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로티가 사랑한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파바로티가 사랑한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 정욱
  • 승인 20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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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의 주인공 / 정욱


[인터뷰365 정욱] 1994년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제인 이태리 ‘산레모 가요제’의 마지막 결선무대에 특이한 모습의 한 청년이 익숙치 않은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로 부르는 팝송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지만,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참가자와는 달리, 관중들의 호기심과 함께 점점 그의 노래 소리로 빠져들게 만든다.



노래가 흐르면 흐를수록 그의 소리는 대중적 창법에서 성악가의 목소리로 변하고 시종일관 눈을 감고 부르는 그의 노래는 웅장한 반주와 뛰어난 성악발성의 아름다운 앙상블로 멋진 피날레를 장식한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게 감동의 환호를 표하였고,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듯이 그는 그 해 산레모가요제의 대상을 차지하게 되지만, 정작 영예의 대상 수상자인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지긋히 미소만 지을 뿐이다. 마치 사람들의 환호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기쁨과 감사의 선물을 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드레아 보첼리. 맹인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딛고 세계 최고의 팝페라 가수와 성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의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갖게된다.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농촌지역인 투스카니에서 포도와 올리브를 경작하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보첼리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부모님덕에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플루트, 색소폰을 배우며 음악을 접하였고, 그때부터 이미 오페라 아리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첼리는 12살이 되던 해,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그는 뇌에 알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고, 차츰차츰 시력을 잃더니 보름이 지난 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에 빠질만한 상황이었지만, 낙천적 성격의 보첼리는 오히려 더욱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여 피사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공부하였고, 마침내 졸업 후 법학박사로 법정 선임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보첼리는 변호사의 일을 그만두고 카페나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모아, 당대 세계적 테너였던 프랑코 코렐리에게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다.


한편 이태리 최고의 록 가수이며 인기스타인 ‘알델모 쥬케로’는 록그룹 U2의 리더인 ‘보노’와 함께 만든 ‘Miserere’란 곡에서 자신과 함께 듀엣을 담당할 테너가수를 찾기 위한 데모 오디션을 열었는데, 사실 이미 쥬케로는 마음속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와의 듀엣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단지 파바로티에게 자신의 곡을 들려줄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오디션을 였었다.



아무런 기대없이 시작한 오디션에서 쥬케로는 많은 참가자 중에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노래를 불러준 테너가수를 선택하였는데, 그가 바로 안드레아 보첼리였고 이렇게 해서 보첼리는 쥬케로의 새노래의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테너 파바로티와 듀엣을 하고 싶었던 쥬케로는 녹음이 끝나자마자 테이프를 들고 파바로티에게 달려갔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곡을 파바로티에게 들려주고, 자신과 함께 듀엣을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들으며 잠시 동안의 흥분에 빠진 파바로티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렇게 말한다.



"쥬케로 이 친구 도대체 누구야? 정말이지 자네가 나를 위해 노래를 써준 것은 고맙지만, 내 생각에 이 친구만큼 자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를 부를 사람은 내가 아닌 듯 싶어.”



파바로티의 의견을 쥬케로도 인정하긴 했지만, 결국 ‘Miserere’의 정규음반 녹음은 파바로티와 진행되었고, 발매와 함께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자신보다 보첼리의 노래가 더 어울린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고, 자신의 연주 스케쥴로 인해 쥬케로와 듀엣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항상 보첼리를 추천하여 그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런 자리마다 보첼리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최고의 노래를 불러주었고, 서서히 사람들에게 보첼리라는 가수의 존재를 알리게된다.


이렇게 해서 서로에 대해 알게된 보첼리와 파바로티는 자연스럽게 친구이자 서로의 팬이 된다. 그리고 1994년 파바로티는 자신의 고향인 이태리 모데나에서 매년 열어온 자선음악회에 보첼리를 출연시켜주게 되는데,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름으로 열리는 이 음악회에는 그동안 파바로티와 친분이 있는 세계적 음악가를 출연하였고, 많은 관객과 시청자가 관람하는 세계적인 음악회였다.



이 날 음악회에서 보첼리는 파바로티와 듀엣으로 무대에 섰고 더불어 세계적인 팝싱어인 브라이언 아담스와 함께 노래하며 전 유럽의 모든 음악팬들에게 안드레아 보첼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특별한 자리가 된다. 이 무대를 계기로 보첼리는 더욱 더 많은 음악관계자와 팬들의 관심을 받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다. 그 이후, 보첼리는 유럽은 물론, 미국과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성악가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음반은 발매때 마다 밀리언셀링을 기록하며 대부분의 클래식연주자들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보첼리는 오페라무대의 꿈을 접지 못하였는데, 시각장애로 불가능하게 보였던 오페라 무대였지만 결국 그는 머리속에 무대의 모습을 그리며 자신이 움직여야 할 위치와 그에 따른 발자국 숫자를 모두 외우고는 꿈에 그리던 오페라무대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사람들이 제가 앞을 못 본다는 점에 너무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쳤고, 그리곤 뇌가 상처를 입었는데 며칠 뒤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아무것도 안보이게 되 었죠"



앞을 보지 못하는 비극이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는 보첼리의 음악은 그래서인지 귀로 들려지는 음악 이상의 감동과 환희가 담겨있다.


"제가 가장 열망하는 것, 제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것은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입니다. 어릴적 제가 누군가를 통해 감동 받았던 것처럼 똑같이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저를 울게 하고, 저를 꿈꾸게 해주었던 가수들에게 그토록 감동 받았듯이."



클래식 음악계가 자랑하는 세계 3대 테너인 ‘쓰리 테너’도 하지 못했던 일반대중과의 편안한 소통을 이루어낸 그의 성공에는 단지 눈이 안 보인다는 것만이 아닌, 자신을 지금까지 있게 해 준 지난 시절의 기억과 감동을 소중히 생각하는 순수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는지 자신과 같은 성악분야에서 같은 테너로 노래하는 보첼리를 시기하지 않고 그를 인정하고 후원해준 파바로티 넓은 마음 또한 보첼리의 그런 순수함과 예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믿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7년 9월 6일, 세계 최고의 성악가로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성악가이자, 그 누구보다도 안드레아 보첼리를 믿고 후원해주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71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숨을 거둔다. 그리고 파바로티를 보내는 장례식에서 깊은 슬픔을 가슴에 담은 보첼리는 그를 보내는 마지막 노래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불러주며, 파바로티에 대한 감사와 존경, 우정을 전한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쉬지 않고 서로에게 속삭였었죠. 지금은 고통이 나에게 말합니다. 파바로티는 나의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테너 파바로티, 최고의 무대에서 항상 많은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자신이 떠나가는 마지막 자리에서 ‘안드레아 보첼리’라는 특별한 가수를 다시 한번 우리 모두에게 소개해주었고 보첼리와의 믿음과 우정을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지키며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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