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복귀하는 박종원 한예종 총장(하)
영화감독 복귀하는 박종원 한예종 총장(하)
  • 김두호
  • 승인 201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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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학생이 총장 시절 가장 큰 슬픔 안겨줘

【인터뷰365 김두호】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8월말로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평교수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복귀한다. 최초의 ‘영화감독 출신 총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임기 내 소신있게 일했던 박 총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상편에 이어 박종원 총장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아시아 예술교육계의 리더로


한예종은 2012년 10월에 개교 20주년 기념하며 유럽예술가연맹(ELIA /European League of Institutes of the Arts)과 공동으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국제예술교육심포지움을 열었다. 간단하게 성과를 밝혀달라.
ELIA는 유럽 47개국 350개 기관으로 구성된 유럽 예술교육단체인데 예술교육 분야의 가치와 공동 관심사에 대한 폭넓은 의견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총장으로 있으면서 아시아예술교육기관연맹(ALIA)을 발족 시켜 초대 회장으로 추대 받은 입장에서 아시아와 유럽지역 예술교육 관계자들의 교류 차원에서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연맹사무국도 우리 학교에 두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 국가 간의 예술교육 교류도 없었던 점에서 특히 예술대학 간의 만남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은 흐뭇한 일이다. 무엇보다 ALIA의 창립은 서양 중심으로 흘러가던 예술교육의 가치를 아시아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한예종은 2005년부터 아시아 예술인재를 위한 국비장학제도를 만들어 현재까지 250명을 양성했다.


ALIA 회원으로 참여한 국가는?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15개국 17개 예술교육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ALIA를 창립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다. 총장으로 취임한 직후 2009년 가을 한국경제 주최 포럼에서 좌장을 맡게 되었고, 그 때 당시 발제자로 참여한 크리스 웨인라이트(Chris Wainwright, 런던예술대학장) ELIA회장과 처음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2010년 웨인라이트회장을 학교에 초청해 특강을 갖고 예술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을 공유했다. 2011년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ELIA 리더십 심포지엄에 직접 참석해 한국 개최를 제안했고, 다음해인 2012년 4월 ELIA 임원들이 학교를 방문해 행사 개최를 위한 사전 실사를 했다. 근 3년간의 만남과 노력 끝에 지난해 10월 ELIA-ASIA 국제예술교육 심포지엄을 치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서 적극적인 지지와 애정을 보내주신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과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단국대 장충식 이사장, 이세웅 신일학원 이사장, 그리고 행사 준비에 애써준 교직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더불어 오랜 외국생활을 경험으로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영어 연설문을 손수 봐주며 내조해 준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앞으로 ALIA, 아시아예술교육기관연맹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계획을 말해 달라.
아시아는 비슷한 문화를 지닌 유럽과 달리 소수민족들이 많아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다양한 문화 속에 다양한 예술의 형태를 논의 발전시켜 나가려고 한다. 예술은 다양한 문화를 집결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ALIA를 통해 정서적·감성적으로 교감하며 그 긴장감을 예술교육의 가치를 높이는데 쓰기 위해 주력하겠다.


한예종에서 교육계의 이슈였던 ‘반값 등록금’을 먼저 실현한 것과 한동안 눈총을 받았던 국립대 근무 공무원의 기성회비에 의한 연구보조비 수당 폐지도 보기가 좋았다.
등록금은 2010년부터 동결로 가다가 2013년부터는 인하를 시작했다. 공무원의 기성회비 연구보조비 수당 폐지는 학교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대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 등록금 인하는 시대정신이 됐다. 이에 맞게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는 학교 구성원들의 동의가 있었다. 3년 전부터 고민해왔던 방법이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한 지 2주 만에 모두가 동의해 줬다. 고마운 일이다. 공무원 수당 절감은 등록금 인하와 학생들의 예술교류 봉사사업에 도움을 주게 된다. 모두가 국민세금으로 유지되는 국립이라는 특성을 살려 시범을 보여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감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박 총장이 자신의 대표작 ‘영원한 제국’ 포스터 옆에 섰다.
최근 포스텍 과학도들의 초청 특강에서 ‘과학과 예술은 다른 꿈을 꾸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관심을 모았던 것으로 안다. 내용을 요약해 달라.
과학과 예술은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문명의 두 축으로 서로를 가장 완전하게 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예술가와 과학자는 다른 꿈이 아니라 서로 같은 꿈을 꾸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남겼다. 포스텍과 한예종은 2008년부터 MOU를 통해 교수와 학생들의 학술교류를 해오고 있다.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양쪽이 서로 흥미를 느끼며 여러 주제를 두고 소통하고 있다. 과학과 예술을 포함해 의학 시 논리학이 모두 그리스시대에는 테크네(Techne)에 속했다. 한 테두리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텍만 아니라 중앙공무원교육원, 국립외교원 등 예술교육과 무관한 곳의 특강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문화의 융합, 학문의 융합시대로 볼 수 있다. 나는 총장이 된 이듬해 2010년부터 학생 예술봉사 융합프로젝트를 시작해 현재까지 해외 19개팀, 국내 12개팀을 출범시켜 국내외에서 활동하게 했다. 소외된 섬마을까지 우리 학생들이 찾아가 예술 공간을 조성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포스텍과 공동으로 봉사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문화적 융합을 체험하고 발견하는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문화융성에 창조경제가 지금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서로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문화융성은 기존 전문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문화, 전문가 아닌 일반인들의 생활예술의 확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문화융성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수많은 논의가 오고가고 있지만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의 영역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드러내야한다. 우선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되고 규정화 된 틀을 탈피해 융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융합인재를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고 인간사회를 즐겁고 살 맛나게 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있다.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보는가?
초등학교 교육체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차별이 아닌 차이를 느끼게 해주고 분리하고 벽을 쌓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나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통찰력을 가진 인재는 ‘경계에 선’ 사람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유하며 통찰하며 그 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간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 생긴다고 본다.
결국 융합형 인재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다양한 전문 분야를 문화로 풀어가는 안목의 교육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여학생 자살, 가장 가슴 아파


