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록된 역사를 개인의 역사로 되짚은 이보람 작가의 '두 번째 시간'
[리뷰] 기록된 역사를 개인의 역사로 되짚은 이보람 작가의 '두 번째 시간'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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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작가 이보람의 시선과 배우 강애심의 연기가 돋보인 창작극
김수희 연출의 연극 '두 번째 시간' 콘셉트 컷/사진=서울문화재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김수희 연출의 '두 번째 시간'은 민감한 소재를 섬세한 여성들의 감성으로 진지하게 풀어낸 초연이다.

연극을 자주 보면서 아쉬운 점은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좀 설익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우리 속내를 조명한 작품을 보고 싶었다.

3년 전 국립극단에서 김수희 연출의 '소년 B가 사는 집'으로 접한 이보람 작가는 껄끄럽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우리 시대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관객과 소통하려는 신예로 각인되어 있다.

그가 이번에 택한 소재는 독재정권 시절 유명 인사의 의문사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도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진실을 캔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이보람 작가는 그 유명인 부인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짚어보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는데 그 시각이 신선했다.

프로그램에서 밝힌 것처럼 “의문사로 죽은 남편을 둔 부인의 삶을 통해 기록된 역사에서 벗겨난 보통의, 평범한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꾸며낸 것이다.

연극 '두 번째 시간'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이 작품에서 다룬 의문사로 죽은 남편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민주화 투사로 유신체제를 반대하던 중 1975년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장준하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가상의 인물과 사건을 가미해 한 여인의 두 번째 시간을 포커싱했다.

미망인은 정부가 제공한 공간에서 최소한의 복지로 살면서도 언젠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현관문을 열어 두고, 이제나 저제나 사건이 재조명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로 산다. 누군가는 화해를, 누군가는 망각을 권하지만 화해할 수도, 잊을 수도, 떠날 수도 없는 한 여인의 삶을 창의적으로 그려냈다.

현실대로라면 숨이 막히지만 작가는 또 다른 상처 받은 사람들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 치유를 꾀하고자 했다.

이처럼 무거운 소재이다 보니 재미까지 기대하기 어려운데 작가와 두 번째 호흡을 맞춘 극단 미인의 작가 겸 연출가 김수희는 김재건 강애심이라는 중량급 연기파 배우를 합류시켜 이야기를 현실로 녹이면서 상흔을 헤집기 보다는 보듬고 치유하는 쪽으로 무대를 이끌어 잔잔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특히 작가 이보람과 연출가 김수희의 합이 가장 두드러진 요체는 해골이었다. 뒤통수 부분이 함몰된 실물 크기의 해골은 과거라는 시간과 의문사라는 주제를 응축한 상징으로 백 마디 설명보다 유효한 압축적인 이미지로 작용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윗 층의 주거공간을 메인으로 하면서 드라마센터의 너른 무대와 객석을 활용한 연출의 동선이 갑갑한 소재의 숨통을 터주었다.

연극 '두 번째 시간' 커튼콜 무대에 오른 김재건, 강애심 배우/사진=정중헌

이보람 작가-김수희 연출의 연장선상에 배우 강애심이 있다고 할 만큼 이 작품은 부인 역할을 맡은 강애심의 무르익은 연기가 빛을 발했고, 초연의 허점을 안정적으로 커버해 주었다.

노인 연기에 정평이 나있는 강애심은 이 작품에서 차분하면서도 결기가 있는 여인의 삶을 잘 구현해냈다. 전반부에서 무게감 있는 배우 김재건이 등장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안정감있게 풀어냈다.

'크리스천스'에서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보였던 김상보가 아들 역을 잘 해냈고, 며느리라고 주장하는 젊은 여서 역의 김이라나의 발랄한 연기도 극의 압력을 덜어내 주었다.

초고를 거쳐 낭독공연으로 다듬고 공연으로 이어지는 창작극 과정도 바람직했지만, 금기시했던 소재들을 뭔가 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으로 풀어내려는 작가 의식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11월 25일까지 남산예술센터.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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