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선한 희곡, 빛나는 연기의 종교극 '크리스천스'
[리뷰] 신선한 희곡, 빛나는 연기의 종교극 '크리스천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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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베스트 앤드 퍼스트’ 연극 네 번째 작품...배우 박지일의 빛났던 연기
연극 '크리스천스' 컨셉컷/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배우 박지일이 아니면 이 작품이 가능했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한 ‘베스트 앤드 퍼스트’ 연극 네 번째 작품 ’크리스천스’(9월 27일~10월 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박지일의 연기가 빛을 발한 ‘박지일 연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극장은 대형교회를 연상케 했다. 무대 뒤쪽의 성가대석에 유니폼을 입은 대원 20명이 등장했다. 앞쪽에는 장로, 부목사, 목사 부인이 의자에 앉았다. 조명을 이용한 십자가 형태의 디자인이 뒷벽과 연단에 장식돼 교회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쯤 되면 객석을 꽉 메운 관객은 성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극이 시작되면 목사 역 박지일의 설교가 시작된다. 설교 태도나 내용이 어찌나 진지하고 자연스럽던지 번역극인줄 알고 왔지만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로 착각할 정도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라는 대사를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20분은 족히 됨직한 설교 내용(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희곡 대사)을 박지일 배우는 표정, 동작, 휴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해냈다. 저음의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강렬한 제스처와 하이 톤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설득력이 연기 아닌 실제처럼 보였다. 아마추어 배우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프로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연극 ’크리스천스' 커튼콜에서 배우 박지일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사진=정중헌

기독교를 주제로 한 연극이 교리적 논쟁이나 신앙에 대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 많듯이 이 작품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지옥은 없다”고 설교한 폴 목사(박지일)의 신조와 조슈아 부목사(김상보)의 반론, 교회 운영을 맡은 제이 장로(손진환)의 압력, 간증으로 폴을 몰아세우는 교인 제니(박수민), 그리고 사모인 엘리자베스(박미현)마저 견해를 달리함으로써 다섯 명의 입장이 실타래처럼 꼬여나가는 과정을 희곡으로 엮어낸 루카스 네이스의 감각은 매우 신선했다.

여기서 이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종교 이야기는 서로의 시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연극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그 메시지가 객석과 잘 소통되었는지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연출의 몫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연출한 30대 후반의 민새롬은 배우들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논쟁을 극화하는 점에서 세련된 솜씨를 보였다. 2시간 10분을 대사로 끌어가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민새롬 연출은 빈틈을 보이지 않고 관객을 집중시키는 흡인력을 보인 것이다.

배우 박지일이 연극 ’크리스천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 배우진의 박수를 받고 있다./사진=정중헌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과 앙상블이 연출 의도를 잘 살려냈다. 박지일은 후반 고뇌하는 장면에서 좀 약했지만 해설자 역까지 맡아 극 전반을 리드했다. 부목사 역 김상보는 배우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다가 막판 어머니의 죽음과 지옥체험에서 강렬한 화력을 뿜어냈다.

장로 역 손진한은 종교 이전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선굵은 연기로 잘 소화했다. 교인 역 박수민은 성가대원으로 노래하다가 간증하러 나와 폴 목사를 코너로 몰아세우는 집요한 연기를 해냈다. 사모역 박미현은 목사이기 전에 부부로서 견해를 달리하면서도 남편 곁을 택하는 심지 있는 연기를 해냈다. 여기에 무대디자인(오태훈), 조명(노명준), 영상(김성하), 의상(도연) 등의 협업이 조화를 이뤄 신작이지만 성공적인 무대를 이끌어냈다.

아쉬운 점은 관객들을 성도로 십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성가단의 합창에 박수를 유도하는 등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했으나 극이 전개될수록 극 대사처럼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보였다. 연극이니까 관객은 당연히 관람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연출이 “소통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극장 내부 전체로 확산시킬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미국 각지와 유럽 등지에서 공연되었다고 하는데 그곳에선 객석을 어떻게 활용했을까가 궁금하다. 또 하나는 성가대에 앉은 20명이 배우인가, 노래하는 대원인가다. 제복을 입고 노래만 하는 역할은 분명 아니다. 공연 시간의 절반 이상을 무대에 들어와 있는 그들이 어떻게 연기 하느냐도 이 작품의 관건이다. 필자는 25명 등장인물 전체의 표정과 리액션을 보면서 관극했는데 대원 역 배우들이 자기 역할들을 성실히 해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 아우라에 변화를 주었다.

작가 루카스 네이스는 “교회가 한순간이나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곳이라면, 극장도 그런 곳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경지까지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연극 ’크리스천스’는 현대 종교의 한계, 대형교회의 문제, 기독교인의 혼돈과 명암을 심도있게 조명했고, 특히 중견 배우의 저력이 불꽃처럼 타오른 볼만한 무대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극장을 나오면서 이 작품의 잔상에 한국의 대형교회 건물들이 오버랩되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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