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0)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0)
  • 임정진
  • 승인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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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10. 양호실 강 선생의 고민



수업 시간이 다 되어 강 선생은 천재를 깨워 교실로 보내고는 상담실로 올라갔다. 미선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였다.

「아, 강 선생님이시군요. 어젠 수고 많으셨습니다.」

「미선이 오늘 학교에 나왔어요? 어떤지 궁금해서요.」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마 안 나왔을 겁니다. 원래 걔가 결석을 출석보다 많이 하는 애예요.」

「그런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냥 보고만 있어요?」

「원래 몸도 약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결석해도 뭐라 못 하거든요. 하지만 아파서 결석하는 건 아마 30프로나 될까...」

「집에서는 걔가 학교 안 가는 걸 모르나 봐요?」

「혼자 사는 애예요. 파출부 아줌마가 돌봐 주니 누가 야단칠 사람도 없죠.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서 아버지는 미국에 살고 어머니와 살았는데, 학교 보낸다고 어머니가 중학교 때부터 서울서 혼자 살게 했대요. 지방 어디라더라, 아무튼 어디서 금은방을 해서 돈은 꽤 번대요. 서울 학교에 보낼 욕심에, 떨어져 사는 거죠. 그런 애들 많아요.」

「그럼 서울로 와서 가게를 하면 되잖아요. 두 식구뿐인데 떨어져 사느니.」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금은방이란 게 단골 없이는 운영이 안 된대요. 연고지에서 오래 해서 그만큼 장사가 되는 거지, 서울로 오면 그렇게 안 된대요. 왜 사람들이 금 살 때는 속을까 봐 아는 데로 가잖아요.」

최 선생은 작은 캐비넷에서 커피잔을 꺼냈다.

「오늘은 제가 대접하죠. 어제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나저나 타이밍을 잘 맞춰 오셨어요. 저 1교시 수업 없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 상담 선생님도 수업하세요?」

「그럼요. 강 선생님은 처음 발령 받으셔서 모든 게 다 신기하시구만요.」

「아니, 수업하시고 언제 상담하셔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상담실에 떡 버티고 있어야 애들이 아무 때고 맘 내킬 때 올 수 있는 건데 제가 수업 들어가니까 애들이 맘먹고 왔다가 그냥 가고 다시 오기 쑥스러워서 상담을 포기하고 그래요. 그나마 보충수업은 안 들어가고 제 시간표를 문 앞에 붙여 놓으니까 상담교사 명맥 이을 만큼 애들이 오죠.」

「미선이 같은 애들, 많아요?」

최 선생은 창문을 반쯤 열었다. 최 선생은 미선이 같은 애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했다.

「알 수 없죠. 진짜 삐뚤게 나간 애들은 저한테 오지도 않으니까요. 카페 나가서 용돈 벌어 옷만 사 입는 애, 골목에 지키고 섰다가 애들 옷, 돈, 시계, 운동화 털어 가는 애, 아예 피임약을 계속 먹는 애, 독서실 간다 하고 디스코텍만 가는 애, 별의별 애가 다 있어요. 더구나 남녀공학이니까 그만큼 다양하죠. 제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다양해요.」

양호 선생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미선이 하나만 봐도 이렇게 복장이 터지는데 수많은 애들을 상대하려면 최 선생은 얼마나 속이 끓을까 상상하니 최 선생이 불쌍해 보였다.

「성교육은 하고 있나요? 미선이 같은 애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죠.」

양호 선생은 자기에게도 뭔가 책임질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양호 선생님이 좀 해주실랍니까? 성교육이 말이 쉽지,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생물 시간, 교련 시간, 가정 시간에 단편적인 성지식은 배우죠. 그런데 정작 필요한 지식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좀 해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교재도 없고, 우선 시간이 없어요. 되도록 적은 인원이라야 질문도 하고 그럴 텐데 기껏 성교육 한다고 시간 좀 만들어 달라면 전교생을 강당에 덜컥 모이게 하니 뜻대로 안 돼요.」

「정말 그렇겠네요. 수업 시간 빼서 성교육 하면 당장 학부모들한테 전화 올 테고...」

「강 선생님이야 학부모들하고 부딪힐 일이 없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전 상담하느라 부모들을 많이 만나는데 특히 미선이같이 이성 관계로 문제가 생기면 아주 가관이에요. 남자애 경우엔 부모가 와서 도리어 큰소리예요. 상대편 여자애가 우리 순진한 아들을 꼬셨다고. 여자애 부모들은 애를 완전히 매춘부 취급을 하고 이유가 뭔지, 어떻게 처리를 할 건지 생각하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펄펄 뛰기만 하죠. 성교육이 학교에만 책임이 있는 양 저한테 화를 내기도 하구요. 요즘 애들이 얼마나 조숙합니까? 그런 애를 완전히 어린애 취급하고 필요한 성교육에는 관심조차 안 갖고 있다가 덜커덕 일이 생기면 그때서 울고불고...」

