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 김철
  • 승인 201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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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사계와 삶의 이미지 / 김철



【인터뷰365 김철】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은 항상 본래 그대로 있는 법이 없다. 쉬지 않고 변하면서 생멸을 거듭한다. 무상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의 예로 건축물만 해도 마찬가지이다. 제아무리 견고하게 건물을 짓는다고 해도 인위적이건 자연적이건 반드시 변하게 되어있지 원형대로 온전히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유상하기를 바란다. 탐욕의 끝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삶이 덧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나 쉽게 벗어놓지 못하는 게 욕심이다.

한때 전국 사찰의 본산으로 3.000여 명의 스님들이 머물렀다는 엄청난 규모의 큰절이 있었다. 그 많은 스님들이 매번 공양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가늠하기 힘든 규모의 절이다. 사찰이 들어섰던 대지만 해도 33.022㎡(1만여 평)가 된다. 그러나 웅장했을 가람은 누가 언제 세웠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주춧돌 같은 흔적만 남아 그 옛날의 법력을 쓸쓸히 증언할 뿐이다. 휑하니 폐허가 된 양주 회암동에 있는 옛 회암사 절터가 그렇다.



사기에 따르면 회암사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174년(고려 명종4년)이다. 그 해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전부다. 이는 그 이전부터 회암사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몇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1566년(조선 명종21년)에 유생들이 회암사를 불태우려 한다는 기록이 있은 지 29년 뒤 회암사 옛터에서 불탄 종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숭유억불 정책 속에 기세등등했을 유생들의 방화로 회암사가 소실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추측일 뿐이지 유생들이 불태웠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드넓은 회암사 절터를 찾았을 때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인적조차 없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절터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야 할 만큼 면적이 넓다. 때마침 납자들이 전망대에 오른다. 묵묵히 절터를 내려다보던 스님들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이 정도 크기의 불사를 하려면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을 텐데.” “아마 그럴 테지요.” “다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리고 다시 스님들의 묵언이 이어진다.




회암사는 고승들과 인연이 깊다. 원나라를 통해 고려로 들어온 인도 승려 지공선사와 그의 제자 나옹선사 그리고 나옹선사의 제자이자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 등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나옹선사는 1365년(공민왕 14)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10여 년 간 머물면서 불사를 크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나옹선사는 잘 몰라도 그가 남긴 선시(“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회암사 주지를 거쳐 여주 신륵사에 머물던 나옹선사는 생전에 회암사의 중창불사가 끝나는 것을 못 보고 그곳에서 입적했다. 그러나 그의 부도는 그가 오래 머물며 중창을 했던 회암사 옛터 위쪽 산중턱에 세워졌다. 1977년에 법당을 지은 지금의 회암사 바로 옆이다. 나고 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한마음 얻겠다고 회암사를 찾았을 그 수많은 스님들은 다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갔을까. 나옹선사의 시처럼 그들은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적멸에 들었을까. 어느 고승은 죽어서 천국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잠꼬대나 마찬가지라고 일렀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자리가 곧 천국과 다름없다는 것은 황량한 회암사 옛터를 걸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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