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남한산성' 이병헌 "난 우유부단 스타일…최명길과는 정반대"
[인터뷰]'남한산성' 이병헌 "난 우유부단 스타일…최명길과는 정반대"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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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원작 영화 '남한산성'서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 맡아
영화 '남한산성' 이병헌
영화 '남한산성' 이병헌

[인터뷰365 김리선]영화 '남한산성'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이병헌의 말처럼 'MSG를 치지 않고' 양념을 쏙 뺀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다.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은 400년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 서로 다른 신념으로 팽팽하게 맞선 두 신하, 최명길과 김상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병헌은 철저히 시나리오에 따라 역사 속 인물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화 속 상황에 맞는 즉흥적인 대사로 '애드립의 신'이라 불리는 그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롯이 시나리오에만 집중했다. 

이병헌은 "완벽한 시나리오에서 그 이상의 애드립이나 아이디어는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이병헌은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을 맡았다. 최명길은 청에 끝까지 맞서 대의를 지키려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과 영화 내내 날카로운 논쟁을 펼친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 대해 "누가 옳은지 선택하는 건 중요치 않다"며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두 충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역을 맡은 이병헌

-영화 속 논쟁신이 많았다. 당시 촬영장 분위기는. 

현장에서의 기싸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영의정 김류 역을 맡은 송영창 선배님이 대사를 할 때마다 현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선배님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웃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의외였던 점은 시사회 때 예상치도 못한 장면에서 관객분들이 웃으시더라. 극 중 송영창 선배가 맡은 김류가 상황에 내몰리거나, 인조(박해일)가 그를 향해 툭 내던지는 말한마디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더라. 비통한 감정이 가득한 상황에서 웃음을 의도한 바도 아니었는데 우리 모두 놀랐다. 시사회 후 가진 뒷풀이 술자리에서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제일 크게 부딪히는 논쟁신이 인상깊었다. 

촬영 당시 긴장감이 엄청났다. 배우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스태프들까지도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영화에서 대신들로 나오신 선배님들도 숨소리를 안내시면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인조역을 맡은 박해일씨는 한마디라도 잘못 말해 혹여 신을 망칠까, 우리보다 더 긴장하는 눈치였다.(웃음) 왜냐면 그 신이 길기도 긴데다, 대사도 엄청 많았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서로 말로 치열하게 주고받으면서 감정이 격해지는 신이어서 혹여 실수라도 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신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모두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촬영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느낌이었나.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났다. 이렇게 충실하게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감독님과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면서 작업을 해왔는데, 시나리오를 본 순간 '내가 할 게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역사를 고스란히 고증을 하기 위한 감독님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혀 필요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나리오에 형상화된 최명길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내 스스로도 만족하겠다 싶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협녀, 칼의 기억(2015)'에 이어 세 번째 사극이다. 공교롭게도 최명길은 인조반정으로 광해를 몰아낸 인물이다. 광해 역을 맡았던 경험이 몰입에 방해되지는 않았나.

전혀 그런거는 없었다.(웃음)

-정통 역사극인데다, 대사도 방대한데.

출연 결정을 하고 시나리오를 다시 찬찬히 읽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반응하더라. 대사도 엄청 많고, 생경한 단어도 많았다. '어려울 것이다'고 인식이 되는 순간, 의도한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집중도가 높아지더라. 가볍게 시나리오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촬영 날이 가까워질수록 "촬영날이 며칠 안남았어, 제대로 (대본을)니 것으로 만들어야해"라며 내 몸이 시키는 느낌이었다.

영화 '남한산성' 속 이병헌
영화 '남한산성' 속 이병헌

-배우 이병헌의 입장에서 볼때 최명길에 공감이 가는지.

일단 최명길과 난 전혀 다르다. 난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조 같은 타입의 사람이랄까. 반면 최명길은 한가지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지 않나.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내가 왕이었다하더라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 같더라. '내가 우유부단해서 그런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 못할 만큼 최명길과 김상헌은 옳은 얘기만 한다. 힘의 분배를 절묘하게 똑같이 했다는 점이 신기했을 정도다. 이게 이 시나리오의 힘이자 매력이다. 또 한편으로는 위험함이라고도 생각했다.

- 위험함이라하면.

이 영화는 정말 간신처럼 감정이입이 왔다갔다한다. 최명길의 말이 맞다가도 김상헌 말을 들으면 다시 30초만에 바뀌니까. 아주 특이한 경험을 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누가 옳은지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색깔이 뭐가 중요한가. 결국 인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개인적으로 실리와 대의 중 어떤 것을 중요시 하는가.

내가 결정장애라서.(웃음) 내가 연기를 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백성을 구하자는 생각 하나였던 것 같다. 백성을 대전제로 거기에 어떤 정치적인 색깔이 입혀지고, 규정되어버린 것 같다. 인간을 위해 정치나  제도등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뻔한거고 당연한 사실인데,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최명길은.

