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배한성】1년 전인 2012년 2월 3일 황진현(84) 화백은 서울아산병원에 10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림들은 병원 동관 1층 갤러리에서 기증식이 끝난 뒤 열흘간 전시되었다.
이 병원에서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도 당뇨합병증으로 투병 중인 황 화백이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여 자신의 재능을 나눈 것이다.
“그림에는 치유능력이 확실히 있습니다.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그림은 통해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되죠, 제 그림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환자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 그리고 잠시나마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을 겁니다.”
황 화백은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때 갑자기 선친이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4남매 중 맏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1961년 경제기획원에 들어가면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바쁜 업무 중에서도 화가를 꿈꾸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1974년 주 미경제협력관으로 뉴욕 근무를 시작하면서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미술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일이 끝나면 곧장 미술학원 '뉴욕 아트 스튜던트'에 들러 실기를 연마하면서 화가로서의 전문 훈련을 받앗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경제기획원 국장으로 복귀해 3년간 근무한 그는 1980년대 초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나섰다. 오로지 작업에만 매달리며 그동안 쌓였던 화가로서의 갈증을 해소한 것이다.
30여년 작가로서의 흔적인 1000여점의 작품들과 20여 차례의 개인전.
그는 인물과 군상, 바다풍경, 농악, 자갈치시장 등 삶의 희로애락을 거칠고 강렬한 색채감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그림은 최근 일본에서 발행된 '미술명감'에 실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애정을 담았다’는 것이었다.
황 화백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은 다른 어려운 작가들을 위해 2004년 서울 오금동에 '황진현미술관'을 세워 작업공간을 무료 제공했다. 그것이 자신의 미술세계에 포함된 황화백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황 화백은 현재 합병증과 암을 이겨내고자 더욱 뜨겁게 작품에 전념하고 있다. 노구를 움직일 수 있는 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저의 후반 인생을 무엇에 바칠 것인가 항상 골똘히 생각했어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뜨겁고 건강하게 사는 길이란 창작생활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겁니다."
*황진현 화백
1929년 경주 출생
1962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임관.
1974-77년 주미경제협력관(주 뉴욕총영사관 영사) 당시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실기를 연마할 기회를 얻었음.
귀국 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장, 경제협력국장을 역임한 후
화가로 변신하여 한국판 '달과6펜스' 주인공으로 일컬어지고 있음.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개인미술관 '황진현미술관'을 설립
(2004.03.20).
*저서
서간집 '사랑과 인고의 세월' /황진현화집Ⅰ/크로키집/황진현화집Ⅱ/황진현화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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