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센 배우 겸 감독 ‘마이 라띠마’ 유지태
고집센 배우 겸 감독 ‘마이 라띠마’ 유지태
  • 이희승
  • 승인 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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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품성을 굉장히 따진다. 천박한 영화에 나오면 내 인생도 천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365 이희승】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키워드는 ‘배우들의 반란’이었다. ‘선덕여왕’‘나쁜 남자’의 김남길은 제대 후 다큐멘터리 음악영화 ‘앙상블’의 제작자로 나섰고, 유지태는 ‘마이 라띠마’로 기대 이상의 연출력을 선보였다.
특히 감독으로서의 유지태가 보여준 가능성은 영화제 기간 내내 화제였다. 20대 초반의 이주여성이 겪는 삶의 불공평함을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30대의 한 남자와 마주하게 만들면서 한국 사회가 가진 고독함을 냉철하게 바라봤기 때문이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마이 라띠마’는 제15회 도빌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20대 초반 모델을 거쳐 배우로 변신을 꾀했던 유지태에게 ‘감독’의 호칭은 그리 어색하지 않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데뷔 초부터 그는 언제나 특유의 나직하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자신의 꿈과 계획이 감독에 가있음을 피력했던 배우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영화이론과 용어들을 섞어가며 잘 모르는 외국 감독들을 줄줄이 꿰는 그에 대해 혹자는 “신인이면서 감독이 따로 없다”며 비꼬기도 했고, 몇몇 기자는 “가르치려 든다”며 인터뷰를 고사하기도 했던 주인공이었다. 주위에서 “감독이 되려나봐”라고 웃어 넘겼지만 유지태는 영화에 출연 하면서부터 감독 되기를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가 아닌 감독 유지태의 행보를 보자면 조금 느리게 채우지만 확신에 찬 답안지를 보는 것 같다. 2003년 ‘자전거 소년’를 선보인 후 2005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 ‘나도 모르게’, 2009년 ‘초대’까지 4편의 단편영화는 그가 가진 다재다능한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했다. 오는 6일 개봉을 앞둔 그의 첫 장편 ‘마이 라띠마’ 역시 15년 전 쓴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유지태 감독의 가능성을 극장에서 확인하는 재미는 이제 막 시작이다.


-늦었지만 도빌 아시아영화제 수상을 축하한다. 상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예상하지 못했다. 출품됐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들러리라고 생각했기에 폐막식 당일도 현장에 계신 다른 감독님들 축하드리려고 갔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어 깜짝 놀랐다. 속으로 차분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상이 영화 개봉할 때 참 많이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이 먼저 들더라. 좀 속물스럽지만 차기작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 정도?(웃음) 이틀 뒤에서야 상을 받은 게 실감이 났다.


-아무래도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이득을 보거나 또는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이득을 봤던 건 좋은 스탭과 배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 안 좋은 건 배우 겸 감독이라는 편견 때문에 투자받기가 어렵다는 거다. 작품성이나 상업성을 주목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어쨌든 프로감독이라면 모두가 느낄 부담이기 때문에 감내하고 있다.


-영화 자체는 공익사업이 아니지 않나. 찍으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영화를 통해 수입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과 사회의 부조리를 영화화해서 본인의 배를 불린다던지 이익을 영유하는 게 합리적인가 깊게 고민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성장영화로 다가가게 하자는 거였다. 사회적 이슈는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심이 서고 나서야 장르적으로 풀어지더라. 사회적 이슈는 최대한 간접적으로 그리고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중점을 많이 뒀다. 영화 속 리얼리티는 살리되, 현실적으로 좀 모호해 보이는 건 감수하기로 감독으로서 결정을 본 거다.


장편 데뷔작 ‘마이 라띠마’ 촬영현장에서의 유지태 감독

‘마이 라띠마’의 한 장면


-‘마이 라띠마’를 보면 이주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남다른 조사와 애정이 느껴진다.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어촌마을에 중학생 아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요즘엔 서울이나 지방이나 문화적 차이가 허물어진 것 같아 수정했다. 사회빈곤층이면서 이주민이라고 설정하며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이주민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들을 많이 보고, 센터장들을 인터뷰하며 발로 뛰었다. 한국사회의 딜레마를 발견하면서 고발영화로 만들어 볼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인물들의 어떤 점에 끌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나?
사회적 이슈는 이끌되 실명거론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사회 이슈 중에 이주민이 꼭 거론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가족 내에서의 폭력이다. 이주여성들은 체류 연장시 가족 보증이 꼭 있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이 판단기준이 없어 현실적인 대응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올해 초 이주 여성들이 가족 폭력 피해를 많이 당했다. 그런 부분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싶었다. ‘방가방가’ ‘완득이’ 등 이주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많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어두운 이야기들은 다 피해간다. 아프고 어둡더라도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마이 라띠마’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배수빈은 본인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다. 수수한 모습이 좋았다. DMZ영화제에서 만나 시나리오의 모니터링 부탁했는데 그게 인연이 닿았다. 그 당시에 주인공 남자가 19세 역할이었는데 그가 캐스팅되면서 수정한 것이다.(웃음)


