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무송 주연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 시대 아버지상 인간적으로 그려내
[리뷰] 전무송 주연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 시대 아버지상 인간적으로 그려내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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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제3회 늘푸른연극제 첫 작품 '세일즈 맨의 죽음', 전무송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연기력 발휘
-친아들 전진우와 함께한 절절한 부자(父子)연기...연극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
제3회 늘푸른연극제 첫 작품인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장면. 아버지 윌리 로먼 역을 맡은 배우 전무송./사진=한국연극협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아버지 윌리 로먼은 큰아들 비프가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비프는 떠돌이에 도벽까지 있다. 부자간의 갈등은 치달아 오른다. 윌리는 해고되고 비프는 옛 상사의 만년필을 훔쳐 도망을 오고 만 날, 마침내 상처는 곪아 터지고 만다.

“아버지나 나나 쓰레기통에 처박힌 1달러짜리 싸구려 인간이라구요!!”

절규하는 비프는 아버지 윌리의 무릎에 무너진다.

부자의 응어리가 풀리는 장면에서 관객은 울었다. 아버지 윌리 로먼은 원로 배우 전무송, 비프 역 전진우는 그의 친아들이었다. 무너진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와 절절한 아들의 연기는 연극사에 남을만한 명장면이었다.  

제3회 늘푸른연극제 첫 작품인 전무송 배우의 '세일즈 맨의 죽음'(8월 17~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120분간 내내 놀람과 감동이 교차되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윌리 로먼(전무송 배우)과 형 벤(한인수 배우)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장면.윌리 로먼(전무송)과 형 벤(한인수)/사진=한국연극협회 

먼저 다가온 감정은 기대 이상으로 웰메이드 한 공연을 보았다는 서프라이즈였다. 필자가 지난 40여 년간 보아온 배우 전무송이 혼신의 경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무대였다. 기자로, 관객으로 10여 차례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았지만 일곱 번 째 도전이라는 전무송의 이번 무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큰 기대 없이 객석에 앉았다가 초반부터 몰입되어 클라이맥스에서 손수건을 적셨다가 커튼콜에서 박수를 치면서 난 참 행복한 관객이라는 전율이 온몸을 짜릿하게 했다.

전무송은 좋은 배우라는 평판을 일찍이 얻었지만 '생일파티', '태', '하멸태자' 등 드라마센터 초기작 외에는 대표작으로 내세울 작품이 약했다.

'늘푸른연극제'에 배우로 선정된 그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택했고 전무송 연기 인생 반세기에 이보다 더 멋진 작품은 없다고 할 만큼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했다.

솔직히 이 작품을 가족 중심으로 제작하겠다는 기사를 보며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사위 김진만은 김진만 표 '세일즈맨의 죽음'을 인간미가 배어나오는, 우리 감성에 이해가 되는 무대를 연출해냈다.

배우 출신인 그가 대작을 빈틈없이 구축해 냈다는 것은 상찬할 일이다. 그는 번역극의 맹점인 대사를 우리 정서에 휘감기게 잘 조율해 냈고, 120분 동안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강약을 조절하며 전혀 지루하지 않게 극적 긴장을 이끌어갔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기량을 고루 뽑아냈고, 가장 어려운 앙상블을 전혀 군더더기 없이 유연하게 구현했다.

무대미술(정이든)과 음악(예인), 음향(한철)과 조명(강영구)이 자연스럽게 배우들 연기 속에 배어들어 수 십 년 전 미국 연극을 우리 입맛에 맞게 형상화했다.

미국 현대극의 대가 아서 밀러의 1949년 희곡이 70년이 흐른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도 너무 잘 맞아 떨어져 관객들의 가슴에 와닿았다. 고령화와 실업 사태 속에 보통 아버지와 아들들은 윌리 처럼 보험금을 노리거나 비프처럼 절망하고 있지 않은가.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장면. 윌리 로먼(전무송)과 그의 아들들(전진우, 김시헌)/사진=한국연극협회 
비프 역을 맡은 전진우. 전무송 배우의 아들이다.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인사하는 비프 역을 맡은 전진우. 그는 배우 전무송의 아들이다./사진=정중헌

가장 놀라운 발견은 비프 역을 맡은 배우 전진우였다. 아버지 윌리 로먼과 피붙이 부자 관계인 그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맸는데 완쾌 후 기적처럼 이 작품을 만나 혼신의 열연으로 최대의 시너지를 이끌어냈다.

그가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비뚤어진 삶을 살아야 했던 정한을 친아버지 전무송과 맞붙어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장면은 근래 무대에서 보았던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찰리 역을 맡은 국립극단 출신의 정상철 배우는 중후하면서 감정이 교류되는 연기력을 펼쳐 극에 안정감을 주었다. 그가 친구 윌리에게 보인 속 깊은 우정도 보기 좋았지만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야”라는 대사는 정말 멋졌다.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장면. 윌리 로먼(전무송)과 그의 오랜 친구 찰리(정상철)의 모습./사진=한국연극협회 

텔레비전 드라마로 친숙한 엄마 역 박순천은 작은 체구로 한국적인 가족 정서를 절절하게 보여주었다. 린다가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꿇어앉아 독백처럼 뇌이는 "오늘 마지막 집세를 치렀어요. 오늘 여보, 하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걸요"는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명대사였는데 울림이 더 컸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다.

가장 가슴을 울린 배우는 주인공 전무송이었다. 이순재 대배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김성옥 배우의 토속적인 윌리 로먼도 잊을 수 없지만 만 77세, 우리나이 79세 전무송의 이번 타이틀 롤은 연극사 한편에 기록할 만할 정도로 호소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연극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장면./윌리 로먼(전무송)과 그의 아내 린다(박순천)/사진=한국연극협회 

뒤풀이에서 프레데릭 마치부터 더스틴 호프만 까지 영화와 연극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관한 많은 일화가 나왔지만 거기에는 미국적인 감성과 캐릭터가 강했다.

그런데 전무송은 늘푸른연극제에 선정된 배우답게 중후함과 인간미 나는 체취로 가족극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였다. 전무송이 이날 토해낸 뜨거운 열정과 배우로서의 연기역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딸이자 배우인 전현아 예술감독의 보이지 않은 노력도 이번 무대를 빛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늘푸른연극제를 하는 의의는 전무송 배우처럼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내는 완판을 만들어 내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다는 연극을 온 가족이 하고 있다는 것도 대견스러운데 '안타'까지 터뜨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카튼콜에서 인사하는 전무송 배우. 정중헌 촬영.
카튼콜에서 인사하는 배우 전무송/사진=정중헌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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