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의 경계, '쾌락의 정원'을 여행하다...'보스 드림즈'
환상과 현실의 경계, '쾌락의 정원'을 여행하다...'보스 드림즈'
  • 주하영
  • 승인 20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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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세븐 핑거스X리퍼블릭 씨어터 '보스 드림즈'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서거 500주년 기념 작품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커다란 열쇠'를 타고 내려온 짐 모리슨이 욕조에서 자신의 음악을 듣다 잠이 든 여인과 조우하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움직임들을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내기에 ‘서커스’보다 더 적합한 장르가 있을까?

일반인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불가능한 동작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하고, 작은 공이나 컵, 접시와 같은 소도구들을 자유자재로 저글링하며, 공중그네 혹은 링에 매달린 채 마치 하늘을 날듯 회전을 반복하고 움직이는 곡예사들...

물론 그들의 환상적인 움직임은 모두 육체의 유연성과 민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훈련과 노력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비현실적이기에 그들의 곡예는 ‘환상으로의 초대’를 가능케 한다. 그림 속에 있는 인물들을 실제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표현하기에 그들보다 더 적합한 선택이 있을까?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8000점이 넘는 방대한 작품들 가운데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도록 만드는 그림이 하나 있다.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아 ‘미술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창조과정과 더불어 지상과 천국, 지옥의 환영들을 그려냈다는 제단화 형식의 세 폭짜리 그림 ‘쾌락의 정원‘은 복잡한 군상의 사람들과 신비롭고 환상적인 존재들로 가득한 ‘꿈’과 같은 세상을 향해 관람객의 두 눈이 고정되도록 만든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사진=LG아트센터

16세기 화가 피터 브뤼겔의 환상적이고 독특한 화풍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극찬 속에 현대인의 관심을 불러 모았고, 1970년대 록 밴드 ‘더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의 노래 ‘바보들의 배’에 영감을 주었다는 ‘쾌락의 정원‘은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해석을 내리기 힘든 도상학적 표현들과 신비로운 창조물들로 인해 해석상의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지난 4월 6일~8일 LG아트센터에서는 21세기의 새로운 초현실적 예술 ‘보스 드림즈‘의 환상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2016년 9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초연된 후 네덜란드 공연에서만 3개월간 50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영국 언론 ‘가디언‘에 의해 “우리 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시 작품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보스 드림즈'의 공연장면. 이 공연은 영국 언론 ‘가디언‘에 의해 “우리 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시 작품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LG아트센터

네덜란드의 보스 재단이 보스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캐나다의 서커스단 ‘세븐 핑거스’에게 의뢰했다는 ‘보스 드림즈‘는 “화가의 비전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쇼”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덴마크의 실험적인 극단 ‘리퍼블리크 씨어터’와 프랑스의 비디오 아티스트 ‘앙쥐 포티에’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하였다.

작품은 ‘보스가 꿈꾸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임종을 앞 둔 보스가 침대에서 괴로운 숨을 몰아쉬며 잠든 ‘꿈’에서 펼쳐지는 세상을 관객들의 눈앞에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3차원의 공간으로 불러온 듯 착각을 일으킨다.

극장의 프로시니엄 아치는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한 아크로바틱과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강조한 미디어 아트, 창의적인 무대 디자인과 실험적 장치들에 의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의 캔버스처럼 기능한다.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살바도르 달리가 쾌락의 정원에서 만난 '꽃 속의 여인'이 환상적인 핸드밸런싱 아크로바틱스를 선보이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막이 오르면 어릴 적 본 그림 ‘쾌락의 정원‘에 매료되어 평생을 보스라는 화가를 연구하는데 매진해왔다는 한 교수가 관객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하며 미술사 강의를 시작한다.

프로시니엄 아치를 가득 채운 거대한 ‘쾌락의 정원‘을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교수의 강의에 집중하는 청중으로 변모한다. 교수는 스크린에 투사된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곳곳에 퍼져있는 알 수 없는 비현실적 존재들과 상징적 도상들을 설명하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500년 전 보스가 그린 ‘쾌락의 정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보스가 그림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을 무엇이며, 선과 악은 어떻게 결정되었던 것일까요? 중세 시대의 인간 삶의 모습은 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과 많이 다른 것이었을까요?”

