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박수동의 만화 같은 인생
<고인돌> 박수동의 만화 같은 인생
  • 김두호
  • 승인 2007.12.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내는 내 그림을 중풍 들렸다고 합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1970년대부터 20여 년간 대중매체의 심벌이었던 선데이서울의 대표적인 인기 연재물이 <고인돌>이었다. 작가 박수동 화백은 꾸불텅 꾸불텅한 특유의 선으로 그려낸 그림속의 인물을 통해 성인사회의 에로티시즘을 자유분방하게 풍자했다. 성인만화는 추하지 않게 표현하는 절묘한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만화는 “야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엄격했던 검열의 칼날을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그 시대 신문 잡지들이 박수동의 집 앞에 줄을 섰고 그 중 작가의 선택을 받은 30여 개 매체가 원고를 실을 수 있었다. <고인돌> 작가의 희한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조금 인기가 오르고 유명해지면 다들 실습생을 두고 대량 작업을 하지만 그는 오르지 점하나 찍는 일까지 화실을 겸한 자신의 집에서 혼자 한다.


박수동은 지난 2월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직에서 정년 퇴직했으나 명예교수로 여전히 강단에 서고 있다. 그에게 ‘선생님’은 천직이다. 만화를 시작하기 전인 1960년대에 그는 경남 밀양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5년간 재직했다. 그 무렵 교육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 <새교실>에 독자만화를 투고하면서 취미생활이 직업이 됐다. <새교실> 편집장이던 소설가 하근찬이 박수동을 꼬드겨 전업 만화가로 불러올렸다.

<고인돌>로 인기가 충천할 때 박수동은 키 183cm, 체중 75kg의 거구였다. 기골이 장대한 그는 주로 헐렁한 쉐터에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꾸부정하게 걸어 다녔다. 머리도 기름을 바르지 않아 꺼칠하고 덥수룩했다. 고향 사투리를 평생 버리지 못해 말씨도 투박하다. 그런데 그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부끄러움을 타며 언제나 배시시 웃는 스마일 남자다. 화가 나면 무섭게 보이겠지만 누구도 박수동의 성난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또 아주 특별한 점은 시계를 차지 않고 살았다는 데 있다. 그는 어디에 구속되거나 쫓기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찰각찰각 초침 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시간에 쫓기며 무슨 일을 하는 것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간 약속을 해도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게 시간을 정한다. “천성이 게으르다”고 그는 말하지만 한번도 원고 마감을 어긴 일이 없으니 일하는 데는 성실하고 정확하다.


주로 가족들이 잠든 깊은 밤에 그림 작업을 하고 시간이 남을 때는 혼자서 바둑을 두는 습관이 있다. 바둑은 공인 아마 5단 실력이다. 한때는 낚시터를 찾아 명산대천을 헤매기도 했고 등산 테니스 탁구 오디오(음악감상)에 빠지기도 했다. 박수동의 인생 무용담 중에는 30.6cm 짜리 월척을 건져 올려 함께 낚시질하던 박재삼 시인이 즉석에서 축하시를 읊고 탁본을 만들어 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런 그의 삶의 모습이 그가 만들어 낸 걸작 인물 <고인돌>과 흡사한 게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점만 빼고 자유분방한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고인돌>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석기시대의 인간이라면 원시인이다. 돌도끼로 사냥을 하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연애를 하던 시대지만 인간의 성적 본성은 21세기 디지털시대보다 오히려 순수했을 것이다. 법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현대인이지만 속성은 오히려 원시인 사회보다 더 간교하고 더 타락해 있지 않을까? 박수동의 <고인돌>은 원시인을 통해 현대인의 본성을 종횡으로 비꼬며 해학과 재치로 풀어 나간다.


<고인돌>에는 영웅이 없다. 비슷하게 생긴 출연자들이 생식기만 가리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주인공 노릇을 한다. 박수동은 평소에도 잘났다고 주인공 행세를 하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한다. 활동 초기에는 어리숙 해 보이면서 기를 못 펴고 사는 어린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소재의 만화를 즐겨 그려 온 그에게 어른이 되도록 잊혀지지 않는 남다른 추억이 하나 있다. 소재 형성에 영향을 끼친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그가 언젠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고백을 그대로 옮겨보자.


“초등학교 3학년 때 였심더. 담임선생님께 월사금(과거 학생들이 매월 학교에 낸 수업료)을 갖다드렸는데 착각을 했던지 절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어예. 급우들 앞에서 돈 주는 걸 본 어린이가 있느냐고 공개 증명까지 해 나는 월사금 떼먹고 거짓말 하는 학생으로 몰린겁니더.”



부모에게 월사금을 다시 요구할 수도 없고 학교의 독촉은 빗발쳐 책가방을 들고 부둣가(부산)를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억울한 심경은 6학년 졸업 때까지 풀리지 않고 응어리로 남아 고통을 당했다. 어린이 만화를 그리다가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원고지에 눈물이 떨어진다는 순진한 어른이다.

그런데 <고인돌>의 인물들은 왜 꾸부렁 선으로 만들어진 걸까? <오성과 한음> <번데기 야구단> 등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특유의 선을 두고 그의 부인이 ‘중풍들린 그림’으로 불렀다는데 작가가 고백한 탄생 일화가 재미있다.


“본능 세계를 세련된 선이나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려 보이소. 너무 야하게 안 보입니꺼.”

키스나 포옹 장면 같은 걸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못해서 엉거주춤 어물어물 그리다가 만들어진 것이 ‘우굴쭈굴 꾸부렁 꾸불텅 고인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코믹어워드상을 받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