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몬트리올의 한국영화 홍보대사 이미정 영상연구가
[인터뷰]몬트리올의 한국영화 홍보대사 이미정 영상연구가
  • 김두호
  • 승인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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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큐레이터·프로그래머까지 폭넓게 활약
연중 문화행사가 개최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영화교류사업을 하는 재(在)캐나다 동포 이미정 시네아지 대표.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캐나다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도시 몬트리올에서 영상미디어 관련 연구 및 각종 영화행사를 주관해온 재(在)캐나다 동포 이미정 씨(1959∼ 몬트리올 시네아지 대표)는 소속 없는 한국영화 홍보대사의 활동과 역할을 하고 있다.

1996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뉴욕 한국문화원, 한국 문화 관광부와 캐나다 연방정부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신상옥·유현목·임권택 감독 등 한국영화의 대가 3인의 작품 회고전을 몬트리올, 오타와, 토론토, 밴쿠버 등 캐나다 4개 대도시를 2개월간 순회하며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활동 행보는 주로 한국영화의 예술혼을 캐나다 지역에 전파하고 영화 한류의 불씨를 심는 일 쪽으로 옮겨 다녔다.

몬트리올에 있는 퀘백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제출한 학위논문의 주제도 '동서양을 가르는 수평의 미학' 연구인데 홍상수 감독의 연출작품을 연구 논문의 기초로 삼을 만큼 이미정 영상미디어 연구가의 활동 영역에는 캐나다에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심어가는 프로젝트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의 직함에 포함되어 있는 몬트리올한인회 문화예술이사도 인문학을 토대로 한 영상예술 분야의 전공이론과 자신의 활동 경험인 실기 노하우를 재능기부로 활용하며 참여하고 있다.

그는 한류라는 시류를 타고 등장하는 각종 해외 문화 예술 행사나 단체들의 활동이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반갑고 지원해야할 현상이면서도 한편은 한국적인 문화 예술의 기본적인 가치나 이해 없이 흥미중심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모처럼 모국을 방문한 그를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가 2017년을 마감하며 서울 명보아트홀에서 개최한 제1회 신필름예술영화제 행사장에서 만났다.

-신필름예술영화제 참석은 예정된 일정인가?

아니다. 아버님 별세로 서울에 머무는 동안 신상옥 감독의 영화사였던 신필름이라는 행사 명칭에 관심이 있어서 예정에 없이 참석했다. 신상옥 감독 작품은 캐나다 영화관련 학자들도 감탄하고 한국영화를 재평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 감독 영화라면 이제는 고전이 된 작품들이 많은데 그곳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이 좋은 평가를 한 작품이라면?

1996년 한국 명감독들의 작품을 가지고 캐나다에서 한국영화 주간을 개최했을 때 신상옥 감독의 1967년 작품 <꿈>,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등을 본 그곳 영상분야 전문가와 관객들이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발견한 듯이 놀랍다는 반응을 남겼다. <꿈>은 초현실적인 기법이 돋보인 시대극으로 흥미진진한 플롯라인과 명료한 메세지, 화려한 색채감등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지금 관객들이 감상해도 소재 선택이나 연출기법 등 영화의 완성도에서 부족함이 없는 빼어난 수작이다.

-당시 한국영화주간에 소개된 감독들은 신상옥 감독 외 또 어떤 감독들인가?

1996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뉴욕 한국문화원, 캐나다내 4개도시에 있는 시네마테크등 여러 기관과 정부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신상옥·유현목·임권택 감독 3인의 작품 회고전을 몬트리올, 오타와, 토론토, 밴쿠버 등 4개 대도시에서 두 달 동안 순회 공개했을 때 3인의 출품작품 대부분이 한국영화의 뛰어난 예술성을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 <만다라>도 크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단지 한국영화사에 걸작으로 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과 같은 영화에서 다룬 사회적 소재는 그곳 평론가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때만해도 캐나다에서는 한국영화가 거의 전무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식사 때 사용하는 젓가락 문화도 중국이나 일본으로만 알고 있었고, 한국이 지도상에 어디 있는 지를 물을 정도로 문화적 이해가 미미했었다. 한국을 설명할 때 반드시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린 나라라는 부연 설명이 있어야 했던 시대이다.

사진=이미정 제공
캐나다 4대도시에서 임권택 감독(사진 오른쪽)을 비롯한 한국영화 대표감독의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한 이미정아티스트/사진=이미정 제공

-전공과 활동하는 업무가 모두 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영화는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다. 캐나다로 가게 된 것은 우연한 동기가 있었지만 처음 목적은 유학이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퀘백대에서는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모두 영화관련 인문예술학 쪽을 선택했다. 정착 후는 대학시절 전공도 활용해 영화관련 행사의 큐레이터와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고 단편 창작영화를 직접 연출 제작하는 회사도 운영해 왔다. 그래서 영상분야 아티스트도 내 주요 직업이다.

