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금강의 화가' 정명희 화백이 서울 개인전에 펼친 금강 변주곡
[인터뷰] '금강의 화가' 정명희 화백이 서울 개인전에 펼친 금강 변주곡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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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미술관에서 7월 25~31일 신작 발표
-대전에 뿌리내린 한국화의 원로...사유의 공간이 되고 치유가 되는 그림이고파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기산(箕山) 정명희(鄭冥熙) 원로 화백. 그는 '금강'이란 일관된 주제로 자신의 화풍을 이뤄낸 화가다. 기산은 1970년부터 그려온 자신의 전 작품 1396점을 대전광역시 교육청에 기증하기도 했다. /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80대 후반의 노화가의 평전을 쓴 일이 있다.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화가라면 적어도 30년 이상을 매일 그림을 그린 연륜과 자신만의 창작세계가 있어야 진정한 화가"라는 말이었다.

미술기자를 오래 했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화가는 손꼽을 정도였다. 연륜이 많아도 매일 그리지 않았고, 오래 그렸어도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이루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삼복 염천인 7월 25일 개막, 31일까지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기산(箕山) 정명희(鄭冥熙) 화백(73)은 1975년부터 개인전만 70회를 넘게 열었고, '금강(錦江)'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자신의 화풍을 이뤄낸 화가다.

2011년 기산은 1970년부터 그려온 자신의 전 작품 1396점을 대전광역시 교육청에 기증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시가로 177억 상당에 달한다고 나와 있다. 이번 작품전은 기증 이후 7년 동안 작업한 신작들이다.

25일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개막전에서 인사말을 하는 기산 정명희 화백

25일 개막식은 조촐하면서도 은근한 축제분위기가 감돌았다. 시니어들의 행사에는 시니어들이 주로 오는데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슷한 연배의 화단 선후배, 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동창들, 가족과 친지들...

정관모 전 미협이사장이 축사를 했고, 기산의 작품을 지켜 보아온 신항섭 평론가가 작품세계를 이야기 했다.

기산이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말을 했다.

"막스 피카르트가 말했어요. 그림은 침묵과 언어 사이에 있다고요. 제 그림이 사유의 공간이 되고 치유에까지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금강에 살며 금강을 호흡하며 그린 금강의 변주이지만 새와 함께 이번엔 석판으로 만든 편경(編磬)에 이끌렸어요. 청아한 음색의 편경의 울림이 금강의 소리와 어울려 멀리멀리 펴져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사회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기산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저 그림이 나를 그리고, 스스로 저 살 궁리를 하는 것'이라고 해요."

이렇듯 기산에게서는 충청도 인품이 묻어난다.

"전시를 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하지만, 그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고 그때 그때 주어진 화두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바탕으로 작업하다 보면 그림이 자연히 자신을 이끈다"는 것이다.

금강, 그 멈출 수 없는 변주18-1 (1) 기산정명희 화질1000
'금강, 그 멈출 수 없는 변주18-1'(209㎝ⅹ150㎝/한지에 혼합재료/2018)  ⓒ정명희

금강, 그 멈출 수 없는 변주

이번 출품작들의 명제는 '금강, 그 멈출 수 없는 변주'(한지에 혼합자료)다.

빗줄기 같기도 하고 물줄기 같기도 한 수직의 선에 모자이크 새가 날고 오방색 색띠가 유희를 펼친다.

신문이나 사진을 콜라주한 작품도 있고, 붉고 검은 색면과 색동이 하모니를 이루는 작품도 있다. 정사면체로 십자 형태를 이룬 '금강변주'는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힘과 종교적 아우라를 형성한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은 검고 흰 피아노 건반처럼 화면에 강하게 치고 들어온 편경의 이미지들이다. 이제까지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넘나든 기산이지만 이번 개인전에 나온 편경의 변주는 한 차원 높은 추상의 세계로 보는 이를 이끌고 있다.

기산의 작품에 새가 없다면 어떨까? 단조롭고 삭막할 것 같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타고 나르는 새들은 그림에 자유로움을 불어넣는다. 새가 날아야 금강이 더 유유하고, 그림을 보는 사람도 새와 같이 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음악까지 흐른다면 금상첨화인데, 기산은 그 많은 동서양 악기중 청아한 음색의 편경을 화면에 끌어들여 시각적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돌아보고 전시장에서 기산과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폭염 속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얼마만의 개인전인지요?

이제는 전시 횟수를 세어보지는 않습니다만 5년 전인 2013년에 '금강일기'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발표했고, 2015년엔 고향 홍성군에서 광복 70주년기념 출향작가 초대전으로 홍성문화원에서 '홍주성금강홍'전을 했습니다. 2017년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고(故) 신동엽 시인의 미수(米壽)를 기념하는 개인전 '금강-또 다른 얼굴'전을 대전 정명희미술관에서 했습니다.

