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음률을 산책하는 여자 한정림
진실의 음률을 산책하는 여자 한정림
  • 조현진
  • 승인 200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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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가을속을 걷다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추석이 끝나는 금요일인 28일날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양 어울림누리 별모래 극장>에선 조금 색다른 공연이 열린다. 바로 지금 뮤지컬 계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한정림이 초대하는 뮤지컬 콘서트 <한정림의 음악일기; 산책>이라는 공연이다. 제목이 말해주 듯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한정림과 관객이 만나는 이 공연은 영화배우 ‘김태우’와 소설가 ‘한 강’도 함께 참여한다고 한다. 어떤 공연이 될까?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한정림을 만났다.



반갑다. 28일날 공연을 한다고? 어떤 무대인가?

<한정림의 음악일기>라는 그냥 말 그대로 내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같은 공연이다. 내가 작업하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무대다. 나는 곡을 쓰는 사람이지만 곡을 잘 쓰고 못쓴다는 문제보다는 내가 만든 곡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곡을 만드는 과정을 대중들과 나눌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정림이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곡을 만드는지... 이런 걸 나누고 싶어서 만든 무대다.


그렇다면 공연의 형식은?

3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과거에 내가 만든 뮤지컬 곡을 들려주고, 두 번째는 팝과 재즈에 대해 작곡한 곡들을 나누고, 세번째는 소설가 한강씨와 몇 년째 작업하고 있는 <탱고뮤지컬>이 하나 있는데 그걸 쇼케이스 형식처럼 먼저 관객에게 선보이며 들려주게 될 것이다.


탱고 뮤지컬? 그럼 그 탱고뮤지컬도 곧 막이 오르나?

아니다. 한강씨나 나나 둘 다 느긋한 성격이라 완성이 되려면 한 10년정도 걸릴지 모른다. 한강씨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인데 성격이 잘 맞는다.


한정림이라고 하면 뮤지컬에 음악을 붙이는 작곡가 인데. 이번 공연은 당신이 연주자로써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시도라고 봐야 하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아직도 내가 가장 사랑하고 제일 잘 하고 싶은 건 뮤지컬이다. 다른 나라의 뮤지컬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만의 뮤지컬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이 국악뮤지컬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우리 문화와 혼이 담긴 음악이 들려지는 뮤지컬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관객과 작곡자의 소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객석과 무대가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 꼭 말로 해야 이런 생각이 전달되는 건 아니고... 난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음악만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공연을 하는 거다.


‘산책’이란 제목과 당신의 분위기는 잘 어울린다. 졸리진 않겠지?

물론이다. 무대에 서면 나도 좀 달라진다. 하하.



뮤지컬 작곡은 어떻게 시작 한 건가?

원래 어릴 적부터 책 읽는걸 좋아했다. 난 모든 문자도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시(詩)도 음악이고. 말과 음악을 뗄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아버지가 뮤지컬을 하셨다.(한정림의 아버지 한익평씨는 우리나라 뮤지컬을 개척한 연출자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에게 뮤지컬이나 영화 같은 거 잘 못보게 하셨다. 그래서 몰래 비디오로 뮤지컬 영화들 보고 그걸 보다가 나도 저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던 거다. 그러다가 한국예술종합원 작곡과 다닐 때 연기실습이랑 무용실습이 졸업필수과목이었는데 그때 연출가인 최형인 선생님이 연기실습 강사로 오셨다.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 독백연기를 하는데 내가 말을 잘 못하니까 그냥 독백 연기 안하고 최형인 선생님 한테 난 뮤지컬 작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2주후에 연락이 오셔서 ‘너 한번 해봐라.’ 하시더라고. 그게 <한 여름밤의 꿈>이란 음악극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그 이후엔 무슨 작품들을 했나?

학전에서 올린 <하얀 동그라미> 평양에서 공연한 <금강>도 했고, <노래하듯 햄릿> 이란 공연도 작곡자로 참여했다. <서푼짜리 오페라>와 다른 뮤지컬들은 편곡과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좀 고약한 질문인지 모르겠는데 당신의 공연과 노영심의 공연은 무슨 차이가 있나?

나는 ‘장식’적인 걸 잘 못한다. 뭔가 장식을 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그리고 성격상으로 난 좀 너무 진지한데도 있고. 그러다가 무대에 올라가면 본능적으로 내 그런 모습이 정직하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가장 관심을 둔다. 노영심씨의 공연은 아주 감동적이고 잘 만들어진 공연이다. 대중적 완성도에선 내가 노영심씨보다 훨씬 떨어지겠지만 난 그냥 그런 내 진심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걸 더 좋아하는 관객도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이번이 <한정림의 음악일기>의 4번째 공연인데. 지난 3번의 공연은 어땠나?

