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인터뷰]한국 최초 특급열차 기관사 이돈호
[그때 그인터뷰]한국 최초 특급열차 기관사 이돈호
  • 김두호
  • 승인 20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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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시 이승만 대통령 모시고 평양으로 달렸다"
1982년 인터뷰 당시 서울역 열차 정차장을 찾은 생전의 이돈호 최초 특급열차 기관사.

【인터뷰365 김두호】 대한민국 2014년의 화두는 단연코 남북통일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폭죽이 되어 국내외 사방으로 쏟아져 내려 이슈가 되고 있다.

통일의 그날은 언제일까? 끊어진 철길이 이어져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양과 신의주로 발길을 맘대로 옮길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 휴전선을 뚫고 서울에서 개성 평양을 지나 신의주까지 기관차를 몰았던 분이 생존해 있었다. 1982년에 기자가 만난 우리나라의 특급열차 기관사 제1호 이돈호(李墩鎬) 씨였다.

인터뷰 당시 73세, 생존해 계신다면 올해 105세가 되므로 그분의 이야기는 이제 한국 철도사의 전설로 남아있을 뿐이다. 일생을 철도에 바친 이돈호 기관사의 생애에서 특기할 만한 일화는 1950년 10월, 6.25 남침 인민군이 북으로 쫓겨 올라가던 때 북진 나팔소리를 들으며 이승만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역에 입성했을 때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경험담이다.

고속열차(KTX)가 된 특급열차의 기관사를 지금은 기장으로 호칭한다. 살아 생전에 정든 북의 산하를 다시 한번 열차를 몰고 가보고 싶어 했던 원조 특급열차 기장의 간절한 소망을 되살려 보았다. 1950년대 열차 기장은 지금의 비행기 기장만큼 대접받는 동경의 직업인이었다.

철도 위에서 인생을 보내셨으니 철길만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그렇다. 지금도 심심하면 레일이 있는 철로변으로 내 발길이 옮겨간다. 버스를 타고 경부선이나 교외선이 있는 동네로 무심코 달리는 열차 구경을 가기도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옛날을 그리워한다. 내 청춘을 거기(철길)에 다 바쳤는걸.

최초의 특급열차 기관사로 알고 있다.
내가 이래뵈도 대동강에서 뱃노래를 불러보고 모란봉 기생집에서도 한가락 뽑아봤던 사람이다. 허허헛. 해방 전에는 만주까지 기관차가 달렸는데 해방 후 내가 처음으로 특급열차를 몰고 다녔다. 1950년 10월 6.25 때도 북진나팔소리를 들어가며 이승만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에 입성했는데 그때 기분이 해방될 때의 기분처럼 심장이 뛰었다.

당신은 1세대 기관사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 분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 고위층이 타면 기관실에 일본인 감시 기관사를 동승시켰다. 나는 용산역 소속인데 나중에 대구 부산 서울역으로 옮겨 다녔지만 남북을 오갈 때는 주로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내가 몰고 다녔다. 해방의 환호가 천지에 울려 퍼질 때 태극기가 뒤덮인 감격의 해방열차를 몰고 휘파람을 불며 경부, 경의선을 오르내렸다.

대통령이 탄 북진열차 얘기도 진기한 증언이다.
그때 나도 군복차림에 권총을 차고 평양철도관리국 운송담당으로 보무당당하게 평양역을 접수했다. 하하핫.

길지는 않았겠지만 평양 입성했을 때의 비화를 좀 더 해달라.
평양 시내는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거리에는 여자들만이 눈에 띄었다. 비어 있는 집도 많아 내가 잠시 묵은 집도 주인이 없어 내 문패를 달아서 사용을 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폭격으로 엉망이 된 평양역사를 수리해가며 역의 기능을 회복할 참에 중공군이 밀고내려 오면서 그곳을 떠나야 했다. 마지막 평양발 서울행 열차도 내가 몰고 내려와야 했다. 평양역을 출발하며 마지막 남긴 기적소리도 비명소리 같았다. 기적소리는 좋은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소리, 축하의 소리 같고 슬픈 사람들에게는 우는소리로 들린다. 떠나면서 울린 뚜뚜 그 기적소리 참, 비참했었다.

