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남1970’ 이민호 “강남 갈땐 더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 있었다”
[인터뷰] ‘강남1970’ 이민호 “강남 갈땐 더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 있었다”
  • 김보희
  • 승인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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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첫 주연영화 '강남 1970'에 종대 역을 맡아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보여준다.

【인터뷰365 김보희】 꽃보다 아름다웠던 배우 이민호(28)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스크린에 등장한다. 그동안 드라마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을 통해 부잣집 도련님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민호는 첫 주연을 맡은 ‘강남 1970’에서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 믿을 것은 자신뿐인 고아 김종대 역을 맡아 거친 남자의 매력을 내뿜는다.
이민호는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에서 조연으로 데뷔해, ‘달려라 고등어’ ‘아이엠샘’ ‘나도 잘 모르지만’등 학원물에 출연했으며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 1-1’ ‘울학교 이티’에 단역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그러던 중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히트를 치면서 주인공 구준표 역을 맡았던 이민호는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세련된 외모와 187cm의 훤칠한 키로 드라마 ‘개인의 취향’ ‘시티헌터’ ‘신의’ ‘상속자들’에서 주연을 차지하며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민호는 평범하고 소탈한 20대 남자였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농담을 하거나, 채팅어를 사용해 재미있게 말을 하는 등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첫 영화 주연작이다. 본인은 ‘강남 1970’을 어떻게 봤나.
두근두근 하면서? 하하. 내가 출연한 영화라서 객관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아직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늦게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하길 잘한 것 같다.

왜 늦게 하고 싶었나.
‘꽃보다 남자’ 이후 드라마 주연으로 연이어 캐스팅 되면서 영화는 20대 후반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들이 많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어린 배우들이 무리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외적으로 성숙되고 표현에 대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하고 싶었다. ‘강남 1970’에서는 극중 종대의 나이는 26살로, 내 나이 또래의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촬영 7개월 동안 수염을 기르고 로션도 안 바를 정도로 얼굴 관리를 안했다고 들었다.
맞다. 특히 거지분장을 하고 촬영을 하면서 ‘진짜 불쌍해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현장에 오셔서 보고는 ‘너무 안됐다. 반찬이라도 싸줄까’라고 하셨다. 당시 피부도 까칠했고 수염도 나면서 내 스스로도 진짜 얼굴 많이 상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관리를 안 한 것 치고는 영상에 표현이 잘 안 됐다.

폭력 3부작인만큼 잔인한 장면도 많다.
잔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촬영에서는 찌르고 베는 타이트샷까지 찍었으며 베드신도 훨씬 더 수위가 높았다. 그러나 편집과정에서 조절이 됐다.

편집된 장면 중에 김지수와 베드신 장면도 있었다.
침대 위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내용의 흐름상 크게 영향을 주는 장면은 아니었기 때문에 편집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다만 상의 탈의를 위해서 현장에 트레이너 분이 오시기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다.

극중 종대에게 두 여자가 있다. 필요에 의한 민마담(김지수), 순정을 담은 여자 강선혜(설현). 만약 종대가 끝까지 살아있었다면 두 여자 중 누굴 택했을까.
당연히 선혜가 아닐까. 얻고자 하는 것들은 얻었으니까. 삭제된 장면 중에 길수(정진영)가 죽고 나서 종대가 집을 쌓아 올리고 있고 민마담에게 ‘내 앞에 있는 재산을 선혜에게 다 줘라’라는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종대가 꿈꿨던 삶은 따뜻한 밥 한 끼와 가족끼리 지낼 수 있는 집 한 채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전부였다. 땅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집을 다 짓고 나면 일에서는 손을 떼고 선혜와 같이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고백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평생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가족같이 그 집에서 둘이 살았을 것 같다.

본인이 만약 김래원이 맡았던 용기 역을 맡으면 어땠을까.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용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는 것들이 많고 변심을 품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연기자로서 욕심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감독님께 용기를 더 강력하게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더니, 감독님께서 그렇게 되면 ‘비열한 거리’ 캐릭터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용기를 연기했다면 재밌었을 것 같다. 나 역시 살면서 포기하고 참는 것들이 있다. 현실로 이룰 수 없는 갈증들을 역할로 시원하게 풀어보고 싶기도 하다.

앞서 언론 시사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드라마 연기와 영화 연기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그 차이는 무엇인가.
TV 드라마는 쪽대본도 많고 4회 이상부터는 생방송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나름대로 편하게 한다고 하는데 컨디션에 따라 날카롭거나 딱딱한 말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잠을 충분히 자고, 전체 대본을 미리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보다는 좀 더 말하는 것처럼 안정되고 리얼하게 연기가 나온 것 같다. ‘강남 1970’에서의 연기 만족도는 70%다.

이민호는 2015년 마지막 20대를 보낸 것에 아쉽다며 틈틈히 놀아보겠다는 귀여운 각오를 내비쳤다.