왼쪽 화폭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하는 에덴동산의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이 가득하고, 오른쪽 화폭에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모습인 양 불타는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괴물의 형상을 한 기계 장치들, 잘려나간 신체 부위들과 끔찍한 고문장면들이 가득하다.

중앙의 넓은 화폭에는 대자연 속에 뒤엉켜 쾌락을 추구하는 나체의 인간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신기한 창조물들이 섞여있고, 인간의 몸보다 큰 거대한 딸기들이 곳곳에 놓여 있으며, 체리처럼 보이는 빨간 열매들이 인간들의 손과 머리 위에 놓여 있다.

교수는 중세 시대의 성적 욕망과 쾌락은 자손 번식과 풍요를 위한 것이었으며, 커다란 딸기는 ‘욕망’ 혹은 삶의 ‘유한함’을 상징하고, 부엉이는 ‘현명함’, 두꺼비는 ‘악마’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교수의 강의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무대는 마치 잠에 빠지기라도 하듯 암흑으로 변하며 장면이 전환된다.

침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남자를 향해 기괴한 벌레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다가서려는 순간, 금발의 한 소녀가 등장한다. 아픈 남자는 소녀에게 ‘빨간 공’(빨간 열매)을 전달한다.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교수의 딸인 소녀가 쾌락의 정원에서 역동적인 댄스 트라피즈(공중그네)를 보여주고 있다. 빨간 공들은 '빨간 열매'를 상징한다./사진=LG아트센터

하늘에 옅은 빛을 드리우던 달이 갑자기 점점 커지더니 태양처럼 밝은 빛으로 프로시니엄 아치의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관객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낯선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한쪽이 깨진 커다란 알에서 나온 소녀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야바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게 되고, 관객들은 보스의 그림 ‘우석의 제거‘의 살아 움직이는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여러 개의 하얀 돌로 저글링 하는 남자를 바라보다 ‘빨간 공’을 잃어버린다. 주둥이가 길게 나온 괴이한 생명체가 지옥으로 가져간 ‘빨간 공’을 되찾으려는 소녀의 여정은 ‘은총 받은 이들의 승천‘, ‘마술사‘, ‘바보들의 배‘, ‘건초수레‘와 같은 보스의 그림들과 연계되며 관객들을 신비한 환상 속으로 인도한다.

건초수레 = 보스의 그림 사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건초수레' 그림 사진/사진=LG아트센터

흥미로운 점은 소녀가 다름 아닌 보스의 그림에 대한 강의를 하는 교수의 딸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보스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위해 네덜란드로 떠난 교수는 보스의 생가를 방문한 후 딸에게 ‘쾌락의 정원‘의 그림이 담긴 엽서를 보낸다.

엽서를 읽다 잠이 든 딸은 ‘꿈’ 속에서 500년 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보스를 만나 ‘딸기’를 선물 받는다. 딸은 막 출장을 떠나는 아버지에게 ‘딸기’를 선물하고, 네덜란드에 도착한 아버지는 축사를 준비하며 보스가 그림을 통해 진정으로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만 이내 지쳐 술집으로 향한다.

보스 드림즈_10  500년 전 보스의 작업실에서 교수의 딸(소녀)는 보스를 만나 '딸기'를 선물 받는다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500년 전 보스의 작업실에서 교수의 딸(소녀)는 보스를 만나 '딸기'를 선물 받는다./사진=LG아트센터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빨간 공'(빨간 열매)을 들고 도착한 돌로 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있는 낯선 세상/사진=LG아트센터

한 여인과 쾌락의 밤을 보낸 아버지는 결국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앵커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늘어놓고, TV로 이를 지켜보던 딸의 눈길을 사로잡은 전쟁 뉴스는 소녀를 지옥의 불길이 치솟는 ‘그림 속 암흑세계’로 끌고 간다.

