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日'민단'과 함께한 50여년...재일동포 권익에 앞장서 온 여건이 단장
[단독 인터뷰] 日'민단'과 함께한 50여년...재일동포 권익에 앞장서 온 여건이 단장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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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대한민국민단, 1946년 설립 후 72년 이어온 재일동포 대표적 민간단체
-여건이 단장, 1972년 대한민국청년회 결성 참여 인연으로 50여년간 민단과 함께 해온 '민단통'
-여 단장 "한일 친선은 우리에겐 마치 공기나 다름 없어...한일 우호 증진에 힘쓸 것"
재일동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은 해방 후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의 대표적인 민간단체다. 1946년 개천절에 설립 된 민단은 타국 땅에서 모진 세월을 견뎠던 재일 동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72년을 건재하게 버텨왔다.   

올해 2월 제50대 중앙본부 단장으로 취임한 여건이(呂健二, 1948~) 단장은 50여년을 민단과 함께 해온 '민단통'이다. 청년시절 청년회 결성 운동에 참여하며 1972년 민단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 도쿄 한국청년상공회 회장, 민단탈북자지원센터 대표, 민단생활상담센터 소장, 민단 중앙본부에서 의장과 부단장을 역임하는 등 재일동포의 권익 향상과 동포 사회의 발전에 힘써왔다.  

재일동포들은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한국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한반도 분단은 일본 내 재일동포사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남한을 지지해온 재일 동포를 구심점으로 세워진 민단은 반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조선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과 대립해오며 갈등과 반목을 이어왔다. 

일본 해상자위대 욱일기 이슈 등으로 최근 한일 관계에도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여기에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역사 왜곡 등 한일 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씨앗도 여전히 남아있다. 

녹록치 않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재일 동포 사회를 이끄는 여 단장의 어깨 역시 무겁다.

최근 서울 잠실에서 개최된 2018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여 단장은 "지금 참 어려운 시기"라며 인터뷰 내내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 동포들은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다"며 "한일 관계는 재일동포들의 생업과도 직결된다. 한일 친선은 마치 우리 목숨과도 같다"고 말했다.

또 여 단장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며 조선총련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신뢰가 밑바탕이 된다면 대화와 교류를 할 마음이 있다"며 "일본에서 함께 살고 있고, 같은 문제에 당면해 있으니 문제 해결도 함께 해나가야 할 관계"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 단장은 재일동포 2세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다는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출생지는 어디인가

1945년 해방되던 해 해외 동포들의 귀국바람이 불었지만 한국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조부께서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오셨다. 2년 후 아버지도 건너오셔서 일본인 회사에서 경리 일을 보셨다. 나는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났는데, 일본 학교를 다니다보니 한국어를 배우질 못했다. 학창 시절에 한국인들과의 교류도 적다보니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다가 혼자 책을 보면서 독학했다. 잘 하진 못하지만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재일동포사회를 대표하는 단체가 민단이다. 반평생 민단과 함께 해오셨는데, 발을 들여놓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학생 시절 집에 어느날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 2세 선배였는데, 모임이 있다면서 가입을 권유했다. 청년기에는 고민이 많은 시기 아닌가. 게다가 타국에서 살아가면서 차별 등 부딪히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그래서 그 당시 교포 2세들이 만든 모임들이 많았고, 그 중 한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사회단체 활동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이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교류를 하면서 청년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69~72년 재일동포 사회는 소위 혼란의 시기 였다. 청년 조직 분열도 많았는데, 1972년에 민단 내 대한민국청년회 결성 운동에 참여하면서 민단과 인연을 맺게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게 됐다.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민단 활동을 함께 해왔다.    

-민단의 역사가 72년으로 알고 있다. 민단이란 단체의 정체성을 함축해서 소개한다면. 

1946년 10월 3일 개천절 날 창립된 조직이다. 1946년 개천절에 설립된 1대 박열 단장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단의 역사는 올해 72년을 맞았다. 1947년 3월 1일 일본에 5000명이 모여서 3.1절 첫 행사를 치루기도 했다. 민단은 대한민국 정부와 소통하며 대한민국의 전통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전히 3.1절, 광복절 행사를 전국 지방에서 진행하고 있다. 얼마전엔 서울에서 재일 동포 어린이들로 구성된 잼버리를 개최하는 등 차세대 육성 사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재일 동포 어린이들이 서울을 방문해 모국을 체험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2018 어린이 잼버리 (김소부 인솔 단장)가
10회째를 맞는 '2018 재일동포 어린이 잼버리' 행사 당시 모습. 재일 동포 어린이들이 서울을 방문해 모국을 체험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행사다./사진=민단 

우리 재외동포들로 구성된 민단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외환위기 당시 경제적 지원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대한민국의 경제산업 발전에도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교포들의 법적 지위 확립과 생활안정, 권익 보호, 그리고 한일 민간 친선 교류와 외교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왔다. 과거에는 국민연금 가입도 안되고, 취업도 힘들었다. 하나 하나 민단이 앞장서서 해결해왔다. 민단이 직접 일본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적극적으로 협력을 요청하고 의견을 개진해왔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금지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차별·혐오 발언) 금지법' 역시 민단의 주도로 2016년 6월 입법화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일본인들도 깜짝 놀라더라. 민단에서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 대표자를 보내서 문제 제기도 했다. 일본의 국회의원 여야 구별 없이 만나 의견을 개진한 결과다. 