그때 남행열차는 피난열차가 아닌가.
열차에 피난민들이 메뚜기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어 처절했다. 서울로 향하면서 지나온 교량을 때려 부수며 달려야했을 때 정말 가슴 아팠다.

해방직후 서울역 근무 시절 후배들과 함께 한 이돈호 기관사.(맨 왼쪽)/ 초창기의 증기기관차와 6.25전 당시의 피난열차(철도공사 자료사진)

열차 기관사 근무가 해방 전부터라면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 전부가 석탄을 연료로 움직이는 기관차가 아닌가.
그렇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거대한 무쇠바퀴를 철길에 굴리며 달리는 ‘칙칙폭폭 열차’였다. 기관사는 삽자루로 석탄을 아궁이에 집어넣어 시뻘겋게 타오르게 해 증기 힘으로 열차를 움직이게 하니 말 그대로 증기기관차 시절이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석탄기관차가 철도의 주인역할을 했다.

언제 퇴직을 하였는가.
1962년 53살 때 정년퇴직 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1982년 인터뷰 당시). 1931년 서울 용산역에서 22살에 시작해 31년간 열차를 몰고 다녔다. 허허헛.

1931년이면 일제 강점기인데 그때는 기관차를 타보지 않은 사람도 많은 시대였다. 그런 시절에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라면 정말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직업이 아닌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되기 힘든 직업이었다. 자동차도 드물어 기관사나 자동차 운전사가 지금의 제트여객기 조종사들 보다 더 부러움을 받았고 성공한 사람으로 귀하게 대접 받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힘든 직업을 쉽게 차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 가서 양정고보(지금의 양정중고교)를 졸업하고 다시 총독부부설 철도학교를 졸업했다.

대우는 지금 가치로 어느 정도나 됐나.
쌀 한가마 5원할 때 8가마 쯤 살 수 있는 42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나중에 지금의 최고 특급열차와 같은 국제열차를 몰고 경의선을 달렸지만 처음에는 용산역 구내의 열차를 정리하는 수습기관사 노릇도 하고 1940년대부터 화물기관차와 완행열차를 몰았다. 여기서 다시 급행열차 몰고 이어서 국제열차인 특급열차를 내가 처음으로 몰았다.

만주까지 달려보았는가.
대부분 나의 임무는 서울에서 평양까지였다. 기관사는 바뀌지만 열차는 평양에서 신의주를 거쳐 만주의 봉천(지금의 심양) 대련까지 기관사들이 임무를 교대해 가며 여객과 화물을 운송했다.

서울에서 신의주 부산 만주 등지로 이어진 특급열차의 운행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그때의 특급열차인 국제열차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아카츠키호, 부산에서 만주의 대련까지 오가는 히카리호, 부산에서 만주 심양을 오르내리는 노조미호 등 6대가 있었다. 국제열차로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6시간,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4시간 반, 서울서 신의주까지는 7시간이상 8시간 정도 걸렸다. 여객기가 없던 시절이라 일제강점기에는 총독이나 왕족 등 고관대작들이 모두 열차를 이용했다. 그들은 일본에서 부산까지 배를 타고와 열차편으로 만주를 오고갔다.

돌아보면 남다르고 감회 깊은 추억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개성을 지나면 인삼밭, 사리원을 거쳐 황주에 이르면 사과밭이 펼쳐지고 그 땅을 벗어나면 평양에 이르곤 했다. 아무 열차를 몰아도 눈을 감고 평양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임진각을 가면 북으로 달리고 싶어도 못 달리는 녹슨 기관차를 볼 때가 있다. 그게 날 더 슬프게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을 이돈호 할아버지의 간절한 꿈은 다시 한 번 평양을 열차 타고 가보는 것이었다.

김두호 기자 interview365@naver.com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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