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후원자는 세계최고의 장모님
베르디의 후원자는 세계최고의 장모님
  • 정욱
  • 승인 200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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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Curtain / 정 욱


[인터뷰365 정욱] 세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전 세계 모든 음악팬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쥬세페 베르디. 주옥같은 그의 작품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은 물론이요 인간의 삶에 담긴 모든 희노애락의 절정을 느끼게 해주어 시대가 변한 지금에도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연주되고 있다.


이런 베르디에게는 재미난 인연의 후원자가 있었으니 그 후원자는 다름아닌 베르디의 장모 '마리아 데마르데'이다. 왜 베르디와 그의 장모인 마리아가 재미있는 인연이었는지 그들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러하다.


1830년 이탈리아 변방의 부세토 마을의 제일가는 집안이었던 마리아는 자신의 남편 바렛치가 부세토에서 제일가는 가문의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자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만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마을 제일의 미인으로 소문난 딸 마르게리타가 있었으니, 마리아에게는 가문의 영광과 함께 애지중지 키운 마르게리타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베르디와 마리아의 재미있는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마리아는 사랑하는 딸의 음악적 소양을 키워주기 위해 피아노선생을 물색하게 되고, 마을에서 이미 음악적 재능과 실력을 입증받고 있던 베르디를 딸의 피아노선생으로 모시게 된다. 하지만 동갑내기였던 베르디와 마르게리타는 피아노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사랑에 빠지고 마는데, 그들의 불장난은 오래지 않아 마리아에게 발각되고 만다.


아직까지 앞날이 불투명하고 가난한 베르디에게 자신의 딸을 넘겨줄 수 없었던 마리아는 둘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않았고 주변의 눈도 신경쓰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생각해낸 방법은 베르디를 다른곳으로 보내버리는 것이었는데, 결국 마리아는 집안의 힘을 빌어 베르디의 부모를 설득하고, 장학금을 받게해준다는 등의 여러 방법을 써서 베르디를 밀라노로 보내려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르게리타를 떠나야 한다는 슬픔에 잠긴 베르디는 모든 희망을 잃게되고, 그런 베르디에게 마리아는 이렇게 충고를 해준다.


"베르디군... 자네같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있어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네. 내가 다 손을 써놓았으니 지금 당장 음악의 도시 밀라노로 떠나게나. 분명 자네는 최고가 될 꺼야!"


오로지 베르디를 보내려는 데만 목적을 두었던 마리아의 충고와 노력으로 어쩔 수 없이 베르디는 밀라노로 떠나게 되는데, 이것은 베르디와 마리아의 재미있는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그 후로 6년이라는 세월동안 밀라노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한 베르디는 당대의 명교수였던 빈센쪼 라비나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놀라운 발전을 한 베르디는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스승 라비나의 총애를 받게 된다.


이렇듯 밀라노에서 베르디가 놀라운 음악적 성장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 즈음, 고향인 부세토에서 베르디 음악의 스승이었던 프로베지가 운명했다는 비보가 날아온다. 슬픔에 빠진 베르디였지만 스승의 죽음이 또 다른 기회가 되는데...


평소 베르디를 신임하고 그의 음악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프로베지는 그의 후임자로 이미 베르디를 추천해놓은 상황이었고, 부세토 음악협회도 이러한 프로베지의 뜻을 따라 그가 맡았던 음악협회의 책임자, 대성당의 합창장, 그리고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베르디를 추천하게 된다.


운명적으로 다시 부세토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은 베르디. 하지만 당시 부세토의 주교였던 바르나니는 프로베지의 진보적인 음악성향에 반감을 갖고 있었고 그런 연유로 그 제자인 베르디가 그 자리를 맡는데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결국 바르나니는 베르디가 밀라노에서 교회음악보다는 세속적인 음악을 더 가까이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반니 페르라리라는 인물에게 그 자리를 주려한다.


그리하여 주교와 음악협회, 관현악단 등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고, 부세토의 음악계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부세토시장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궁정 오르가니스트 쥬세페 아리노비의 심사로 후임자를 선택한다."는 공고를 내게되고, 주교 바르나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있던 페르라리는 기대와는 달리, 경연이란 말에 지레 겁을 먹고 후보자리를 사퇴하고 대신 롯시라는 새로운 인물이 심사에서 베르디와 경쟁을 하게 된다.

팽팽했던 심사 이전의 상황과는 달리, 막상 심사당일 베르디와 롯시의 경연은 너무나 싱겁게 완벽한 베르디의 승리로 끝나게된다. 이렇듯 롯시는 베르디는 상대가 되지 못했고, 부세토의 시민은 베르디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베르디의 승리뒤에는 처음 그를 밀라노로 가게 만들었던 마리아의 노력이 숨어있었으니, 마리아는 베르디의 승리를 위해 부세토 종교계와 정계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베르디의 뒤를 보살펴주었으며, 음악감독이 취임하는 순간까지 베르디 최고의 후원자를 자처한다.


또한 마리아는 그 뒤 부터는 열렬한 베르디의 후원자로 변신하여 음악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않았고, 처음에 반대했던 자신의 딸 마르게리타와의 결혼 성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1836년 베르디는 마르게리타와 꿈에 그리던 결혼을 하게되고, 장인 마련해준 대저택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기쁨을 맞보게 된다.


이후에 베르디는 더욱더 깊은 음악성과 창조적 능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오페라는 평생 그가 야심을 갖고 노력한 장르이며, 지금의 베르디를 만들어 준 최고의 음악분야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페라 <아이다> <라트라비아타> <나부코> <가면무도회>외 수많은 작품이 부세토의 음악감독 이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 시기를 통해 베르디는 진정한 예술적 평안과 기쁨을 느끼며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안타깝게도 부세토에서의 생활이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베르디는 사랑하는 두 자녀와 아내 마르게리타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를 만들어낸 부세토에서의 시간은 베르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고, 장모였던 마리아의 존재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였다.


마리아 데마르데.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촌구석의 베르디를 이탈리와 최고의 음악도시인 밀라노로 보내어 공부를 하게한 실질적인 후원자였으며, 가진것 없는 베르디에게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맡겼던 든든한 장모님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쥬세페 베르디. 그는 정말 최고의 장모님을 만난 세계적 행운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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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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