기산 정명희2
기산 정명희 화백

빛과 소리의 이중주

-이번 작품전 명제가 '금강, 그 멈출 수 없는 변주'인데 이번 개전의 특징은 무엇이며 어디에 역점을 두셨는지요.

강물의 흐름인 '소리'와 그림이 조형되는 '빛'의 대화에 관해 집중적으로 표현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는 그림을 침묵과 언어 사이에 존재한다고 했는데 제가 요즘 빛과 소리가 엉키는 '화음(畵音)의 세계'를 찾다가 국악기 '편경'에서 이미지를 얻었어요. 이번 제 개인전은 마라톤 경기에 비교하면 마(魔)의 39㎞ 지점이라고 봐요. 죽을 것 같은 이 고비만 넘기면 그 이후는 저절로 뛰어지는 것처럼 제 작업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작품의 특징을 설명해 주시지요? 달빛, 오방색 등... 그리고 기산에게 '새'는 무슨 의미인가요?

2000년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금강에 서식하는 새들을 화면에 그리기 시작했고, 그 새의 이미지가 강상에 날면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강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그 새가 제 그림의 상징처럼 되었네요. 그리고 제가 요즘 우리 전통의 조각보에서 오방색을 취해 쓰고 있습니다.

금강변주35 (1) 기산정명희 화질1000
'금강변주 35' (103㎝ⅹ103㎝ / 한지에 혼합재료 / 2017) ⓒ정명희
금강변주36 (1)
'금강변주 36' (103㎝ⅹ103㎝ / 한지에 혼합재료 / 2017) ⓒ정명희

내게 금강은 생명, 그 위에 새가 날아

-선생님을 기자시절에 뵈었다가 최근 KBS TV에 나오신걸 보고 반가워 연락드렸는데 그 프로그램엔 어떻게 나오셨고 무엇을 주로 보여주셨는지요?

대전에서 제작한 KBS 네트워크 방송이었기에 아마도 전국적인 인물을 찾다보니 우연히 제가 지목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의 작품세계와 일상을 조명한 것으로 압니다.

(금강화가 기산 정명희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이 프로그램은 금강을 그리는 기산을 집중 조명하면서 '예수의 생애' 시리즈 성화와 작업실 근황 등을 보여주었다.)

-기산에게 금강은 무엇인지요? 언제부터 왜, 어떻게 금강에 집념을 쏟으셨는지요? 1985년 초대전에 '1000리 금강송'이라는 표제가 나오던데요?

제게 있어 금강은 생명과 같아요. 아시다시피 산수화로 시작된 제 그림은 금강 1000리(401㎞)를 여러 차례 답사했었습니다. 그것이 승화되어 추상화처럼 보입니다만 제 그림은 역시 구상화라고 생각합니다.

-금강을 소재로 한 작품의 변화를 설명해 주시지요. 기산의 작품을 시기나 경향별로 분류한다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크게 보면 실경산수, 채묵산수에서 조형화된 금강의 이미지 작업으로 세 번 변했습니다. 2000년이후 금강의 조형적 표현방법이 새롭게 승화되어 기산의 대표적 작업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기산의 대표작을 꼽아주시지요? 소장한 미술관이나 기관도 많을텐데요?

대표작은 이번 조선일보미술관 전시작품속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는 대영박물관과 몽골국립미술관, 이탈리아, 중국, 일본의 몇 군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정부청사, 대전법원청사, 대전시청 등과 한양대,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산정명희 화질1000
기산 정명희 화백

기산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운보 김기창 화백

-기산과 대전은 어떤 인연인가요?

선친이 공무원이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전에서 살았죠.

-지역에서 활동하며 느낀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혹시 한계나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으신지요?

지역에 있으면 무조건 시골화가죠. 우리나라는 서울사람 외엔 인정을 안하려드니까요...

-기산은 운보 김기창 화백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운보는 기산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제가 복이 많아 한국 제일의 화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아버님 모시듯 했었죠. '그림은 그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란 멋진 말을 지금까지 새기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화에 큰 획을 그은 운보 김기창은 기산 정명희에게 큰 스승이었다. 젊은 시절 기산은 운보의 작업을 돕느라고 일년의 삼분의 일은 운보 화실에 기거하다시피 했다. 기산은 홍익대에서 수학을 했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 운보가 큰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1983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운보 팔순기념전 도록에 운보 제자로 조평휘, 오태학, 하태진, 심경자와 함께 기산은 다섯명의 발간위원으로 참여해 제자로 인정받았다.)

-우리 그림의 정체성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기산에게 우리 그림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구현해 오셨는지요?

사람이 사는 의,식,주가 정체성의 모체라면 일제강점기에 얻은 '미술'이란 용어를 '우리그림'으로 바꾸면서 우리그림의 정체성을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어요.