굉장히 젠틀하다는 느낌이 들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우리만큼 이성적인 사람이다. 상헌과 팽팽하게 의견 대립을 하다가도 어떤 상황에서는 상헌의 말에 지지를 표하기도 하고, 심지어 후반에는 왕에게 "김상헌은 유일한 충신이니 그를 절대로 버리지 마소서"라고 말할 정도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영화 속 최명길이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비통함이나 비애가 아니었을까. 47일간 남한산성에 도피해있던 거의 모든 인물들은 각자 자기 인생에서 오갈데 없는 백척간두의 현실속에서 가장 비애를 느꼈던 시간이었을꺼다.

최명길 역시 그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당장 우리 백성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최명길은 왕에게 오랑캐의 발 밑을 기어서라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숨을 걸고 왕에게 말을 했던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김상헌 캐릭터였더라도 흔쾌히 했을까.

물론이다. 한창 영화를 찍고 있는데, 이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이 원작 팬이라면서 "김상헌을 하지, 왜 최명길을 맡았냐"며 다그치듯 말을 하시더라.(웃음)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영화사 측에서도 내가 이 역할을 안할 줄 알았다면서 "맡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더라. 사실 김상헌이란 캐릭터에 욕심은 없었는데, "김상헌 역을 했어야 했나?"란 생각이 들더라.(웃음)

 

영화 '남한산성' 촬영 현장
영화 '남한산성' 촬영 현장

 

-황동혁 감독과 첫 호흡인데.

기존과 다른게 있다면 촬영을 하면서 모니터링을 거의 안한 첫 영화다. 촬영 초반에는 이전에 해왔던 방식대로 테이크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눴다.

그러다가 하루는 3번의 테이크를 갔는데, 감독님이 첫번째가 좋다고 하시실래 나는 세번째가 좋다고 말했다. 같이 다시 봤더니 미묘한 차인데 감독님이 정확하게 보셨더라. 이런 상황이 몇번 있고 나니 아예 모니터를 안보게 됐다. 볼 필요가 없었다. 감독님이 오케이하면 오케이라는 믿음이 생기니까. 정확히 뭘 찍어야할지 명확히 알고 계신 분이었다. '전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감독이라면, 배우들이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이 원하는 감정이나 장면이 한번에 나왔으면, "저는 됐는데, 한번 더 하실래요?" 물어본다. 원테이크로 끝난적도 있다. 사실 저예산 영화도 아니고,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닌데 '자신감 있게 한 번에 가능할 수 있을까' 놀라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정말 스마트한 분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감정이 나오면 바로 오케이가 났고, 대부분 두세번 테이크로 끝이 났다.

-할리우드 활동 계획은.

(이병헌은 2009년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으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지.아이.조 2'(2013), '레드:더 레전드(2013)', '터미네이터:제니시스(2015)', '미스컨덕트(2016)'에 이어 최근 '매그니피센트7(2016)'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할리우드 배우 반열에 올랐다. 2012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핸드프린팅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이상적인것은 한국과 할리우드를 한두 편씩 오가면서 하는건데, 그게 내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 않나. 내가 어떤 작품을 할지도 모르는거고, 또 언제 기가 막힌 작품이 들어올 지도 모르는 거니까. 국내의 경우는 다른 스케줄이 겹치더라도 서로 융통성있게 조율할 수 있겠지만, 할리우드는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힘도 없고, 또 그런게 통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오가는건 힘든 일 같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병헌의 할리우드 데뷔작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왼쪽), 최근 할리우드 출연작 '매그니피센트7'
이병헌의 할리우드 데뷔작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스틸컷(왼쪽), 최근 할리우드 출연작 '매그니피센트7' 스틸컷

-최근 검토 중인 할리우드 작품은.

최근 들어온 작품들은 다 거절했다. 우선 시간적으로 국내 출연 작품들하고 안 맞더라. 정말 작품이 좋았다면 참여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나를 새로운 시장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결정해온 감이 있었다.

내년 중반 이후 계획되고 있는 작품들을 위한 미팅을 위해 얼마전에도 잠깐 할리우드를 다녀왔다. 어떤 작품들이 진행될 것이란 정도만 아는거라서,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은 없다.

-작품 선택시에는 우유부단하지 않는가.

이성적인 결정이 아니고 마음이 끌리는걸 선택하면 되니까. 이성적인 결정 앞에서는 생각만 많아진다.(웃음)

-시사회 후 주변 반응은.

아내(배우 이민정)가 울었다고 하길래, "정말 슬펐냐", "재미있게 봤냐" 물었더니 너무 재미있었다더라.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액션이나 화려한 볼거리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젊은 관객들에게 진지한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직접 본 소감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생각해봤다. 분명한 점은 이 작품은 뭔가를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고, 누가 옳다 그르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도 아니다. 방법론이 아닌, 나라를 사랑하는 두 충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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