강 선생은 갑자기 아침 일찍 왔던 천재가 생각났다. 그 애도 혹시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최 선생님, 애들이 선생님 좋아해서 상담하러 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요. 많죠. 한심한 건 어떤 남자 선생님은 그런 여학생을 달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성적 접촉을 하며 즐기려 해요.」

「어머머, 어떻게 학생을...」

「우리 학교 경우는 아니지만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들을 몇 명이나 추행한 일도 있어요. 참 선생질 해먹기 힘들어요. 별별 애가 다 있고, 별별 선생이 다 있으니, 추행까지는 안 가도 괜히 여학생 몸에 손대는 남자 선생님은 한 학교에 한둘 꼭 있어요.」

「저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런 선생님 있었어요.」

「제가 양호 선생님께 충고 한마디 할까요. 남학생들 조심하세요. 더구나 강 선생님은 젊고 미인이시니까 남자애들이 많이 따를 겁니다.」

「후후, 하지만 전 연하의 남자 관심 없어요.」

「웃으실 일 아니에요. 원래 남자들은 연상의 여인 좋아하는 법이죠. 게다가 걔들 나이 땐 더 심해요. 전에 있던 학교에 여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남편이 9년 연하였어요.」

「어머나, 2,3년 연하는 많이 봤지만 그렇게 나이차 많이 나는 남자랑...」

「게다가 그 남편이 제자랍니다.」

「네? 그럼?」

「그 선생님이 가르치던 고등학생이랑 연애를 했대요. 어떻게 한번 불이 붙으니까 체면이고 나이고 다 소용이 없더랍니다.」

「그래서요?」

「둘이 좋아 죽겠는데 어쩝니까? 결혼했지. 남편은 그래서 고졸이에요. 연애하느라 공부를 했겠어요? 드문 예지만 그런 경우도 있으니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최 선생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강 선생에게 얘기하는 바람에 강 선생은 웃을 수도 없었다.



자율학습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매점으로 뛰어갔다. 연료 탱크가 차야 차가 굴러가는 법이니까. 창수는 가방을 들고 나와 버렸다. 화장실에 들렀다 그냥 집에 갈 속셈이었다. 담임에게 맞아도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칸에서 말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들 매점 가느라 그런지 화장실에 사람이 없어 조용한 탓에 창수에게도 말소리가 들렸다.

「야, 그 새끼 무슨 쓰레기 냄새가 그렇게 나냐?」

「누구 말이야?」

「누군 누구야, 창수지.」

창수는 자기 이름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가만히 들어 보니 문도와 촉새의 목소리였다. 문도는 촉새에게 새 담배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죽겠어.」

「그렇다고 너 걔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마, 걔 주먹 알지?」

촉새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웃기고 있네. 마! 요즘 세상에 주먹 함부로 쓰다가 어떻게 되는 줄 알어? 요즘은 주먹도 돈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거야. 짜식 그것도 모르고 되게 건방져.」

창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도와 촉새는 갑작스런 창수의 출현에 놀라 담배를 떨어뜨렸다. 창수는 문도의 멱살을 잡아끌고 창고 옆으로 나갔다. 촉새는 겁에 질려 잠자코 쳐다보았다.

「야, 너 왜 이래.」

문도는 창수의 무서운 얼굴에 겁이 났다. 당장 양말 속에서 재크나이프라도 꺼낼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몰라서 물어, 이 새끼야?」

「왜 이러느냐니까?」

「너 한번 죽어 볼래?」

「죽어? 너... 너 깡패야?」

「그래, 나 깡패다.」

창수는 문도 곁에 있는 문짝을 주먹으로 쾅 쳤다. 문짝은 주먹 자국만큼 찌그러져 버렸다. 문도는 새파랗게 질렀다.

「너 한 번만 더 신경 건드리면 정말 그땐 죽는 줄 알어.」

창수는 겁에 질린 문도를 남겨 둔 채 획 몸을 돌려 가버렸다. 문도는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씩씩대며 창수가 교문 쪽으로 나가는 걸 바라보았다. 촉새가 문도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괜찮어? 저 자식이 뭐래?」

문도는 촉새를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거지같은 자식, 두고 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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