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르헨티나 정부서 활약하는 '차세대 리더' 교포 2세 변 얼
[인터뷰] 아르헨티나 정부서 활약하는 '차세대 리더' 교포 2세 변 얼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8.09.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현대화부 공공혁신 최고 책임자로 활약
- "즐기면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 하고파"
- "한국 이름 쓰고 배우는 데 1년 걸려...걱정하던 엄마가 날 붙잡고 우시기도"
변얼/사진=인터뷰365
   변얼/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부모님의 가르침 통해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힘든 일이라도 즐기면서 그 과정을 겪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변 얼(28)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외 동포다. 인터뷰에 앞서 "한국말을 잘 못해서 걱정된다"면서도 통역없이 대화를 나눌 만큼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현대화부 공공혁신 최고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대화부'란 2015년 아르헨티나의 국가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부처로 공공행정, 전자정부 도입, 인적자원 개발 등을 포함한 공공행정 개혁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아르헨티나 최상위 명문대 디텔라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변 얼의 부모님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순수 한글이름을 지었고, 고등학생 때까지 매주 한국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한국 문화와 아르헨티나 문화 속에서 성장통도 겪었다. 집에서는 '얼'로, 집 밖에서는 '조나단'으로 불렸다. 정체성 혼란기를 보내면서 그는 두 문화의 강점을 습득했고, 아르헨티나의 차세대 리더로 우뚝 섰다. 

재외동포재단의 주최로 전 세계 24개국 80여명의 재외동포 차세대 리더들이 참가하는 '2018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17일 오후 개막한 ‘2018 세계한인차세대회’ 평화의 꽃 퍼포먼스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과 차세대대회 참가자들. 왼쪽 세번째부터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진=재외동포재단<br>
17일 오후 개막한 ‘2018 세계한인차세대대회’ 평화의 꽃 퍼포먼스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과 차세대대회 참가자들. 왼쪽 세번째부터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진=재외동포재단

◆ 15살때 정체성 위기...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장점 찾아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어릴 때 두 번 왔었고 2014년에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일로 방문한 뒤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앞서 '2016년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여했던 형의 추천이 있었다. 행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참가하게 됐다. 형의 말처럼 이 곳에서 다양한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즐겁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금융학 분야에서 석사를 받았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내가 금융과는 맞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장학금을 받고 시작한 거라 일단 과정을 마치긴 했다.(웃음) 그 뒤 디텔라 대학교수님과 같이 기업을 상대로 경영 혁신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이노베이션 컨설팅 일을 했다. 1년 동안 일을 하던 중 돈이 없는 학교를 돕게 됐는데, 그때 회사를 위해 일하기보단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마침 정부에서 공공혁신 담당자를 찾는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고 지금은 아르헨티나 정부 현대화부에서 공공혁신 최고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데

석사과정 때부터 조교수로 일했다. 1년전 쯤 디텔라 대학교에서 제의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가장 즐겁다.

-교포로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교포라서 차별받거나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지만 15살 때쯤 스스로 정체성 위기를 겪었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집에선 한국 언어를 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교육도 받는데 집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완전히 다른 문화로 사니까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한때는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떨 땐 한국 친구들을 아예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내가 경험한 한국과 아르헨티나 문화의 장점을 조합해서 받아들였다.

-경험했던 한국 문화와 아르헨티나 문화의 장점이 있다면

한국 문화의 장점은 일을 열심히 한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한국의 성장 배경 같다. 또 어른들과 주변인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을 한국 문화에서 배웠다. 아르헨티나 문화의 장점은 따뜻하고 친근함이 있다.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경제 위기가 와도 주말에 가족들과 고기 먹고 수영도 하고 바캉스도 가면서 삶을 즐긴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 과정을 즐기면서 극복해나간다.

변얼/사진=박상훈 기자
변얼/사진=박상훈 기자

◆ 부모님의 특별한 미션...결과 보다 과정이 중요하단 깨달음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아버지가 배낭 여행을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열한 살 때부터 배낭 여행을 보내주셨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미션이 있었다. 정말 어려운 미션이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예를 들면 열 다섯 살 때 아르헨티나 남쪽으로 배낭여행을 갔는데 '그 주의 주지사 인터뷰를 해와라' 같은 미션이다. 당연히 못 받았다. 그런데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낭여행 갔던 곳은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브라질,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터키, 불가리아, 헝가리 등... 보통 아버지, 형, 동생과 함께 떠나기도하고 혼자 갈 때도 있었다.

