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족의 강인한 엄마 김보애
배우가족의 강인한 엄마 김보애
  • 김두호
  • 승인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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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살며 시를 써야했던 이유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배우 김진규의 아내였고 그 자신도 배우이면서 딸 김진아와 아들 성준(본명 진근)을 모두 연기자로 내보낸 김보애 여사는 젊은 생애를 영화처럼 살며 4녀1남을 억척으로 키운 장한 어머니다.


필자는 기자의 입장에서 30여년을 두고 그 분과 교유하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힘차게 거친 세상을 헤쳐가며 살아가는 모습과 희로애락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때 세종로의 유명한 한옥식당 ‘세보’와 이촌동에 ‘못이저’라는 민속음식점을 경영하며 마주쳤던 정치 경제 문화계 거물명사들의 이면사를 자서전 형식으로 펴낸 <죽어도 못잊어>에 담아 화제를 남겼지만 그의 걸어온 노변에는 그처럼 세상의 비밀스런 야화들도 산더미로 쌓여있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톱스타 김진규와 결혼해 선망의 눈길 속에 살던 13년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평온하고 다복한 시기였다. 남편의 영화제작 실패와 함께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고 새파란 30대 나이에 4남매를 이끌고 이혼녀의 길을 들어서게 된다.


“전당포에 결혼시계를 잡힌 돈으로 셋방을 얻어 새 출발했지요. 갈 곳 없는 가정부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데 쌀독이 바닥나 누룽지를 얻어다가 자식들 도시락을 싸줄 형편이 됐어요. 어물가게에서 버리는 생선찌꺼기로 국을 끓여먹을 정도였으니 순식간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쫓겨난 처지였지요.”

수면제를 술에 타마시며 극한 상황까지 갔던 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독기를 심어준 것이 4남매의 어린 자녀였다.

“자식들에게 꿈을 걸었어요. 내가 어떤 일이 닥치던 고통을 모두 감당하면 자식들이 고생하지 않고 자랄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어요. 약한 모습이나 어려움을 감추고 어쩌다 여유가 생기면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데리고 다녔어요.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꿋꿋하게 용기를 갖도록 한 것이지요.”


바닥까지 추락하면 올라갈 길 밖에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거친 암벽을 오르듯이 손마디에 피멍이 들도록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동부이촌동에서 시작한 민속음식점이 번창해 한남동에는 종업원 1백여 명이 일하는 기업형 식당까지 경영했다. 새벽마다 생선냄새가 나는 바지를 걸치고 직접 용달차를 몰아 수산시장을 오가며 억척으로 살았다. 4남매를 모두 미국에 유학 보내고 한때 자신도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서울을 못 잊어 돌아왔다.

그의 일에 대한 집념과 열정적인 성격의 일면을 과거 연기활동 때의 일화를 들어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김 선생님(그는 17살 연상의 남편인 김진규를 언제나 선생님으로 호칭했다)의 작품 <종자돈>을 찍을 때 신영균 씨와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팬티가 삼베치마에 붙어 벗겨나간 것도 모르고 너무 연기에 몰두하다가 난리가 난 일이 있어요. 어디 한번 일에 빠지면 그렇게 혼이 빠질 정도로 내 성격이 앞만 보고 달리는 데가 있어요.”

서라벌예대 시절 영화 <옥단춘>으로 시작해 <열녀문> <순애보> 등 주로 역사물에서 순박하면서 한편은 섹슈얼한 이미지의 연기자로 사랑을 받았던 그에게 김진규는 첫 남자였으나 남편에게는 전처와 사이에 자녀가 있었고 김보애는 그들까지 뒷바라지하는 때가 있었다.


“나는 팔자에 도화살이 있다고들 해요. 그런데 실속 없는 도화살 같기도 해요. 사랑도 해봤지만 혼자 사는 팔자가 편해요.”

기자는 이혼 후 다시 만난 그 남자가 누구였던가를 물어 본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착하고 잘 우는 남자였어요.”


김보애는 놀랍게도 감성이 풍부하고 현실을 깊이 있게 묘사하는 시를 쓰며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시를 쓰고 연극에도 출연하고 딸 진아가 데뷔한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는 극중의 모녀로 출연했다. 그런 그의 활동의욕에는 자신의 명예나 욕심보다 자식들을 위한 엄마의 깊은 배려가 스며있다. 엄마가 식당일로 돈벌이에만 매달려 살지 않고 문화예술인으로 긍지를 잃지 않고 산다는, 일종의 부모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더 열심히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심경을 시로 옮기며 살았다. 언론인 출신의 문필가 송지영 씨는 김보애의 세 번째 시집에 이렇게 서문을 달았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주어온 한 여인의 숙명적인 아름다운 마음결이 작품 하나하나에 짙은 향기를 풍긴다. 자신을 이만큼 대담하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만큼 생활을 찬미하면서 인생을 절규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녀의 때묻을 수 없는 어진 마음씨 때문일 것이다...>

김보애가 살며 마주친 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시대를 움직인 주역 명사들이 대다수 포함돼 있다. 3공시대의 실세노릇을 한 인물부터 김영삼 김대중 전직 대통령들이 주머니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야당시절에, 정보기관에 쫓겨 살던 시절의 김지하 황석영 씨 등 문인들에게도 그는 따뜻한 누님 대접을 받았다.

김보애 여사는 요즘 음식점 사업을 하지 않고 남북관련 잡지를 발간하면서 문화 행사와 영상기록물 국제 교류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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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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