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44)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44)
  • 유지형
  • 승인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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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여배우의 길 / 유지형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44) 결혼


[인터뷰365 유지형] 월화가 춘래를 따라 일본 땅에 도착 한곳은 본슈와 규슈의 경계를 짓는 하몬 해협에 위치한 모지(門司)라는 곳 이었다.

이곳은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본의 요충지이고, 또한 개화의 물결이 처음으로 들어온 곳으로 옛것과 현대의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항구도시 이다.

이곳은 본래 춘래의 일본인 어머니 사오리의 친정마을로 그녀는 대대로 포목상을 경영하는 상인의 가문이었다. 춘래의 외할아버지인 오타니는 장사수완이 좋아 조선과 상하이에도 대리점을 두었는데 상하이의 대리점에 지배인인 중국인 청년을 사위로 삼아 결국 춘래가 태어난 것이다.

이제 외할아버지는 물론 중국인 아버지까지 작고하자 춘래는 조선과 상하이의 대리점을 정리하고 이곳 모지에 총판점을 운영하기 위해 월화와 함께 온 것이다.

월화는 집을 나서며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종화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내용은 예외로 간단했다.

‘종화 씨! 이젠 영화감독이 되었으니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겼네.

그러나 내겐 언제까지나 나의 친구 종화 씨야.

결국 종화 씨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헤어지고 마네.

내가 어디를 가든 다정하고 친절했던 종화 씨를 영원히 잊지 못 할 거야.

부디 건강하고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그럼 안녕!

경성에서 마지막 월화가...’

월화의 심정은 편지내용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부산에서 무명 극단의 무명배우로 처음 종화를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기성극단에 입단했고 평생의 스승이며 마음의 정인으로 정한 백남 선생도 만났다.

연극을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에 늘 앞장 서 나를 위로하고 보호하며 결국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배우로 성장하게 하고 또 한 그 후에 닥친 많은 고난과 역경에 그는 진심으로 친구가 되어 나를 도왔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몇 자의 형식적인 편지를 쓰고 도망치듯 경성을 떠나야 하다니 쫓기듯 이방인인 중국남자를 만나 그것도 낮선 일본 땅에 시집을 가는 자신을 뭐라고 생각 할지 그저 슬프고 처량하기만 하다. 언제나 종화는 내 편이었다. 그리고 늘 나를 믿어 주었다.

그가 지금 곁에 있다면 분명 고개를 끄떡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 난 월화의 결정을 믿어! 가서 부디 행복해야 해”

그렇게 말이야. 월화는 슬픈 감정을 애써 삼키며 편지를 복동에게 건네며 당부의 말을 했다.

“일 년만 이 편지를 가지고 있어라. 일 년이 지났는데도 종화 그 사람이 찾아오지 않거든 이 편지를 불살라 버려라.”

왜 일 년이었을까? 그건 앞으로 월화가 겪을 낮선 미래에 대한 그 어떤 불안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월화의 마음속에 한 가닥 여운으로 남아 있는 종화에 대한 감정이 일 년 정도면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까?

월화는 이곳 모지에 도착하자마자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혼례식을 올렸다.

혼례식은 아카마 신사에서 일본의 정통예식으로 치러졌다. 월화는 수십 마리의 나비 문양이 수놓아진 흰색의 기모노를 입고 머리에는 백색무구를 쓰고 빨간 오비로 허리를 바짝 묶은 모습은 신사 뜰에 만개한 흰 수국만큼이나 순백하고 아름다웠다. 춘래 역시 큰 키에 검은 화복차림의 늠름한 신랑의 모습으로 빨간 양산의 그늘 아래 신부인 월화와 함께 서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선남선녀의 모습이다. 신사 안은 오타니 가문의 온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축하를 해 주었고 시어머니인 사오리도 조선서 온 여배우 출신의 며느리를 맞아 입가에 미소가 연신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신기한 것은 시댁식구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월화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월화가 출연한 왕필렬 감독의 영화 <해의 비곡>이 일본 전역에 수출되어 전국 개봉을 거쳐 이곳 극장에서도 상영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마을사람 들은 영화 속에 출연한 낮 익은 여배우가 이집 가문으로 시집을 온 것에 감격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결혼식 피로연은 삼박사일로 이어진 큰 잔치였다. 진서 구역에 제일로 규모가 큰 일본식 정통 저택인 집안과 마당은 온통 손님들로 넘쳤으며 결혼 예물과 선물들도 방안 가득 넘쳐났다. 사흘 후 손님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날 밤이 비로소 두 사람의 첫날밤을 맞는다.

초저녁부터 월화는 집안의 욕탕으로 들어가 온몸을 훈탕에 담그고 몸을 불려 무려 서너 시간을 욕탕에서 보냈다. 이제야 신부를 차지하게 된 춘래는 월화가 욕탕에서 나오지 않자 욕탕 문을 두들기며 난리가 났다.

월화는 자신의 몸을 정성껏 닦고 또 닦았다. 월화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수를 알몸에 끼얹는 정성스런 목욕의식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온갖 잘못과 실수를 스스로 용서 받기 위한 세례식 같은 것이었다. 드디어 목욕을 끝낸 월화는 신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춘래는 몸이 달아 비단금침의 이불을 깔아 놓고 안절부절 못한다.

급하게 들어서는 월화를 껴안아 이불 안으로 끌어 드리려는 춘래의 성급한 행동을 월화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지 시킨다.

그리고는 춘래는 바로 앉히고 그를 향해 조선식으로 절을 정중히 올렸다.

신부가 절을 올리자 춘래는 얼떨떨한 얼굴로 월화를 바라본다.

그런 춘래를 향해 월화는 각득한 존칭을 써가며 입을 연다.

“지금까지 여자로써 잘못된 처신을 용서 바랍니다. 이제 부터는 서방님의 여자로써 정절을 지키고 오직 당신만을 존경하고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부디 못난 저를 거두어 주시고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월화의 눈에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춘래는 그런 간절한 호소와 맹서를 하는 월화를 왈칵 껴안는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이제 나를 믿고 편안한 안식을 취하시오.”

그 말과 함께 춘래는 붉은 월화의 입술을 찾아 뜨겁게 입맞춤 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키스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의 입술을 나눈 두 사람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유카다의 끈이 풀리지 않아 월화는 한동안 당황했다. 너무도 유카다의 끈을 꽁꽁 묶어 놓은 모양이다. 춘래도 그 끈을 풀지 못해 낑낑 거린다. 다행인 것은 유카다 속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는 거다. 춘래는 허겁지겁 유카다를 올리고 월화의 흰 허벅지가 보이자 그 사이로 깊숙이 자신의 강철 같은 몸을 파고들었다.

“아...”

월화의 본능 더 깊고 어두운 깊은 우물 속으로 텀벙 큰 소리를 내며 두레박이 던져졌다. 잔잔한 수면이 놀라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붉은 입술 사이로 단내 나는 신음소리가 세어 나왔다.

“아! 이제 당신이라는 남자에 의해 비로소 나는 완전한 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행복해요... 죽도록 당신만을 사랑 할 거예요.”

월화는 그렇게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런 몇 번의 다짐처럼 춘래는 밤새 월화를 가만 두지 않았다. 창밖으로 멀리 새벽이 오고 해협 저 건너 시모노세키 항구의 불빛도 꺼질 줄 모른다.

또 한, 먼 바다로부터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두 사람을 축복하듯 더욱 세차게 들려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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