-배낭여행 중 해결했던 미션은 있었나

17살 때 이집트 요르단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하루에 10달러 이상 쓰지 말라는 미션을 주셨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하루에 10달러만 쓰고는 생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미션을 해낸거다. 숙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산에 올라가서 배낭객들에게 커피를 팔면서 직접 돈을 벌어 여행했다.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궁금하다.

앞서 말한 배낭여행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쳐 주셨다. 열한 살 때 친구들은 방학이면 바닷가나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배낭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셨던 어머니는 아르헨티나에서 옷가게를 하시면서 로사리오에서 한국 학교를 세우셨다. 주말에는 한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나도 토요일마다 한국 학교에 다녔다. 그땐 어린 마음에 싫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됐다. 역시 부모님 말씀이 항상 옳다.(웃음)

-가족 관계는 

부모님과 형과 동생이 있다. 형은 서른살이고 아르헨티나 문화부 차관보로 일하다가 올해 그만두고 영국 옥스포드로 석사과정을 시작하러 떠났다. 동생은 스물한살이고 아르헨티나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형 이름은 '겨레'다. 동생의 이름은 형의 이름 '겨레'와 내 이름 '얼'을 합친 '결'이다. 우리 삼형제 이름은 나라의 정신, 한 민족이라는 뜻으로 한글 이름이다.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지금은 한국어 공부를 따로하고 있지 않지만 고등학생때까지 한국 학교에 억지로 갔다. 어머니께서 교장선생님이셔서..(웃음) 그리고 어릴때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 할머니께서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어릴 때 봤던 드라마로는 '가을동화'가 기억난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많이 배웠다.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JTBC ‘청춘시대’를 재밌게 봤다.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 시즌 1, 2 전부 다 봤다. tvN '미생'도 재밌었다.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주인공의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변얼/사진=박상훈 기자
변얼/사진=박상훈 기자

◆ "한국 이름 쓰고 배우는 데 1년 걸려... 엄마가 날 붙잡고 우셨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고비는 없었나. 본인의 미생(未生) 시절은

부모님이 옷가게를 하셨다. 아르헨티나 교민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자리도 잡혔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다. 부모님이 어렵게 키운 가게를 계속 이어갈것인지 나만의 길을 찾을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부모님은 가업을 잇길 바라셨던 건가

내가 하는 일이 좀 특이했으니까. 이노베이션 컨설팅은 부모님 세대에서는 없던 일이니 아마 이해하기 힘드셨을 거다. 당시 형과 동생은 변호사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때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공부를 정말 못했다. 한국 이름 쓰고 배우는 데 1년 걸렸다. 엄마는 내가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리니 걱정이 되서 붙잡고 우셨다고 하더라.(웃음) 학교 갈 때 책은 안 챙기고 장난감만 가져갔던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 안 믿긴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다 같이 살던 로사리오에서 형제들이 한 명씩 학교와 직장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수도)로 독립했다. 부모님도 은퇴 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사하셨고 지금은 두 분이 함께 배낭여행 다니신다. 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내 일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계시고 많이 응원해 주신다. 어제도 한국에 온걸 인터넷으로 찾아보시고 메세지를 보내셨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소감

러시아에서 온 한국 사람, 남미에서 온 한국 사람 등 전 세계에서 모인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경험한 문화도 다르지만 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현재 다른 나라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정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도 배웠다.

-한국과의 교류 계획이 있는지

내가 일하기 전 한국 정부와 아르헨티나 정부와 업무 교류가 있었다. 나도 계속 한국과 교류하고 싶다. 특히 한국의 현대화부의 좋은 점을 아르헨티나에 적용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 최종 목표가 있다면

지금 하고있는 강의를 계속 하고 싶다. 다른 나라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싶고, 또 다른 분야의 공부도 계속하고 싶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즐기면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강의인 것 같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