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어머니 뵙고 산삼 캐는 심마니 정우진
꿈에서 어머니 뵙고 산삼 캐는 심마니 정우진
  • 김두호
  • 승인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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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을 헤매며 구름처럼 산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길이 없는 태산준령 깊은 산속을 평생 헤매며 살고 있는 정우진 씨(50 경북 봉화읍 내성리 353)는 자유업종인 ‘약초 채취업’에 종사하는 산중 근로자다. 산삼도 캐므로 심마니로도 부르지만 오르지 산삼만 캐는 심마니는 드물다. 횡재수가 없으면 1년을 헤집고 다녀도 산중 보물인 산삼 한 뿌리를 캐지 못하므로 심마니들은 평소 다른 약초 캐기로 생업을 유지한다.


그는 온갖 약초를 찾아다니다가 어쩌다 산삼을 캔다. 대개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잠에서 깨어난 날이다.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남긴 재산도 없어 맨몸으로 초가삼간 빈집 하나에 의지해 6남매를 키우며 모질게 고생만 하시다가 그의 나이 22살 때 떠나셨다. 가난과 고난의 일생을 산 어머니가 심마니 아들의 가슴 깊이 간절한 사모곡으로 살아 있는 탓일까.


심마니 정우진 씨는 지금 세상 부러운 것 없이 산다고 말했다. 약초 캐기 벌이는 그저 먹고 사는 정도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고등학교까지 전교 수석을 하고 지방 명문대 전자전기과에 진학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첫째는 자랑스러운 자식이 있고, 둘째는 반찬거리를 사지 않고 각종 채소를 자급할 수 있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다.


가난하게 자라나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며 바닥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섭렵했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욕심이 없어서 부러운 것이 없다는 심마니 정우진 씨를 찾아갔다.



최근에 캔 산삼이 있는가?

캐면 바로 판매 상인에게 가져간다. 최근에는 찾지 못했다. 오르지 산삼을 캘 목적으로 산에 가지 않는다. 산삼은 누구든 아무데나 마구 찾아다닌다고 눈에 띄는 게 아니다. 그건 함부로 뽑히지 않는 영물이 아닌가? 이것저것 약초를 캐다보면 운수가 대통한 날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나타난다.


그동안 얼마나 캤는가?

보통 1년에 10뿌리 미만이다. 근래에는 대여섯 뿌리 정도씩 캔 것 같다.


산삼도 종류가 많다는데 캔 것 중에 최고로 치는 천종삼도 있는가?

천종은 평생 한 뿌리도 못 캐고 죽는 사람이 많다. 나도 산에서 살다시피 돌아다녔지만 아직 천종을 만지지 못했다. 그러나 천종에 가까운 지종급은 캔 일이 있다.


천종과 지종은 어떻게 다른가?

산삼씨를 먹은 짐승이나 새들이 퍼뜨린 씨에서 천연 산삼이 자생하고 그 산삼이 씨를 퍼뜨려 번져나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천종삼이 되고 지종삼이 된다. 천종삼은 자랄 대로 다 자라 수염달린 산신령처럼 신비한 자태를 보여준다. 지종보다 낮은 것을 얼치기라고도 하고 야생산삼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씨를 심어 야생으로 자라게 한 장뇌삼과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자연 산삼과는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치가 다르니 가격 차이도 심할 것 같다.

물론이다. 천종은 대부분 한 뿌리에 1천만 원이 넘을 것이다.


산삼을 캐는 사람들은 대개 현몽을 한다는데.

그럴 수 있다. 주로 조상 꿈을 꾸면 길하다고 한다. 나도 어머니를 꿈속에서 만나면 산삼을 캐곤 했다. 내가 22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태어날 무렵은 부잣집이었다는데 아버지가 도박과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하시고 별세해 어머니는 오두막집에서 6남매를 키우시며 고생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힘들게 사시던 모습을 못 잊는다. 애처롭고 불쌍한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면 깨어나서도 운다.



산삼을 발견하는 순간 지금도 심마니들은 “심봤다”고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치는가?

나는 안 그런다. 입을 다물고 속으로 외친다.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주로 어느 산을 찾는가?

