다는 소수의 행위자나 거점(허브)를 통해 연결고리가 급격히 짧아지는 멱함수(로그)분포를 취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를 설명하는 지니계수, 20%가 나머지 80%를 이끌어간다는 파레토 법칙역시 멱함수 분포를 따르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천재 과학자 알버트 바라바시는 세상의 모든 개체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네트워크(network) 개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세포의 구조부터 바이러스의 확산,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 항공망, 인간관계, 행운의 편지까지 네트워크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링크들의 꾸러미인 각각의 노드가 무작위로 연결돼 격자모양을 형성하는 고전적인 네트워크이론과는 달리 실제 네트워크는 소수의 허브에 노드가 집중되는 항공노선도 모양을 하고 있다. 63억명 인류의 어느 누구와도 여섯 단계를 거치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이 클러스터를 단위로 링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몇 단계만 거치면 모두가 서로 연결되는 좁은 세상에서는 위험요소 역시 짧은 시간에 증폭되어 전체로 파급되는 네트워크 도미노가 발생하기 쉽다. 상하이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며칠 뒤 브라질에 태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네트워크의 한 쪽 구석에서 발생한 미세한 변화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예기치 못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성장, 발전해가며 외부의 충격에 대해 면역력을 키우기도 하지만 핵심 허브 몇 개가 파괴되면 네트워크 존재 자체가 위험에 빠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좁아진 세상, 불확실한 미래


재난을 다룬 SF영화를 즐겨 보는 부작용으로 ‘사고 공포증’을 얻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갑자기 정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비행기에 탑승해 옆자리 승객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으면 계기 고장으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린 시절, 적십자연맹(RCY)이나 걸스카우트에 가입하면 바다나 강에 빠졌을 때,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같은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일러줬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씩 참가해야 했던 민방위훈련도 ‘경계경보, 공습경보, 화생방경보의 식별과 대처법’을 일러주고 가상훈련을 실시하는 재난예방책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작은 실수가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전파 확산되면서 엄청난 재앙으로 증폭되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정규분포가 아닌 멱함수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해커 한 사람에 의해 미국의 국가방공망 전체가 뚫릴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물은 섭씨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수증기가 된다는 고전 물리학의 법칙이 항상 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임계점을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본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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