이렇게 외국인 정책이 바뀌면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파급 효과가 나타난다. 민단의 활동으로 외국인 정책에 대한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일본 정부에서도 민단의 존재감을 크게 인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민단이 없으면 외국인 정책을 못한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일본 매스컴 역시 민단의 활동을 비중있게 주시한다. 민단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그만큼 일본에서 뿌리를 내린 결과다. 

-민단에 몸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화를 꼽자면.

1974년 한국에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해 4월 5일 식목일에 대한민국청년회 회원 자격으로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 100여명이 주축이 되어 묘목을 가져가 한국에 밤나무를 심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전 상공에서 바라본 지상의 광경은 참담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해를 시작으로 그 이후로도 몇년 간 나무 심기 운동 활동을 이어갔다. 50년이 흘러 지금 한국에 푸른 나무로 우거진 산들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하다.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사진=박상훈 기자

-민단의 중점 사업으로 헤이트 스피치(차별·혐오 발언)근절과 지방선거 참정권을 강조했는데. 

민단과 우리 동포들의 권리나 처우개선 문제는 최근의 과제가 아니다. 1970년대 청년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한 재일한국청년상공회를 총괄하는 재일한국청년상공연합회에서 2기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부터 지방 참정권에도 관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주장 해왔다. 그동안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세금을 납부하고서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착실하게 다 하고 있지만, 지방 참정권에서는 차별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공감을 하는 일본인들 역시 많다.

그러나 넘어야할 벽들은 여전하다. 일본 우익 정치권에서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참정권은 재일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닌 일본 내 모든 외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이라는 점이 난관이다.  과거엔 재일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재일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일본 사회의 관심은 한국인에게서 중국인들로 넘어갔다. 일본 의원들이 한국인의 참정권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중국도 안되고 북한도 안된다고 하더라.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도 있지만, 일본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일본인 납치 문제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 당시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했는데, 그때부터 일본 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우리를 보는 시선에 냉기가 흐르더라. 일본은 조선총련이나 민단 관계없이 조선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조선총련계 금융기관이 재정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다. 일본정부가 1조 6000억엔이란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해 구제에 나섰지만, 회생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 됐다. 거액의 돈을 허공에 날려버린 셈이 된거다. 그 사건 이후로 어려운 경영에 처한 한국계 신용조합은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열심히 활동해 왔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과는 오랜 기간 이념적 갈등을 이어왔는데. 한반도 화해무드 속에서 향후 조총련과의 관계 모색에는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가.

조선총련은 북한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민단은 순수한 민간단체의 지위를 인정받고 유지해왔다. 조선총련이 순수하게 민간인으로 구성됐다면 민간단체로 봐도 무방하지만, 북한 정권과 함께 움직이는 구성원들로 구성된 조선총련을 민간단체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는 어려움이 있다. 

북송사업과 관련해 탈북자 지원을 함께 하자며 조선총련에 제안한 적도 있지만,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더라. 탈북자를 '북한의 법을 무시해서 탈북한 범죄자'로 보더라.

그러나 우리는 대화와 교류를 할 뜻이 있고 지금도 열어놓고 있다. 일본에서 함께 살고 있고, 같은 문제에 당면해 있으니 문제 해결도 함께 해나가야 할 관계로 본다. 물론 이에 앞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뢰를 구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불신을 없애고 조금씩 조금씩 신뢰를 쌓도록 서로가 노력 해야 한다. 

-북송됐다 탈북한 재일동포들의 일본 정착 지원 사업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13년 탈북자 지원 민단센터를 설립해 직접 이끌어오면서 탈북자 문제에도 관여해 왔는데.

민단에서 이들을 지원 하고 있고 중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들을 위한 지원에 소극적이다. 사실상 지원이 없다고 보면 된다. 1959년에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9만 3000여명의 재일교포가 북송됐는데, 많은 이들의 생사가 확인이 안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의 일이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일본에 정착한 북송 탈북자가 250여명이 있다. 민단에서는 탈북자들의 정착을 위한 생활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들이 간호사나 치과기공사 등 전문인이 되어 현지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사진=박상훈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언급과 일본 해상자위대 욱일기 이슈 등으로 한일 관계 기류도 좋지 않다. 민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한일은 특수한 관계다.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 여러 민감한 사안들이 여전히 산적해있지 않나. 한일 관계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생업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들은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니 살아가기가 힘들다. 한일관계가 안 좋으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로서는 삶에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2012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발언 당시 혐한 시위가 굉장했고, 한국인을 멸시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극에 달했다. 정말 그 당시엔 코리아타운을 찾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될수록 정신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한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의 이탈률이 늘어나면서 동포수도 줄고, 차세대 교육도 힘들어진다.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데, 일본내 한국인 청소년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참 어려운 시기다. 아직도 민단에서 행사를 하면 (일본)우익들이 찾아온다. 민단의 사무실 유리를 깨는 일도 있고. 재일교포들이 처한 입장을 헤아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한다. 민단 역시 한일간 상호 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간 단체인 민단과, 한국 정부, 그리고 본국의 국민 각 역할이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포 사회를 위해 꼭 이루고 싶은 점이 있다면.

민단 단원들의 권익과 생활을 보호하고, 한일 우호 증진에 적극 앞장서겠다. 한일 친선은 마치 우리 목숨과도 같다. 공기가 없으면 살기 힘든 것 처럼, 한일 친선은 우리에겐 마치 공기나 다름 없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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