드라마에서 이민호의 이미지는 여자들의 로망, 부드러운 남자의 이미지가 컸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거친 남자로 변신했다. 이미지 변신에 대한 의도가 있었나.
아직은 20대이기 때문에 그런 강박관념은 크지 않다. 만약 그런 변신을 원했다면 ‘상속자들’ 출연을 안 하고, 그 때쯤 이미지 변신을 위한 작품을 했을 것이다. ‘강남 1970’이 여심을 잡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자답게 보이려고 한 영화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20대 후반에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유하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받게 됐고. 첫 영화로 유하 감독님의 작품들은 신뢰가 있어서 믿고 출연할 수 있었다.

유하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
유하 감독님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 역시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테이크도 3번 이상 간적이 없고, 굉장히 편하게 찍었다. 감독님께서 준 디렉션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극중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더라도 그 안에 슬픔이 있고 절박함이 있으면서 근데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 않으면서 슬퍼보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단순하게 1차원적인 캐릭터 표현보다는 여러 각도의 모습이 담긴 모습을 원하셨다.
옆에서 지켜본 유하 감독님은 스태프들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하고 결론을 내신다. 그래서 우유부단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똑 부러지는 경향이 있다. 성격이 반대라서 더 잘 맞았다.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앞서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 ‘비열한 거리’ 조인성에 비해 비주얼 비교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그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아 내가 부담감을 가져야 하는구나’라고 주입이 되고 있다. ‘말죽거리’를 고등학생 때 보고 ‘비열한 거리’는 20대 초반에 봤다. 당시 ‘말죽거리’는 일탈을 꿈꾸는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봤으며, ‘비열한 거리’는 남자들의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20대의 시선으로 배신의 과정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본인이 서울 태생이어서 이 영화를 찍으며 강남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을 것 같다.
현재 강남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매일 보는 강남이 1970년도에 그런 도시개발로 이뤄졌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재밌지만 씁쓸한 마음이 가장 컸다. 사실 어렸을 때는 강남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강남 하면 잘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강남을 갈 때면 뭔가 더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주 생활권이다보니 그런 생각이 없어져서 더 신기했다. 강남에서 살지 않았을 때는 크고 멀게 느껴졌지만, 안에서 살게 되면 똑같이 사람 사는 곳에 불과하다. 그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다. 그런데 우울한 역할을 맡으니 온도차에 대한 괴로움이 심했다고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어떻게 극복했나.
영화 찍을 때 정말 우울했다.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빨리 나의 모습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속자들’ 때처럼 풋풋한 얼굴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본인도 종대처럼 힘든 시절이 있었나.
20살부터 24살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나이에 가장 밝지만, 나에게는 가장 어두웠던 시기다. 그래서 종대가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자아도 그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대 초반이면 EBS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해 연기를 시작했을 때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비밀의 교정’이라는 작품이 끝나고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2명이 죽었고, 나 역시 1년 동안 병원에만 있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쉬고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꽃보다 남자’ 전까지는 촬영장에 가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다. 현장에서 마냥 즐길 수는 없는 신인이기에 긴장을 많이 했다. ‘꽃보다 남자’를 찍을 때도 어느 시점까지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긴장하거나 경직된 적도 있었다.

그럼 ‘꽃보다 남자’가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것인가.
그렇다. 그 전에는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를 통해 많이 채워졌고. 개인적으로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를 세상 밖으로 던져줬고, 물질적으로도 힘들었던 것을 해결해준 작품이기도 하고, 내 안의 갈증을 해소 시켜준 작품이기도 해서 여러 면에서 나에게 고마운 작품이다.

종대는 땅을 위해 달려간다. 이민호는 배우로서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나.
나는 꿈도 없고 목표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하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주연에 대한 책임감, 작품을 기다려준 책임감, 팬에 대한 책임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등이 매년 더 쌓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임감에서 내가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시간이 지났을 때 후회하지 않고 창피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당하기 위해 책임감을 기반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중에 10년 후에는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을지,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주어진 일에 달려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현재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시티헌터’가 한국에서는 ‘최고의 사랑’에 밀려 후반부에 잘됐지만, 중국 동남아 쪽에서는 인기를 끌었다. 이후 ‘신의’ ‘상속자들’이 잘되며 중국에서 대중적인 배우가 됐다. 중국은 한국과 비교해 인구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같이 간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서 많은 것을 해보지 못했다. 호텔 아니면 행사장에 주로 있어야 했다. 공항도 다른 통로로 다니고 호텔도 로비가 아닌 뒷문을 통해 다녔다. 식당을 가려면 경호원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니 호텔 룸서비스에 더 익숙하다.

2015년의 계획은 무엇인가.
올해도 소처럼(?) 열심히 일할 것 같다. 생각에는 매년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을 꾸준히 하고 싶다. 그래서 올해 영화나 드라마로 또 한 번 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올해가 20대의 마지막이다. 실컷 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까지 나의 관심사는 청춘이었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다양하게 소화해보고 싶어서 ‘상속자들’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교복을 입기도 했다. 올해도 내 나이에 맡는 연기를 많이 해보고 싶다. 20대의 마지막이 가는 것이 정말 슬프다. 후회하지 않게 보내고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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