-영화와 관련이 있는 직종들이지만 전문성으로 볼 때 함께 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다.

캐나다에 사는 여성들은 일에 관해서는 남성과 비교해 직업이나 사회활동에 구분이 없고 차이가 없다. 일에 대한 의욕도 강하고 능력도 있어서 억척스럽다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활동한다. 전문직도 한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여성이 많다. 특히 여자 영화감독이나 제작자에 대한 기술 스태프들의 예우가 각별해 문화 예술인에 대한 국가적 전통이나 사회 분위기가 활동에 긍지를 갖게 한다.

-몬트리올은 몬트리올국제영화제와 관련해 한국 영화인들에게 친숙한 도시 이름이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에 출연한 신혜수 배우가 여우주연상, 그 뒤에 대동흥업이 제작한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제작자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근래에는 몬트리올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몬트리올은 1960년대만 해도 문화예술 분야에서 미국의 뉴욕보다 더 화려한 도시였다고 한다. 예술행사 개최 빈도나 규모도 북미에서 최고의 도시였고 영화제도 창립 초기에는 국제적으로 손꼽는 대규모의 축제로 시선을 모았다. 그런데 올해 86세로 연로한 서지 로지크(Serge Losique) 집행위원장이 창립 때부터 41년간 자리를 고수하며 영화제의 변화와 발전을 촉구하는 소리를 외면해 연방정부도 재정지원을 하지 않아 행사가 위축되고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캐나다 국내에서부터 몬트리올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안타깝다.

사진=이미정 제공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 참석한 류승완 감독과 함께한 이미정 아티스트/사진=이미정 제공

-캐나다 유학이 우연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대학 졸업 후 주2회 발행하는 전문지인 교통관광신문사 기자로 활동할 때인 1991년 캐나다 외무부 초청으로 한국인 이민사와 캐나다 문화.예술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그 무렵 현대자동차가 캐나다에 현지 공장을 조성할 때였다. 취재 체류기간 중 몬트리올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가 8월말과 9월 초 두 달 사이에 잇달아 개최되어 참가할 기회가 되어 영화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 다시 토론토에 있는 한 작은 영화제 관계자로부터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

그즈음 주한프랑스문화원에 근무하셨고, 충무로에 젊은 영화인들이 찾던 '시네필'이라는 카페도 열었던, 박건섭 선생님(전 동서대 교수) 소개로 프랑스문화원이 영화관련 프로젝트 한 가지를 주문해왔다. 대한극장 개봉을 앞둔 뤽배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의 영상 이미지를 영상 소설(한국어)로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마도 그 영화를 100회 정도를 반복해서 보며 반 창작소설을 한편 써주면서 1993년 몬트리올로 유학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캐나다에서 영화 관련 활동을 하게 된 동기라면?

처음에는 이주나 정착할 생각이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에 도움을 받기 위해 국내(한국)에서발행하는 영화잡지 로드쇼, 키노 (KINO)등의 해외통신원으로 글을 기고하고, MBC 라디오방송 현지 통신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예술 분야 소식을 전해주는 일을 하다가 현지 몬트리올영화제 한국과 아시아부문 코디네이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어서 한동안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2년부터 한국영화제인 '코리아 필름페스티벌 인 캐나다'를 창립해 한국의 문제작이나 독립영화 작품을 주로 소개해왔다.

/사진=이미정 제공
2007년 몬트리올에 위치한 갤러리 La Centrale에서 열린 미디어 전시전 '정원에서.' 공동으로 협업한 작가들과 함께한 이미정 아티스트(사진 맨 오른쪽) /사진=이미정 제공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직접 연출한 작품도 있지 않은가?

퀘백대 석사과정에 있을 때 지도교수가 학업에 적을 두면서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회사 창업을 적극 권하셨다. 시네마 아시아를 불어로 표기한 '시네-아지(Ciné-Asie)'라는 아시아 컨텐트를 다루는 미디어아트전문 비영리법인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앞서 소개한 한국영화의 대표 3인 영화 감독의 회고전도 '시네아지'의 힘으로 진행했다. 또한 전수일 감독의 순회상영 회고전을 열어 그의 대표작 <검은머리의 소녀>, <개와 늑대의 시간>등을 처음으로 북미주 7개 도시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및 캐나다 대도시의 시네마테크 등에서 순회하며 소개했다.

독창적인 영화의 형식미가 압권인 홍상수 감독의 대다수 작품도 소개해 호평을 받았다. 캐나다 한국영화제 역시 시네-아지가 주최하고 있다. 이외 세미나와 워크샵 등이 연중 열리고 있다. 시네-아지의 대상 관객은 동양문화 연구가, 학자, 비평가 및 문화 연구가들이다. 나의 사업 활동은 주로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논문. 에세이의 소재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반관객들의 욕구는 다른 경로를 통해 많이 채워질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연출한 작품은?

