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카트만두 덜발 광장
사람 냄새 나는 카트만두 덜발 광장
  • 안정숙
  • 승인 200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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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 네팔 기행 ⑤ / 안정숙



[인터뷰365 안정숙] 카트만두에서 전통과 현대의 건축물을 한 눈에 보면서 네팔의 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을 들라면 덜발 광장이 아닐까 한다. 서울의 명동격인 타멜이 상류층들의 소비문화를 접할 수 있는 번화가라면 ‘하누만도카’라고도 불리는 옛 왕궁 앞의 덜발 광장과 인근은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를 비롯해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쿠마리가 살고 있는 사원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네팔의 성지이기도 하다. 덜발 광장 인근에는 항상 관광객과 노점상들로 붐비는 인드라쵸크라는 재래시장도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네팔의 힌두 인과 불교인들 모두가 숭배한다는 쿠마리가 가족들과 함께 기거하는 쿠마리 사원은 전통 건축양식과 문양에서 그들의 독특한 종교문화를 쉽게 엿볼 수가 있다. 진한 밤색의 조각으로 장식된 고풍스런 목조건물은 누구나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게끔 개방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출입문은 건축물에 비해 한 사람이 드나들 만큼 협소하다.

쿠마리가 거주하는 건물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원들은 비둘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창문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이채롭다.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쿠마리 사원의 홀 중앙에는 관광객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위한 모금함도 있다.




사원의 장식물은 힌두인들이 숭배하는 각종 신의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 기술이 어찌나 정교한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은 사원의 3층이다. 어쩌다 한 번씩 관광객들을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쿠마리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저마다 3층을 올려다보며 쿠마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쿠마리는 그만큼 네팔에서 신격인 존재로 추앙을 받는다. 당연히 관광객들에게도 신비의 대상이다. 쿠마리는 어린 여자 아이들 중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선혈이 낭자한 가축의 머리나 뱀이 우글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담력과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등 여러 관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한 명을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가을 인드라 신을 기념하는 네팔의 축제 때는 국왕이 쿠마리에게 무릎을 꿇고 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할 만큼 신으로 예우를 받는다. 그러나 쿠마리의 영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



초경을 하게 되면 쿠마리로서 자격을 박탈당한 뒤 평민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는 새로운 쿠마리가 잇게 된다. 육체적으로 신성해야 할 쿠마리가 생리를 한다는 자체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쿠마리가 자신의 운명이 한시적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앞서 쿠마리의 아버지가 관광객들을 향해 절대로 쿠마리의 사진을 찍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다섯 살이라지만 여신의 품위에 맞게 쿠마리의 표정과 자태가 제법 위엄이 있어 보인다.



왕궁 터가 있는 사원의 중앙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비둘기의 천국이 펼쳐졌다. 네팔의 어느 사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들이 다 집합한 것 같았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에서처럼 새떼의 공격을 당하지나 않을까하는 공포심이 밀려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비둘기들은 하찮은 생명마저 존중하는 네팔인들의 동물을 신성시하는 신앙심을 보는 듯했다. 비둘기 떼 속에는 소들도 함께 있다. 소들은 비둘기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그저 묵묵히 있을 뿐이다.



네팔은 사람보다 신이 더 많은 나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덜발 광장에는 신전이 많다. 광장에는 아침부터 사원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 년에 딱 한 번 살아 있는 소와 염소를 제물로 바치고 피를 뿌린다는 신전 앞에서 의식에 따라 참배하는 사람들의 경건한 모습은 너무도 생경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신체의 일부인 발의 신전까지 있을 정도로 이들에게는 종교가 곧 몸이고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공원이나 학교 앞에서 흔히 보는 솜사탕을 팔고 있는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도 눈에 띈다. 자신의 체구보다 몇 배나 됨직한 고물들을 어깨에 메고 가는 어린 아이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터인데 그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고 밝다.




우리나라의 벼룩시장처럼 광장의 좌판에서 상인들이 파는 골동품들 또한 네팔의 역사와 문화를 읽을 수 있는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다신의 형상을 조각해서 걸어 놓은 형형색색의 진열품들이 다채롭다. 낡은 건물과 대비되는 화려한 색의 목각인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먼지투성이의 창틀에 매달린 채 밝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인형들의 모습 속에서 광장에서 본 아이들의 웃음과 네팔 인들의 선한 눈빛을 보는 것 같다.



광장을 벗어나면 재래시장이 있는 인드라쵸크가 나온다. 복잡한 길 양옆에는 격자무늬의 창이 있는 오래된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로 쪽에 있는 1층 건물들은 모두 상점이다. 중세의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된 문화재나 다름없어 보이는 건축물을 정부에서 개인에게 임대를 한다는 것도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골목을 따라 여기저기 가축의 배설물이 바닥에 그대로 있는가 하면 노숙자도 있다. 어디를 가도 빈부격차는 있게 마련이고 사람 사는 냄새는 다를 게 없지 않나 싶다. 덜발 광장의 사원들과 인근의 풍경은 처음 들어갈 때의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거리 여기저기에서 풍기는 배설물의 고약한 냄새는 더 이상 피해가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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