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음악인을 꿈꾸는 피아니스트 이루마
친구 같은 음악인을 꿈꾸는 피아니스트 이루마
  • 김선
  • 승인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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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권상우한테 형님 대접 받아요” / 김선



[인터뷰365 김선] 영국 시민권을 버리고 떳떳하게 병역의무를 끝낸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음악무대로 돌아왔다. 피아니스트보다 작곡가로 불러주기를 원하는 이 30세의 젊은 음악인은 피아노음악의 예술성과 대중음악의 감성을 넘나들며 일찍부터 연예계 스타 못지않은 인기인으로 떠올라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이루마는 11살 때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영재 음악학교인 페셀스쿨을 거쳐 런던대 킹스컬리지를 다니는 동안 현대음악의 거장 해리슨 버트 위슬에게 사사한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1년에 1집 ‘Love Scene’와 2집 ‘First Love’를 연속으로 발표하며 뉴에이지 피아니즘의 감성미학을 선보인 이루마는 TV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봄의왈츠>의 음악과 애니메이션 <강아지똥> O.S.T 등으로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또한 미스코리아 출신 손혜임과 결혼해 탤런트 손태영이 그의 처제가 되고 손태영과 결혼한 배우 권상우와 동서관계가 됐다는 것도 화제다.

최근 6집 앨범 출시에 맞추어 지난 1일부터 22개 도시 전국투어 콘서트에 들어간 이루마와 긴 인터뷰를 했다.


군 복무를 하고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한 소감을 듣고 싶다.

(머리를 매만지며) 지난 8월에 제대해 보다시피 머리가 아직 덜 자랐다. 옆머리가 짧다보니 거울을 보면 어색하다. 머리카락 길이를 보면 군대 모습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느껴진다. 머리카락이 다 자라야 제대한 실감이 날 것 같다. 물론 방송이나 연주회에서 연주를 하는 틈틈이 '아 지금 내가 군인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갖는다.


제대하니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

우선 외출을 하면 반드시 복귀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군복무 중에는 늘 시간에 쫓겨 사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외박이나 외출을 나오면 정해진 시간에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니깐. 하지만 제대한 후에는 가야 될 곳이 집이니 다행이다. 집에 가면 누군가 날 기다려주는 것도 행복하고. 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행복하다.


지난 2년간 군대에 있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결혼을 했고 지난 7월에는 딸을 얻었다. 가족과 떠나 있어야 했던 시간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군 시절에 아내와 아이가 없었다면 군 생활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컸다. 빨리 제대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픈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또한 군 생활도 열심히 해야 했기에 두 가지 모두 잘 해야 한다는 마음에 벅찰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생활을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군 시절에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해서 화제가 됐다. 서둘렀던 이유가 있었나.

아내(손혜임)와 1978년 동갑이다. 아내의 나이도 있고, 군대에 있다보니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걱정하시더라. 거의 매일 아내가 위문편지를 보내줬다. 편지를 보내주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니 믿음이 가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 빨리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실 나이 들어서 군대 간 거라 불안했고... 안보면 (아내가)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하


처제(손태영)의 결혼으로 배우 권상우와 동서지간이 됐다. 손윗동서가 되니 어떤가.

많이들 물어보신다. 권상우도 사람이다. 하하하. 멋있으시다. 아기를 좋아해서 자주 집에 놀러온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디 놀러가자고 그러고. 나보다 두 살이 많은데 굉장히 젊어보인다. 처음에는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편하다. 나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아직도 이상하다.


결혼 이후 팬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결혼하고 아빠가 되니 팬들이 많이 줄었다. 어떤 분은 블로그에서 실망했다고 써놓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군대와 관련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두 가지 약이 있는데 하나는 시간과 하나는 모르는 것'. 군대는 모르고 들어가는 것이 약이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의미다. 이처럼 모든 것이 음악으로 대변해 줄 거란 생각을 한다. ‘나중에 내 음악이 이야기 해주겠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돌아섰던 분들도 다시 돌아오시지 않을까.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한창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28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해군에 입대했다.(10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시민권자가 됐던 이루마는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에 지원 입대했다) 사서 고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꼽자면, 우선 내가 한국인으로서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떳떳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없었으면 했다. 또한 예술인으로서 또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도 나에게 여러가지 감성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또 한 가지를 꼽자면 학창시절을 보냈던 영국에서는 선후배라는 관계가 없어서 아쉬웠다. 군대에서라도 선후배 관계를 느끼고 싶었다.