1995년 캐나다국립영화제작사의 시나리오 공모에 에니메이션과 다큐 형식을 합성한 <벌거벗은 물고기 Naked Fish>란 작품을 응모해 당선되었다. 시놉시스를 보고 선정되면 시나리오완성과 영화제작까지 지원하는 공모사업이지만 자국민을 대상으로 해 외국인 유학생은 응모자격이 없는 거였다. 그 담당부서의 책임 제작자이자 심사위원이었던 마이클 후쿠시마라는 프로듀서가 자신이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함께 6개월 작업하다가 진전이 더디어 포기했다.

그때는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고 얼마나 인내하며 만들어야하는 지를 모르던 햇병아리였다. 이어서 내가 쓴 시나리오로 배우를 캐스팅해 대학원에서 만든 첫 흑백 영화가 <I am the Park>이며, 캐나다국립영화제작소의 지원을 받아 완성한 첫 작품이 <Facades> 라는 단편이다. 이외에 다섯 편을 더 만들었다.

-지금도 학업을 계속하는가?

박사과정은 이미 수료했다. 공부하고 일하면서 이론과 실기 반반씩 병행하느라 논문준비가 늦었다. 최근에 제출된 논문의 심사결과가 나오면 영상미디어 예술학과에서 영화 전공으로 최종 학위를 받게 된다. 논문의 주제도 '동서양을 가르는 수평의 미학'으로 홍상수 감독의 연출작품을 주요 분석 소재로 장자와 들뢰즈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동·서양의 유사성과 차이를 접목시켰다. 내게는 늘 동·서양의 그 가시적, 추상적, 시·공간의 거리 즉 갭(gap)이 화두였던 것 같다. 늘 이쪽과 저쪽의 경계인으로서 사니까.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

잘 계획하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는 것도 별로 없다. 애써 꼽는다면 2019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다. 1세기의 역사는 영화 선진국이 이룬 역사와 차이가 없다. 한국영화사를 다시 써야할 시기를 맞는 것 같다.

과거는 오늘과 내일의 선상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한국 영화 고전에 대한 번역작업도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반면, 깊이있는 한국영화관련 영문 자료(서적)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 겨우 고 이영일 평론가의 영문판 <한국영화의 역사, 1998년>가 한국영화사를 읽는 지표가 되고있다.

고전영화 작품을 비롯해, 김기영 감독,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주역인 이장호·배창호·장선우 감독의 작품과 그들의 인물 스토리도 재조명, 대중문화의 모체인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보다 광범위하게 소개하는 영문판 등 외국어 번역서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금 현역에서 활발히 작업하는 감독들의 작품도 수작들이 많은데 안타깝다. 해외 영화 잡지에 간혹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감독의 이름이 보여도 인물이나 작품관련 소개 책자를 찾으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사진=이미정 제공
한국관련 행사를 '캐나다 한국영화제'로 통합했다는 관련 기사. 기사사진 속 이미정 아티스트의 얼굴도 보인다./사진=이미정 제공

-해외에서 영화라는 미디어를 보는 시각이 궁금하다. 영화산업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디지털문화가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허물어뜨리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런 새로움이, 새로운 충격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이다. 소통 방식의 변화에 따른 영화 제작환경이나 접하는 방법 역시 다양화 되고 있다.

영화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를 비유해 말하면, 우리는 “영화는 더 이상 영화관에 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3D, 4D 등이 등장했고, 그런 기술 도구들은 개인적 경험의 공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소형 디지털기로 만들기가 가능해지고, 영화보기는 지하철, 카페, 집 등 모바일 공간으로 이동했다.

영상매개체도 변형이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열광하는 영화제도 필름 시네마보다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로 확장 다양화 되는 행사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란 어떻게 만들고, 어디서 보느냐가 아니라, 이제는 Why, 왜 해야 하나를 질문하며 시작하는 컨텐트와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진부하게 반복하는 이야기겠지만,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 사회학 그리고 가능하다면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의 경험이 만날 때 새로운 미래로의 여행이 시작된다고 본다.

-못다한 얘기가 더 있는가?

인문학과 영화 쪽을 전공한 사람이 조금 전 철학적 사유란 말을 하고나니 뒷 설명을 좀 더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철학적인 사유를 예술 행위로 표현하는 이론과 실기의 실험에 과제를 두고 그곳 콩코디아대학교의 저명한 에린 메님 철학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사상을 참고로 한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에서도 번역판이 나온 <가상계>의 저자인 철학자 브라이언 미수미도 참여하고 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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