첫 공연은 끝나고 너무 큰 상실감이 몰려왔었다. 의욕이 앞서다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걸 보인 것 같아서 공연 끝나고 내 것을 다 잃고 빼앗긴 듯 한 기분이 오래갔었다. 그래서 두 번째, 세번째는 그걸 좀 좁혀가자 했더니 지난 공연은 너무 좁혀서 도리어 내 정체성을 모르겠더라. 내가 누구고 왜 이런 공연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무대를 준비했다. 내가 누구인가? 난 어떤 영향을 받았나? 이렇듯 내 뿌리를 찾아가는 시도라고 할까?


관객들은 어떤 부분에서 당신 공연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지난번까지 공연을 보면 관객의 연령대가 참 다양한데 고맙게도 그 관객들이 내 고민을 알아주시는 것 같다. 내가 이 곡은 이런 고민으로 썼습니다...하면 대체로 동의해 준다. 내가 좋은 관객을 만난거지. 그런 관객의 호흡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는 거다. 좀 큰 감정을 쓰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작은 감정으로 가면 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고. 그렇게 객석과의 거리를 좁혀간다고 생각한다.


그 정체성을 좀 묻자.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정림은 참 고민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번 공연도 사실 크로스오버라고 말할 수 있으니. 당신 정체성의 정의는 뭘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솔직히 보여준다. 보여주고 싶다. 보여줘도 된다. 이런 거 아닐까? 난 음악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는 음악을 다 보여준다는 거지. 그러다보니 당신이 크로스오버라고 말하는 것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거고. 뮤지컬 작곡은 내가 만든 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지만, 이번 공연은 나 스스로가 무대에 올라가는 거니까 내 음악이 다른 사람을 통해 해석되는 게 아니라 좀 부족해도 내 진심, 내 생각을 보여준다는 거다. 직접적 소통을 원한다는 거지.


그런 소통과 함께 작곡자로써, 연주자로써 당신은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세련되어지지 않을까? 난 아직 스스로 자폐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집중력이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여 주는 데는 미숙하다. 경험이 반복되면 그 미숙함이 사라지겠지. 자주 무대에 오를 거다.


이번 공연은 누가 봐줬으면 좋겠나?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 이번 무대를 위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라는 곡도 새로 썼다. 뭔가 위로받고 싶은 분들이 들어주면 좋겠다. 최대한 어쿠스틱한 음악을 할 거고...따듯할 거다. 일종의 ‘뮤직 테라피’가 되면 좋겠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나 김태우, 한강씨도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정림은 행복한 사람인가?

행복을 찾고 싶은 사람이겠지. 요즘 일상은 서울 종합예술원에서 뮤지컬 전공하는 학생들 가르치고, 연주하고, 곡 쓰고 그런다. 그런데 늘 행복한 게 아니라 나는 음악을 할 때만 행복하다. 가르치는 일에는 절망감을 많이 느낀다. 내가 그들의 생각과 발전에 경계를 그어주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많다. 선생이나, 교수는 음악 하는 사람에겐 좋은 직업이 아닌 것 같다. 나태하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대접을 받으려고 들고. 나는 모든 것이 너무 꽉 차고 빡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에 오시는 분들도 그냥 지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니까 듣자.’ 이러면 좋겠다..뭔가를 내놓았을 때 도마 위에 오른 생선 같다는 기분이 안 들게 말이다. 그렇게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한정림이 정의하는 ‘행복’은 뭔가?

나는 행복이란 ‘허점을 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유재석을 좋아한다. 약점을 거침없이 보여주니까. 앞으론 어쩔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허점을 인정하고 숨길 생각은 없다. 운이 좋아서 미국에서 번스타인에게 마스터클래스를 한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완벽’을 노력한 사람이었는데 번스타인이 나에게 이러더라. ‘니가 안달복달해도 음악이 너한테 맞춰지지는 않는다. 잘하는 걸 잘해라. 못하는 걸 인정 안하고 잘하려고 하면 결국은 불행해진다.’ 라고. 그 말이 아직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렇다. 한정림은 아직 대중에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진실을 진실로 나누며 사람과 세상 안에서 소통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것이 허점이건 능력이건 솔직하게 주고 받기를 한정림은 희망한다. 음악은 그런 그녀의 소통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 가을. 그런 한정림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조금 작은 소리여도 좋다. 속삭이면서, 보여주고 바라보면서 가을속으로 그녀와 함께 산책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트에 ‘한정림’이라는 이름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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