육군이 아닌 해군을 선택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군생활을 육군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보고 싶었다. 영국에 있을 때 로열 네이비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해군을 선택했고. 근데 실제로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틀리더라.


군대에서는 어떤 부대에 소속됐었나.

해군군악대와 해군홍보단에서 일을 했다. 대부분 음악하는 친구들로 구성돼있다. 군악대는 보통 클래식 하는 친구들이, 홍보단은 실용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 마술사 이은결씨도 후임으로 있었다. 정말 군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원했던 선후배도 생기고. 이제는 선후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큰 힘이 된다. 가끔 후임들한테 잘 지내냐고, 곧 제대한다고 연락 온다. 이런 인맥들이 나에게 큰 재산이다.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고. 또한 해군특유의 끈끈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군대이야기를 하니 즐거워 보인다. 다시 한 번 가라면 또 지원할 것 같은가?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는가.


20대 후반이란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20대 초반에 갔더라면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느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 인생, 만남 등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10살 어렸던 친구들의 연애상담, 고민상담 등을 해주면서 내가 그 나이에 고민했던 것들을 다시 되새김하는 경험도 됐고.


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추억이 있다면?

점호 끝나고 10살 정도 어린 선임이 귀를 파줬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후임들을 한 줄로 앉혀놓고 한명씩 불러 귀를 파줬다. 내가 마지막에 앉아있었는데 설마 나까지 하랴 싶었다. 그런데 '루마야 누워' 하면서 귀를 파주더라. 시원했다. 나는 '만찬오찬용'이어서 중요한 손님들이 오시면 식사 중에 음악을 깔아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아, 해군 복장인 세라복에 관련된 사건도 있다. 세라복이 교복같이 생겼다. 한번은 휴가를 나가자마자 바로 단골미용실에 갔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더라. 머리를 감으려는데 한 직원분이 어느 고등학교에서 왔냐고 물었다. 하하하. 군인이라고 했더니 내 복장을 훑어보다가 명찰을 보고 '이루마씨였냐'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얘기를 들으니 너무 재미있다. 굴욕사건도 많았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끝도 없다. 매달 생일인 병사들을 병사식당에서 축하해 주는 파티가 있다. 파티에서는 팡파레도 하고 생일음식을 챙기는 등 행사가 있는데 그 날은 후임들이 다들 어디 갔는지 건반 담당자가 병장인 나밖에 없었다. 건반을 생활관에서 식당까지 운반해야 되는데 거리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정쩡한 거리였다. 결국 혼자 리어카에 건반을 실어서 대낮에 혼자 끌고 갔다. 본부여서 해·공·육군이 다 모여 있었는데 낑낑거리고 운반하는 나를 다 쳐다보더라. 내 모습이 초라해보였던지 후임 한 명이 저 멀리서 뛰어와서 뒤에서 밀어줬다. 돌아올 때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왔다. 하하하.



군대에서 학력위조 논란이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영국 킹스컬리지 런던대학을 졸업했던 이루마는 지난 2007년 최근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로열음악학교'출신으로 기재되면서 위조 논란이 된 바 있다)

포털사이트에는 원래 킹스컬리지 런던대학 출신으로 제대로 돼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출신학교가 '로열음악학교(미국)'라고 적혀있더라. 처음엔 누가 믿을까 싶어서 무시했다. 로열음악학교가 미국에 위치하고 있다고 적혀있는 것도 어이없고. 내가 굳이 학벌을 위조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 홈페이지에는 처음부터 내 프로필이 제대로 쓰여 있었고. 그런데 신모씨 학력위조사건이 터진 후 파문이 커지면서 어느 날부터 '이루마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말이 나오더라.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포털사이트에 정정 요청을 했다. 군대에 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한순간에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일 때문에 나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도 계셔서 속상하다.