지역에 살면 시골확, 한국화 푸대접하는 화단 풍토

-요즘 화단에선 한국화는 뒷전이고 외국 화풍에만 경도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가 생물이듯 그림 또한 살아있는 것이죠. 시대성을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화단에 한국화 화파나 사조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대학이 자신의 본분을 잃고 있으니 미술대학생들이 운보선생님을 모르지요... 당연한 것처럼...

(기산도 대학에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요즘 미대생들이 2001년 타계한 운보 김기창을 모르고 있다며 안타가운 심경을 토로했다.)

-대전광역시 교육청에 작품을 기증하고 정명희미술관도 만들어 관장을 맡으셨는데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시지요? 기증작품 도록도 만드셨던데요.

네, 작가는 작품에 싸인을 마치면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것이 아니죠... 후학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자료가 된다면, 오히려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명희 화백이 작품 1396점을 대전광역시교육청에 무상으로 기증하면서 2012년 대전시 중구 대흥동 평생학습관 3층에 정명희미술관이 생겼다.)

-기증은 좋은 의미이지만 작가로서 허전하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혹 들지 않으셨나요?

저보다 더 관리를 잘 해주고 있으니...(말 없음표가 내포한 의미는 복잡미묘해 생략하기로 한다.)

달빛1 (1) 기산 정명희 화질1000
'달빛1'(138cmⅹ102cm / 한지에 혼합재료 / 2017) ⓒ정명희

편경의 청아한 울림이 내 그림에 운율을 불어넣어

-다 기증하시고 새로 작품하신 기분은 어떻던가요? 작품의 방향이 달라졌다던가 하는 것은 없는지요.

작가는 지속적으로 변해야 하고 새롭게 탄생하지 못하면 안 되는 숙명을 지녔어요. 최근 우리 고유 악기인 편경의 추상적 형태와 청자 빛 닮은 경외스러운 소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석판의 떨림과 울림을 빛의 통섭으로 엮어 얻은 조형언어들을 작업에 대입시키면서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이렇게 변주해 가면서 죽을 때까지 작품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산의 '예수의 생애'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운보의 '예수의 생애'와 연관성은 없는지요?

선생님이 작고하시기 전에 예수님의 성화를 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그렸죠. 그때 무의미한 모방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에 힘입어 작품마다 제 모습이 그려져 있죠. 마치 현장에 제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예수의 생애'를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선화기독교미술관'라고 대전 하늘문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명희미술관'과 함께 제가 만든 미술관이 두 개나 되는군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산과 해외여행에 대해 특기할 점을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오지여행을 좋아하고 고산 등반을 했었죠.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같은... 그리고 문명의 4대발상지를 이루는 강들을 찾았던 추억들은 제가 금강화가라는 긍지로 남아있습니다. (기산은 1993년 '백두산에서 히말라야까지'라는 표제의 화문집을 냈다.)

기산 정명희 화백은 12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기산은 "애들이 옷 생기고 신발 생기면 밖으로 뛰어나가 듯 신작이 생기면 전시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정중헌

시인이고 마라토너인 풍류 화가

이처럼 반세기 넘게 그림만 그리며 살아온 기산이지만 상복은 따르지 않았다.

기산을 말할 때 화가 말고도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하나는 시인이고, 또 하나는 마라토너다.

기산은 1994년 '하늘그림자'를 필두로 '금강편지'(2007), 자저적 서사시 '하얀늑대의 행진'(2016)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을 냈다.

또 하나는 기산은 소문난 아마추어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작업을 위해 오래전부터 몸 관리를 해오던 마라톤이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 국내 대회는 물로 해외대회도 섭렵했다고 한다.

-해외 원정까지 했다면서요?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오고 그래야 젊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마라톤을 하고 있습니다. 참 조선일보춘천마라톤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마라토너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작가로 남고 싶어

-하루 작업은 얼마나 하시며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하루종일 작업에 묻혀 지냅니다. 사이사이 친구를 만나 한 잔 하기도 하고요..

-가족 관계는 어떠신가요?

아내(김옥자) 목사이고 아들 정재환은 성악가, 딸 정재은은 방송인, 네 식구가 행복합니다. 아들은 지난 7월 21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출연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주께서 부르시면 달려가려고 준비하고 있지요. 애들이 옷 생기고 신발 생기면 밖으로 뛰어나가듯 저도 신작이 생기면 전시하며 사는 것이지요.

-끝으로 기산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분으로 남겨지고 싶으신지요?

글쎄요, 그 사람 열심히 노력한 작가다. 그런 얘기를 후배나 제자나 자식들이 나중에 듣게 되길 소망합니다.

머리가 희끗한 기산은 참 평온해 보인다. 그가 그려온 금강의 물결도 겉으로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물밑은 늘 소용돌이가 있듯이 기산의 삶도 평탄치 만은 않았다. 화단의 풍파는 특히 그에게 거셌다. 하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고 치열한 작업을 지속하여 소박하면서도 시정이 담긴 자신의 화풍을 일궈냈다. 그래서 그는 화가로 불릴 자격이 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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