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신의 아그네스', 어머니 추모하며 무대에 선 故윤소정 딸 오지혜의 혼신 연기
[리뷰] 연극 '신의 아그네스', 어머니 추모하며 무대에 선 故윤소정 딸 오지혜의 혼신 연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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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오지혜, 어머니 윤소정에 이어 리빙스턴 박사 역 맡아 혼신의 연기력 뿜어내
-'신의 아그네스' 세 배우의 멋진 앙상블과 안정된 작품해석...중년층 관객 인기 몰이
사진 연극 '신의 아그네스' 배우 오지혜 포스터 / 제공 벨라뮤즈㈜
어머니 故윤소정에 이어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에 오른 딸이자 배우 오지혜. '신과 아그네스' 포스터/사진=벨라뮤즈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좋은 작품을 더 좋게 만든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공연 중(10월 5~31일)인 '신의 아그네스'를 관람하고 인터넷에 올린 한 관객의 촌평에 필자도 공감한다. 1980년대에 초연 후 여러 배우의 공연을 보았지만 이번이 전반적으로 앙상블이 안정되고 작품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1983년, 배우 윤석화가 이 희곡을 들고 올 때를 필자는 기억한다. 뉴욕에서 이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윤석화는 어렵사리 희곡을 구해 와 들떠 있었다. 아그네스 역을 자청해 작품을 실험소극장에 무대에 올리자 관객들이 개막 초부터 운니동 돌담길에 길게 줄을 섰다. 100석 조금 넘는 소극장은 연일 만원을 이뤄 당시 최장기 공연, 최다 관객동원을 기록했다. 1992년 재공연도 주목을 모았다.

필자는 대학 선배인 오현경 배우를 존경해 왔고 부인 윤소정 배우와도 인연이 깊다. 스포츠조선 부장 시절, 연극 담당 기자가 모진 기사를 써서 은퇴 소동까지 빚은 악연도 있지만, 필자는 70을 넘어서도 빛을 발하는 그의 정갈한 연기에 박수를 보냈고 우리의 관계도 호전됐다.

2016년 연극 '어머니'의 히로인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선 빨간 원피스의 윤소정은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6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올 2월 '3월의 눈' 공연 중에 대학로에서 만난 오현경 배우는 허허로워 보였다. 몇 개월 전 대학로빈대떡 집에서 원로들과 막걸리 대화를 나누던 중 이 부부의 딸 오지혜 배우와 조우했는데, 어머니 추모 공연으로 '신의 아그네스'를 연습중이라고 했다. 윤소정은 2011년 10월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이승옥 선우와 공연하면서 리빙스턴 박사 역을 했었다.

그 리빙스터 박사 역을 이번에 딸 오지혜가 맡았다. 원장 수녀 미리암 역은 전국향이, 아그네스 역은 오디션으로 뽑은 신예 송지언이 했다. 새로운 조합이지만 그 앙상블이 기대 그 이상이었다. 

특히 어머니를 추모하며 무대에 선 오지혜는 진지했고, 작품의 맥을 짚었을 뿐 아니라 무대에서 커 보일 정도로 혼신의 연기력을 뿜어냈다. 그것은 윤소정과는 또 다른 오지혜의 개성이었다. 여기에 연기파 전국향이 작심한 듯이 오지혜와 용호상박의 연기를 펼쳤다.

/사진=벨라뮤즈 
연극 '신의 아그네스' 콘셉트 컷/사진=벨라뮤즈 

절제된 연기에 또렷한 화술로 맞붙은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팽팽한 긴장을 자아내면서 신과 인간의 극명한 콘트라스트를 보여주었다. 280대 1의 경쟁을 뚫고 무대에 선 송지언은 신인다운 때 묻지 않은 연기, 그러나 야무진 대사와 에너지 넘치는 연기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세 명의 여배우가 뿜어내는 연기 앙상블은 90분 동안 관객을 몰입시켰고,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여기에 연출의 섬세함도 큰 몫을 했다. '장수상회' 포스터에서 이름을 보았을 뿐 필자에겐 생소한 연출가 박혜선은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고 연극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어디에 방점을 찍고 어떤 대목을 피크로 할 것인지, 강약의 조절이 연극의 흥미를 더욱 높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고 배우들의 장점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연출 솜씨가 녹록치 않았다. 종교적 분위기를 살려낸 심플한 무대 디자인도 연기 앙상블과 조화를 이루었다.

좋은 연출, 좋은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더 좋게 만들었다”는 관극 평에서 보듯 존 필미어 원작은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심오하면서도 종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같은 텍스트를 깊이 있게 해석한 연출과 연극은 배우예술임을 보여준 세 배우의 빛나는 연기가 '신의 아그네스'를 다시금 관객들에게 어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아그네스'가 공연 중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는 중년의 여성 관객들이 삼삼오오로 찾아오고 있다. 필자가 본 공연은 일요일 낮인데도 객석이 거의 찼다. 이것은 이 작품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커튼콜 무대에 오른 (사진 왼쪽부터)리빙스턴 박사 역의 오지혜, 원장수녀 역 전국향, 아그네스 역 송지언./사진=정중헌

특히 80년대 초반 여대생으로 운니동 실험소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신의 아그네스'를 보러온 광경은 보기에 좋았고, 좋은 연극은 생명력이 길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수녀가 아기를 낳아 탯줄로 목 졸라 버렸다는 '신의 아그네스'의 줄거리는 익히 알려졌으나 이 작품의 깊이를 어디까지 파들어 가느냐는 연출력에 달렸다.

존 필미어는 추리적인 전개, 최면술을 통한 과거 회상, 리빙스턴의 독백 등으로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특히 수녀원장의 종교적 입장과 정신과 의사의 과학적 입장을 충돌시켜 갈등을 만들고, 트라우마를 지닌 수녀의 억압된 관능과 신비한 종교적 분위기를 대조시킨 기법은 다각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

세 배우에게 고루 비중을 둔 박혜선의 연출과 작품 분석, 연기파 전국향과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오지혜의 혼신 연기, 신예 송지언의 풋풋함이 조화를 이뤄 2018년 판 '신의 아그네스'는 높은 점수를 얻을 만 했다. 오히려 너무 웰메이드 연극인 점이 관극에 지장이 되었다고 할 만큼 근래 드문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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