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영화 ‘보통사람’ 곳곳에 포진해 있는 1987년 그때 그 시절
[시네세이] 영화 ‘보통사람’ 곳곳에 포진해 있는 1987년 그때 그 시절
  • 유이청
  • 승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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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사람'에서 형사 강성진 역의 손현주.

【인터뷰365 김다인】‘보통사람’은 대중이나 민중과는 다르게, 나서지 않고 처지지도 않으며 조용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선거전에 이용함으로써 특별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풍자적으로 쓰였다.


영화 ‘보통사람’의 시대적 배경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87년 봄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일체 개헌 논의를 금하는 4·13 호헌조치를 내놓았고 한국 사회는 얇은 얼음장으로 끓어오르는 불을 가려 놓은 듯 위태로웠다.


영화는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는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로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 권력층에서 불을 감추려 덮어 놓았던 얇은 얼음장, 공작정치의 내막에 주목한다.


극중 그 공작을 담당하는 이는 안기부 실장 최규남(장혁)이고 그의 손발 노릇을 하는 이는 평범한 가장이자 형사인 강성진(손현주)이다.


발바리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다가 놓친 강성진은 상부의 닦달에 어리숙한 용의자 김태성(조달환)을 체포한다. 진짜 발바리를 체포한 후 김태성을 놓아주기 직전, 밖에 나가 허튼 소리 못하게 윽박지르는 도중 뜻하지 않게 김태성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자백한다.


이 자백은 안기부에 의해 연쇄살인사건으로 조작되고 김태성은 무려 17명을 죽인 연쇄살인마가 된다. 어수선한 정국의 눈돌림용으로, 한 가수를 대마초사건으로 엮어 발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강성진은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 형사가 되고 ‘뜨거운 애국심’과 ‘현찰’로 인해 최규남이 꾸미는 일들의 하수 노릇을 한다. 거기에는 말 못하는 아내, 다리가 아픈 아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행동은 절친한 친구이자 기자인 추재진(김상호)을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다. 뒤늦게 후회하지만, 권력의 힘은 훨씬 빠르고 강하게 그를 제압한다.


영화는 곳곳에 1980년대 이후 우리 정치 사회에서 겪고 봤던 일들이, 감독 표현에 말에 따르면 “이스터 에그”가 포진돼 있다. 남산 고문실 상황은 1987년 1월에 있었던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탁 치니 억 죽었다”는 황당한 보고와 함께. 고문을 하는 담당 경찰은 실존했던 고문기술자가 생각난다. 연예인을 대마초로 엮는 일은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등장한다는 음모론과도 연결돼 있고, 요정 장면은 10·26 현장이 연상된다. 연쇄살인마는 최초의 연쇄살인마로 기록된 1975년 김대두 사건에서도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감독이 직접 밝혔다.


곳곳에 한국의 정치 사회적 사건들을 포진시켜 놓았지만, 영화는 가장(家長)을 앞세워 끌고 나간다. 강성진이 권력의 개 노릇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 사정과 다리 아픈 아들이 겹쳐진 탓이고, 심지어 감정 기복을 전혀 내보이지 않는 최규남의 퇴근길에 그의 손에 들린 것도 센베 과자봉지다.


그 중심에서 강성진 역의 손현주는 최선을 다해 그 시대 가장과 형사 역을 해낸다. 특히 가장 손현주 옆에는 말 대신 눈빛으로 청각장애인 연기를 하는 라미란의 연기적 내조가 빛을 발한다.


라미란뿐 아니다. 장혁, 김상호, 태성 역의 조달환 등도 다른 연기자들에게 빚지지 않고 자기 몫을 다 해낸다. 대사 한마디 없는 요정 마담 역의 배우(찾아보니, 이름이 최윤소다)조차 정갈한 외모로 시선을 끈다. 게다가 카메라에 잡히는 배경들은 1980년대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놓아 영화 속 시대 배경과 이물감이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무리 부분이 다소 헐겁고, 30년을 건너뛰어 2017년에서 끝낸 것은 의도는 알겠으나 그리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영화 ‘보통사람’은 한 개인의 행동을 통해 그 시대를 조망할 때, 과연 시선을 어디에 어떻게 둬야 할지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비단 이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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