-태국 이주민 라띠마를 열연한 배우 박지수는 신인이다. 부담감은 없었나.
연기를 모르는 초딩들과 연기한 경험이 있어서 연기 컨트롤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연기자이다 보니까.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들만 아니면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 어떨 땐 내가 마음을 열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박지수의 경우 좀 더 신경을 많이 썼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다. 너무 베풀면 그게 권리처럼 느껴지고 날을 세우면 소통하기가 힘들고...중립을 지켜가면서 하되 배우는 일단 현장에서 기분이 좋아야 하지 않나. 신인배우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윽박지르면 연기가 안 나온다. 스탭들한테도 “지수한테 이야기할 거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하라”고 부탁했다. 단지 현장에서 너무 노련하게 말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다. 모두가 엄밀히 따지자면 동업자들 아닌가.


-누구보다 본인만의 장르랄까 확신이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소신대로 살아서 그런 분위기가 지켜지는 것 같다. 내가 흔들리는 만큼 내 인생도 중심을 못 잡을 수가 있어서 내 원칙대로 산다. 나는 집요하고 고집도 세다.(웃음)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도 나는 작품성을 굉장히 따진다. 이미지를 구축하고 파는 사람인데 천박한 영화에 나오면 내 인생도 천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코미디 영화를 싫어한다거나 액션영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돈을 벌겠다’ ‘이 영화를 갖고 상을 받아보겠다’ 이런 거는 피하는 편이다.


-허진호, 홍상수, 박찬욱 등 그동안 많은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빨리 제작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을 것 같은데...
모니터 보고 있으면 빨리 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봄날을 간다’의 허 감독님의 경우 상의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배우로서 나의 느낌을 사용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리허설하면서 만들어진 대사도 많았다. 70%를 현장에서 만든 거다. 허 감독님은 연기의 리얼리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감독이다.


-그렇다면 스승 같은 감독은 누군가.
영화만 22편이다. 모든 감독님이 내 스승이다.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배울 점이 있었다. 특히 허진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구성력과 디렉팅을 조율하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분들께 곁눈질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여러 가지 성공과 실제의 사례들이 누적됐다. 그런 사례들이 앞으로의 현장에서 영화를 촬영할 때 있어서도 유익하게 작용할 것 같다.


유지태는 배우 출신 감독이 아니라 배우 겸 감독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영화에 꼭 출연시키고 싶은 배우는 누군가. 아내 김효진도 훌륭한 배우이다.
지금까지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 모두하고 다시 같이 작업하고 싶다. 나에게 맞는 캐릭터가 있으면 나 자신도 출연할 의향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를 진정성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배우 출신 감독이 아니라 배우 겸 감독으로 남고 싶다.
아내는 우아하고 귀여운 여자다. ‘끝과 시작’의 신비한 모습도 있고, ‘돈의 맛’의 이미지가 제일 비슷하다. 내 영화에서는 좀 더 예쁘게 나올 수는 있겠지.(웃음)


-‘마이 라띠마’가 15년 전 시나리오다. 요즘 새로 쓰기 시작한 작품이 있나.
밝힐 만한 단계는 아니다. 마크 포스터 감독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영화 ‘머신건 프리쳐’처럼 상상력과 현실성을 잘 조합한 영화를 찍고 싶다. 최근 들어 사회 이슈가 있는 영화들. 인권을 다룬 영화들에 시선이 간다. 기본적으로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를 선호하지만 철학을 갖고 있는 영화들을 찍고 싶다. 어릴 때에는 알렉산더 페인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알폰소 쿠아론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수잔 비에르의 영화나 엉뚱한 상업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유지태에게 ‘마이 라띠마’는 어떤 의미인가?
나의 꿈이다. ‘마이 라띠마’ 단어의 의미가 새로운 삶이라는 의미인데 내게도 어쩌면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꿈과 같다.


-그렇다면 아내와 가정은?
2세 계획은 욕심은 있는데, 너무 바빴다. 오다기리 죠와 호흡을 맞춘 일본 영화 '인류자금'의 해외 로케 때문에 6개월 정도 외국에 있어서 상반기에는 한국에 9일 정도밖에 없었다.
힐링은 집에서만 한다. 강아지랑 노는 게 위안과 휴식이다. 아내가 유기견 홍보대사인데 집에서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다. 결혼을 빨리 한 이유가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삶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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