‘보스 드림즈‘의 예술 감독을 맡은 사무엘 테트로는 ‘씬플레이빌‘과의 인터뷰에서 “주된 플롯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갖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1516년 임종에 가까워진 보스의 꿈, 2016년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와 딸의 꿈, 1970년대 짐 모리슨과 1930~40년대 젊은 화가였던 살바도르 달리가 품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서 '빨간 공'을 받아든 소녀(교수의 딸)가 꿈 속 세상으로 옮겨가는 장면(히에로니무스 보스 은총받은 이들의 승천)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서 '빨간 공'을 받아든 소녀(교수의 딸)가 꿈 속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실제로 공연은 큰 틀을 이루는 보스와 교수의 딸(소녀)의 ‘꿈 이야기’ 사이로 살바도르 달리와 짐 모리슨의 다른 이야기들이 시간 여행을 하듯 겹쳐지고 교차된다.

박물관에 보스의 그림을 보러 온 달리는 영감을 받은 순간 한쪽이 깨진 커다란 알을 통과해 ‘쾌락의 정원‘을 여행하게 되고, 우연히 보게 된 꽃 속 여인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스케치하게 된다.

보스의 작업실에 등장한 짐 모리스 역시 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여행하며 영감을 얻고, 커다란 열쇠를 타고 내려와 자신의 노래를 듣다 욕조에서 잠들어 버린 한 여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블루 스크린 기법으로 촬영한 애니메이션 속에 핸드밸런싱을 이용한 아크로바틱이나 링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 떠있는 에이리얼 퍼포먼스를 조화롭게 선보임으로써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듯 몽환적인 세상을 열어 보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그림의 일부로 녹아든다.

보스 드림즈_12 '빨간 공'(빨간 열매)을 들고 도착한 돌로 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있는 낯선 세상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커다란 열쇠'를 타고 내려온 짐 모리슨이 욕조에서 자신의 음악을 듣다 잠이 든 여인과 조우하고 있다. /사진=LG아트센터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살바도르 달리가 쾌락의 정원에서 만난 '꽃 속의 여인'. 환상적인 핸드밸런싱 아크로바틱스를 선보이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무용수들은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보스의 꿈 속 세상’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도록 퍼포먼스의 기술을 잘 활용하면서도 자칫 화려한 ‘아크로바틱 쇼’로 흐르지 않도록 절제된 동작들로 세심함을 더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흐르는 음악의 박자와 선율에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로 조화된다.

테트로에 따르면, 소녀가 임종을 앞 둔 노인으로부터 받은 ‘빨간 공’은 “보스의 영혼”을 상징한다. 그는 “보스의 영혼이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관객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녀는 긴 여정을 통해 마침내 ‘빨간 공’을 노인에게 되돌려주지만 그는 만류의 손짓과 함께 소녀가 간직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와 짐 모리슨, 괴이한 생명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고, 소녀는 그네를 타고 하늘에 떠 있는 달로 올라가 또 다시 ‘쾌락의 정원‘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보스 드림즈' 공연장면. 교수의 딸(소녀)가 쾌락의 정원에서 역동적인 댄스 트라피즈(공중그네)를 보여주고 있다. 빨간 공들은 '빨간 열매'를 상징한다. /사진=LG아트센터

소녀는 ‘빨간 공’을 왼쪽의 에덴동산이나 오른쪽의 지옥이 아닌 ‘쾌락의 정원‘ 중앙 한 가운데에 위치한 연못에 가져다 놓는다. 그림 속에서 신기하다는 듯 낯선 세상을 구경하는 소녀를 뒤로한 채 관객들은 ‘환상 속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회화와 음악, 아크로바틱 퍼포먼스, 연극적 플롯과 주제 이 모든 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와 더불어 하나로 통합된 ‘보스 드림즈‘는 미래의 ‘새로운 예술작품 전시 형태’라 할 수 있다. 2차원적인 회화의 세상을 3차원, 아니 4차원으로 구현해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보스 드림즈‘는 관객들 모두를 ‘환상적인 보스의 꿈 속 모험 여행’으로 끌고 간다.

초현실적인 세상을 통해 500년이라는 세월을 ‘꿈’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함께 여행한 관객들은 그 긴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이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사유하며, 선택한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표현하고, 소통하며, 함께 나누고 치유한다. 이해하고 이해받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는 것, 그 궁극적인 ‘거울’의 기능을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보스의 작품에 빠져드는 것은 그가 남긴 삶에 관한 질문과 메시지,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픈 강렬한 이해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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