태백산 소백산 일월산 청량산이나 울진 부근에 있는 통고산도 찾아간다. 산에 들어가면 길이 없는 길을 다닌다. 그래도 워낙 부지런히 다니고 살아서 어지간한 산은 큰 나무나 바위 같은 것이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산삼은 주로 어떤 곳에서 자라는가?

바람 잘 통하고 물 잘 빠지는 명당에 있다.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은 곳으로 햇빛이 나무들 사이로 적당하게 들어오는 동북 북향쪽의 비탈진 곳에 자란다. 땅이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고 부드러우며 아늑한 박달나무 그늘 같은 곳에 가느다란 몸을 감추고 있다. 고사리 같은 식물이 많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야생 짐승도 있고 절벽 길도 있어서 위험할 때도 많겠다.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다. 벼랑에 있는 약초를 캐고 지름길로 가려다가 떨어져 바위절벽 중턱에 있는 나뭇가지에 옷가지가 걸려 살아난 일도 있다. 혼자 다니다가 사고를 당하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무서운 동물은 임신 중인 멧돼지떼와 독사와 벌떼들이다. 임신 중인 멧돼지가 아니더라도 놀라게 하거나 사나운 놈 만나면 사람이 다친다. 1980년대 초까지 청량산에는 늑대도 있었다. 또 말벌이 무섭다. 순식간에 달라붙으면 피할 방법이 없어 그 자리에서 기절한다. 피할 수 없을 때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산속에서 왱하고 모기 소리만 들려도 삼십육계를 놓는다.


약초는 주로 어떤 것을 채취하는가?

돈이 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잘 모르는 약초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뜻밖에도 숲속에는 약초 비슷한 독초가 많다. 고사리 참나물 도라지 더덕 오가피 겨우살이 능이 송이 상황버섯 등등 계절에 따라 다르다. 주로 한약재로 쓰는 풀뿌리와 버섯류에서 봄에는 산나물, 그리고 야생 꿀을 채취할 때도 있다. 뱀을 잡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연보호법이 생겨 잡지 못한다. 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약초는 수백 가지가 되지만 내가 알고 채취하는 것은 2,30종 미만이다. 겨울인 지금은 칡뿌리를 캔다.


월수입은 평균 어느 정도인가?

들쭉날쭉이다. 산삼을 캐면 확 달라지지만 보통 때는 그저 먹고 살 정도를 유지한다. 아내와 함께 가면 아내의 하루 수입이 2,3만원 된다. 날씨 좋은 봄, 산나물이 나올 때 동행한다.


지금 하는 일에 불만을 느끼거나 싫증은 나지 않는가?

모든 것을 팔자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는 욕심이 없다. 산삼을 캐도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아프면 그냥 주기도 했다. 가진 땅이라고는 집 앞에 조그마한 텃밭이 전부지만 그곳에서 우리 식구 먹고 살 반찬이 나온다. 열심히 산을 뛰어다니며 겨우 아들 하나 교육시키는 수입을 얻지만 더 이상 벌어도 쓸 곳이 없다. 아들이 고등학교까지 전교 1등을 하고 좋은 대학에서 전자전기학과를 곧 졸업하게 되어 더 바랄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다.



산을 찾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어릴 때부터 산나물을 뜯고 나무를 해다 팔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도시로 나가 안 해 본 일이 없다. 술통 배달에서 구두닦이, 연탄불 갈아주기, 다방에서 잡일하기, 중국집 배달에서 공장 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태백에서 구두닦이 할 때 공연 온 배우 최무룡 씨 구두를 닦아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 부산에서 헤맬 때는 사흘간 꼬박 굶기도 했다. 굶어죽어도 훔쳐 먹을 생각은 안했다. 일거리를 찾아서 완행열차의 짐칸을 무임승차해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8톤 트럭을 몰았지만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 건강이 안 좋아졌다. 결국 산을 찾으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마음을 비우고 산을 일터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당신이 행복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5,6명씩 조를 짜서 다니지만 나는 김밥에 물통 하나 배낭에 넣고 혼자서 늘 돌아다닌다. 집을 나서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직업삼아 산에 살지만 운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산을 한 바퀴 돌고 산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면 구름이 어디로 가는지 바람 따라 무심히 흘러간다. 나도 세월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욕심이 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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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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