군대와 결혼이 음악생활을 하는데 영향을 끼친 점이 있다면.

음악적인 부분에 큰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생각을 많이 했었던 계기가 됐다. 제대 후 어떻게 하면 더 성숙한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나의 다른 면을 발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음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는 컨셉트로 시작하게 됐다.


음반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에 발매된 6집 음반 ‘P.N.O.N.I’ 소개를 해달라.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제일 처음 피아노를 만났을 때의 신기했던 느낌을 담았다. 3살 때 집에 피아노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했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피아노는 나의 집처럼 마음이 편안했던 곳이다. 심지어 어렸을 때 긴 피아노의자 위에 담요를 씌우고 그 안에 들어가 집이라며 놀기도 했으니깐. 어린아이에게서 어른보다 성숙한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더 성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앨범 타이틀 ‘P.N.O.N.I’는 어떤 의미인가.

'피 앤 오 앤 아이'라고 읽혀지는데 그대로 '피아노와 나'라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P.N.O.N.I’를 보면 단지 스펠링 사이에 점만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줄임말인 줄 알고 무슨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그대로만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문구다. 어린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깨끗하고 순수한 음악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게 하고 싶다.


이번에 발매된 6집 앨범의 재킷 사진 속 피아노 건반위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년 사진이 눈에 띄더라. 본인인가.

내가 3살 때 아버지께서 찍어주신 사진이다. 당시 바가지 머리의 장발이어서 다들 여자인줄 알더라. 어렸을 때는 여자아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누나들이 여자 아이 옷도 입히고 그랬다.


곡 중 두 단어 ‘Loanna(로안나)’와 ‘Ribbonized(리보나이즈드)’란 단어는 새로운데.

이 두 단어는 내가 만든 단어다. ‘로안나’는 딸 이름으로 딸을 생각하면서 지은 곡이다. 한국어로 이로운인데 영어이름이 로안나다. 아내가 지은 이름인데 예쁘지 않나. 하하하. 또한 ‘리보나이즈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의미하는 리본을 의미한다. 리본은 보통 선물이라던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데 많이 쓰이지 않는가. 피아노와 내가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이 또 다른 이들을 통해 새로운 리본을 만들어가길 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신의 노래는 감미로운 선율과 멜로디가 특징이다. 부인인 손혜임씨가 딸 로운이 태어나기 전 태교음악으로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거의 내 음악은 안 들었다. 내 음악을 들으면 슬프다고 하더라. 가장 힘들었을 때 옆에 못 있어줘서 자꾸 이런 생각이 난다고. 그래서 굳이 강요는 안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 앨범을 많이 듣는 것 같더라. 로운이도 내 음악을 잘 듣는다.



아버지로서 딸이 음악가가 되기를 원하겠다.

글쎄. 난 로운이가 크면 음악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말을 듣고 아내도 놀라더라. 음악가의 삶은 힘든 것 같다. 내 아이에게까지 이 일을 하게하고 싶지 않다. 물론 원한다면 시키겠지만. 나중에 로운이가 꼭 하고 싶어하는 일을 시키고 싶다.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남편이고 싶은가?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게끔 풍족한 생활을 누려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됐으면 좋겠다. 아내에게는 어떤 얘기도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 친구나 애인같은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아이 때문에 같이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느낌이 들더라.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피아니스트’란 타이틀 보다 ‘작곡가’란 타이틀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작곡가라고 불리는 게 좋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피아니스트라고만 보더라. 피아노 음악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와 영화·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작곡을 하고 싶다. 피아노 음악은 미술로 치면 스케치고 아이디어일 뿐이지 나에게 결코 완성된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피아노 음악은 아직 글로 옮기지 않는 정돈이 안 된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음악을 가장 하고 싶은가.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하고 싶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아무도 나한테 영화나 드라마음악을 안 맡긴다면 내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진짜 단편영화라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실제로 영화를 제작한다면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멜로물은 재미없으니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는 스릴러가 가미된 멜로?