재임 중 가장 고민하고 힘들었던 일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자살률이 높다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연속적으로 스스로 생명을 버렸던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받았다. 서로 가까운 선후배의 여학생들이 연쇄적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그 사건 후 다면적 인성검사를 하는 학생심리상담소를 개설했다. 슬픈 것은 죽기 전 주변사람들에게 심리적 변화를 예고했지만 다들 설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학생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은 제도만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수 면담을 강화하고 학생 지도 기준을 만들었다. 이는 승진, 재임용, 성과급 등에 반영되도록 했다.


기쁘고 보람을 느낀 때도 많았을 것이다.
전남 신안군과 함께 진행하는 ‘섬&아트 프로젝트’가 있다. 한예종의 음악, 연극, 무용, 영상, 미술, 전통예술 등 6개원 모두가 참여해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는 프로젝트다. 멀리 외딴 섬을 찾아가 주민들 앞에서 감동적인 교수, 학생들의 음악 봉사 활동이 자주 가슴을 찡하게 한다. 지난 겨울 신안군 안좌도 초등학교에서 마련한 오케스트라 음악회는 드라마 같은 감동을 연출했다. 퇴임한 노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초등학생들을 지도했는데 외딴 섬의 학생들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척박한 문화적 환경 때문에 자식들에게 맘껏 기회를 주지 못했던 마을 주민들에게는 기쁨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행복한 예술가, 세상에 기여하는 예술가교육이 실현되는 장면이었다. 총장이 되어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이 임기 중 최고 기쁨의 클라이막스 같았다.


여러 성과를 통해 총장 연임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아는데, 과감하게 총장 연임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소회는?
개인적으로는 영상원장도, 총장도 준비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급작스럽게 높은 산을 오르고 정상 주변에 머물다 내려오는 느낌이다. 이제 평평한 길을 걷게 될 텐데 가다 보면 인생이 다 그렇듯이 넘어야 할 고개들이 또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며 들판길이든 산길이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담담히 걸어가겠다.


박종원 감독의 대표작들. 왼쪽부터 ‘구로아리랑’(198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영원한 제국’(1995)

이제 총장 일보다 감독 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퇴임 후 영화연출을 생각하고 있는가?
미련을 두지 않게 된 것도 영화를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가 크다.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있을 것 같다.
‘가족’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를 주의깊게 보고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가 작아지면서 개별화되고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점검해보고 다시 정의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버지가 딸을 구출하는 위기의 과정에서 오해를 풀며 가족의 관계를 정립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면 죄가 되고 영적. 육체적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대형교회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영화 작가들의 작품성향과 주제의식도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박 총장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외 영화제와 관객들에게 작가주의 연출성향의 감독으로 꾸준하게 주목을 받았다. 요즘 영화감독들의 작품 경향을 어떻게 보는가?
한 편의 영화가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시대에 활동하는 영화감독들은 그에 버금가는 열정과 창의성, 모험정신을 필요로 한다. 영화감독에게 스크린은 수천 가지 세상 이야기를 담아내는 무한대 넓은 그림 마당이다. 흥행에 치중하든 예술에 치중하든 어느 시대나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가 영화산업의 대세로 볼 수 있다.
근래 화제가 된 많은 작품들이 사회성 문제를 배경으로 드라마의 모티브가 창의적이면서 흥미를 느끼게 하는 사건 중심으로 공감이나 공분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한 만화 같은 픽션을 매우 사실적인 동기부여로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설국열차>를 비롯해 실존 사건을 소재로 한 <도가니> <부러진 화살>, 얼마 전 천만명대의 영화로 이름을 올린 <7번방의 선물> 등이 이 시대 관객들의 감상취향을 엿보게 한다.


중국이 영화 한류의 대안


그러나 한국영화는 국내에서는 천만명대의 관객 수를 기록하면서 아직도 ‘한류’(韓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해외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는 것은 배급과 제작환경에서부터 한계가 있다. 그러나 14억(13억 5,400만명) 인구의 중국시장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영화 한류의 진로를 열어가야 한다. 한중 합작시대부터 활발하게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과거 대학 입시 창구에 영화를 지망하는 입시생이 구름처럼 몰리는 때가 있었지만 갈수록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우선 영화 산업이나 시장이 커지기는 했지만 영상문화가 다양화 되고 영화의 기술적인 변화나 발전이 미래산업으로 크게 눈길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영화연극학과도 이제는 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멀티미디어 등으로 영역이 다양화 세분화 되어 가고 있다.


영화감독, 교수, 총장에 이르기까지 바쁘게 활동해오면서 느끼고 발견한 삶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한예종에는 다른 대학에서 졸업을 하고 예술분야를 다시 전공하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지만 예능적 기량은 조기에 살려내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배운다는 것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지식을 익히는 과정인데 단순히 기억하고 암기하는 선에서 머물지 말고 활용 가능한 내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일찍부터 스스로 응용을 해서 내 방식으로 나타내는 창의성을 가져야 한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은 펀(Fun)을 위한 창작 콘텐츠 작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부도 즐겁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학벌과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하는 시대가 되어 창조교육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한 교육 풍토에서 공부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로 접어든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잘못된 인식의 틀에서 깨어나야 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체계와 개념에 함몰돼 안정적인 삶을 사는데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있는 곳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스스로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교과서도 정답도 없다. 그래서 더 힘들겠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깨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생긴 통찰력이 창조의 원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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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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