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될 뻔했던 가수 김수철
공무원이 될 뻔했던 가수 김수철
  • 김두호
  • 승인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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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에 미쳤던 ‘개똥철학자’의 추억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팔짝팔짝 뛰고 튀어 오르며 열창을 하는 귀여운 작은 거인 김수철. 그는 톱 클래스의 가수로 인기를 누릴 때도 자신의 히트곡 <못다핀 꽃 한송이>의 제목처럼 스스로를 미완성 존재라고 겸손해 했다. 국악에서 가요와 서양음악,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서 영화 연기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담대하고 치밀한 창작예술인의 기개를 펼쳐온 김수철과 생활인 김수철의 모습은 딴 판이다. 남과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할 만큼 수줍음 잘 타고 쌩글쌩글 웃는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소년처럼 순진해 보인다.


그는 부잣집 막내아들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들 셋, 딸 둘의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난 것은 맞지만 그저 고생 안하고 살 만한 보통 집안에서 성장했다. 철물상을 하는 아버지는 매우 보수적이고 자식들에게 엄격했다.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도 못하게 했고 노래 부르고 기타 치는 꼴은 용납을 하지 않았다. 기타도 집안에서는 줄에 종이를 끼워 소리가 안나도록 몰래 연습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재미있는 그의 성장담에는 카뮈에 미쳤던 ‘개똥철학자’의 추억도 있다. 아버지가 기타를 압수하고 음악에 빠진 아들을 정신이 나갔다고 단호하게 경고하면서부터 책을 뒤지다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만났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이방인>을 열독하면서 철학자가 된 착각에 빠졌어요. 읽고 또 읽으면서 내 나름으로 음미를 하고 해석을 했지만 철학의 진정한 깊이를 몰랐으니 그냥 개똥철학자가 된 거였지요. 심야에 촛불을 켜 놓고 멍하게 앉아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또 한번 아버지가 알고 이제 진짜 미친 아들이 됐다고 통곡을 하셨으니 그 길로 카뮈와는 작별했지요.”



김수철은 스스로 음악성 소질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지만 음악에 눈을 뜨게 하고 빠져들게 한 계기는 TV에서 신중현의 노래와 기타 연주를 보면서였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손놀림을 보며 노래와 기타에 빠져든 그는 고교(용산공고) 시절에 이미 3인조 밴드 ‘퀘스천’을 만들었고 광운공대 시절에는 ‘작은 거인’을 결성해 대학축제의 무대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퀘스천’은 김수철이 리드 기타를 맡고 같은 반 친구 안기정은 드럼, 양정고의 이예습이 베이스로 참여해 명동 성당의 예술제에서 청소년 최고의 하드 로크 밴드라는 갈채를 받아냈다.


고3 때부터 가발을 쓰고 무교동의 살롱 스지큐에서 연주자로도 활동했지만 아버지의 눈을 피해가며 음악을 하는 것은 늘 심리적 불안과 중압감이 따랐다. 김수철은 장충중학교 시절부터 반에서 1,2등을 하는 우등생이었고 고교 입학 때는 장학금도 받아 아버지에겐 막내아들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겄던 것 같다. 김수철은 고교시절에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다같이 생각하며 대학보다 공무원이 되어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을 했다. 고교 졸업 무렵 5급 공무원(현재의 9급)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사실을 전해드리면서 아버지가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시며 칭찬하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돌아가셨지만 그 일 외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아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불호령과 꾸지람만 가득해요. 그런데 공무원 연수교육과 예비고사를 앞두고 학생으로 가발 쓰고 야간업소에 나간 것이 들통나 퇴학 위기를 맞았어요. 다행히 형님과 담임선생님의 노력으로 처벌을 면했죠. 예비고사에 응시토록 해주신 건데 그 길로 공무원을 포기하고 대학에 진학해 다시 음악활동을 하게 된 거지요.”



가수 김수철을 인기의 전면에 내세운 노래가 1983년에 부른 <못다핀 꽃 한송이>였다. 대학시절에 만든 ‘작은 거인’은 방송사의 대학가요축제에서 입상도 했으나 빛을 못보고 깨어져 홀로서기를 하던 좌절기에 부른 노래였다. 녹음을 끝낼 무렵에 배창호 감독을 만나 영화 <고래사냥>에서 안성기 이미숙 등과 공연하는 행운이 다가왔다. 5개월간의 촬영이 끝나자 <못다핀 꽃 한송이>가 히트하고 있었고, 출연 영화도 대박으로 터지는 겹경사가 찾아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금홍아 금홍아>에서 꼽추화가 구본홍 역 등 연기와 음악 활동을 겸하면서 국악앨범과 가요앨범을 동시에 발표하는 등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김수철은 이제 대가의 문턱에 올라 있다. 지금도 가요 창작곡 발표와 공연활동, 또 영화음악 작가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고 산다. 2002년 월드컵 개막행사에서는 음악감독으로 자신의 창작곡 <기타산조>를 전 세계인에게 들려주는 영예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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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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