영화ㆍ드라마 음악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 보인다. 매력이 뭔가?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영상이 있다는 점이다. 정말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음악을 들으면 영상이 떠오르고, 영상을 보면 음악이 떠오르지 않는가. 완성된 음악이라면 영상이 떠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 음악을 영화 속 배경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밝혀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연주음악은 이런 점에서 비춰보면 한계가 있다. 때문에 공연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리는 편이다. 간혹 ‘내가 음악 들으러 왔지 이야기를 들으러 왔냐’고 불평하는 청중분도 계신다. 하지만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려야 내 연주를 더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평소 영화도 많이 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어떤 작품이 있는가.

얼마 전에 영화 <맘마미아>를 봤는데 난 그동안 아바노래가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아내와 같이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다.


인터넷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배경음악으로 당신의 연주곡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직접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떤가.

기쁘고 행복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우연히 배경음악으로 들으면 '내가 이렇게 쳤었나?'란 낯선 느낌도 든다. '다른 사람이 내 곡을 연주한 건가'라며 놀라기도 한다. 피아노를 친 당시 그때 심정과 느낌을 100프로 다 기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 곡을 똑같이 연주해도 첫 연주 때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30대를 넘어섰다. 나이가 들수록 음악에 대한 느낌이 달라질 법도 하다.

이젠 연주하면서 체력이 달리더라. 손에 땀도 더 나고 긴장도 더 하게 되고. 하지만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성숙해 지는 것 같다. 음악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피아노앞에 앉아 있다가 멜로디가 생각나면 의미를 부여했다. 쉽고 간단하게 음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순서도 바꿔보고 이음, 저음도 쳐보면서 그 깊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작곡 시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작곡은 일기같은 기록이다. 앨범 자체가 일기장이 되는 것이다. 그때그때 기록이고 생각나는 일들이나 주변에 일어났던 상황과 풍경들,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 등 여러가지가 나에겐 주제가 된다. 심지어 피아노에 앉아 있다가 건반을 누르다가 곡을 쓸 때도 많다. 건반을 누르며 멜로디를 찾아가는 도중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곡의 주제가 된다.


그동안 수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애착가는 곡이 있다면?

다 애착이 간다. 그중 ‘When the love fall’이란 곡이 있다. 원곡은 미셀 폴나레프(M.Polnardff) 의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란 프랑스 샹송을 편곡한 곡이다. 누나가 시집가기 전 두고 간 미셀 폴나레프의 베스트 앨범 LP판이 있었다. 그 앨범 A면 첫 곡이 저 노래였다. 멜로디가 너무 좋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했더니 새롭더라. 사람들이 몰랐던 곡을 발견해 알리게 된 곡이라서 남다르게 생각된다. 또한 드라마 <겨울연가>에 O.S.T로 사용되며 이루마란 이름을 알릴 수 있게끔 해준 곡이기도 하다. 드라마 <여름향기>에 쓰이기도 했던 ‘Kiss the rain’이란 곡도 애틋하다. 이 노래는 영국에서 비를 맞으면서 만든 노래다. 학교가는 길에 다리를 건너며 흥얼거리다가 떠오른 멜로디로 작곡했다.


인생에서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 것 같나.

음악은 만남이다. 음악을 통해 사람을 만나게 된다. 피아노를 만나 음악이 생겼고. 그 음악을 연주하면서 들려주고 이것을 통해 서로 만남이 형성되고...무한대의 인간 웹이 형성되는 것 같다.


어떤 음악가로 남고 싶은가?

작곡가 이루마로 불리고 싶다. 친근하고 무슨 얘기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음악인이 되고 싶다. 나중에 음악학교를 세우고 싶다. 거만하고 무게잡는 음악인이 아닌 친구처럼 학생들과 지내고 싶다. 그 친구들의 음악을 듣고 내가 만든 음악도 들려주고...그게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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