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애마부인-‘자유부인’의 김정림
50년대 애마부인-‘자유부인’의 김정림
  • 김다인
  • 승인 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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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에 도전장 낸 여성의 욕망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1954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비석의 신문 연재소설 <자유부인>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이 됐다.

수도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무려 10만8천명의 관객이 몰려 그해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개봉관에서 오랫동안 상영되자 재개봉관에서는 빨리 상영을 끝내고 필름을 돌리라고 데모까지 할 지경이었다.

워낙 인기소설의 영화화라는 것이 화제가 됐지만 키스나 포옹 장면의 표현수위 때문에 생긴 논란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자유부인>은 오선영과 대학생 춘호의 키스 장면, 오선영과 한사장과의 포옹 장면 등이 문제가 되어 상영 전날까지 검열에 통과하지 못했고, 당시 검열을 담당했던 문교부에 의해 네 군데 백 피트 가량을 잘라낸 다음 상영 허가를 받았다.

‘남녀간의 포옹추태, 댄스 신, 키스 신 따위가 민족도의관념상 수치를 극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도적적 심리로서 그것을 용허할 수 없다’는 것이 검열사유였다.

참고로 1956년에 문교부가 발표한 공연물검열세칙을 보자.

제3항 ‘풍속’에 관한 것을 보면 ‘관객들의 색정을 유발하게 하는 장면이나 ‘비속한 충동을 느끼게 하는 침실 장면. 매음을 정당화하는 것’ 등은 모두 금하고 있으며 나체장면이 허용되는 단 한 가지 예외란 ‘원시생활의 사진기록’을 삽입할 때뿐이었다.

또 4항 ‘성관계’ 중에는 ‘과격하고 음란한 키스 포옹 선정적인 자세’를 금한다고 명시돼있다. <자유부인>에서 검열에 의해 잘려져 나간 부분은 문교부 공연검열물세칙 제4항 제7조에 위배된 것이었다.

이에 영화계는 반발했다. 그 장면들이 왜 추잡한 것이며 당위성이 없느냐, 그리고 이미 영화상으로 키스신 정도는 허용된 것 아니냐고 검열에 불복하는 제작자의 항의에 검열당국자가 신문에 담화까지 발표해 사태 진정에 나섰다.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서도 ‘키스장면 시비’라는 제하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았다. ‘찬성론이 지배적’이라는 표제 아래 서울대 교수, 대법관 등의 의견을 싣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찬성의사를 표시한 이들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로 표기돼 있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고 찬성을 했다가는 권위가 실추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행간에 읽히는 일이다.

<자유부인>은 문제가 된 키스 또는 포옹 장면 외에도 당시 소위 상류사회 사람들의 허영을 보여주는 면에서도 흥미롭다.



오선영이 운영하는 양품점 이름은 ‘파리양품점’인데 여기 물건을 사러 온 사람(주선태 분)이 “최고급입니까? 최고급으로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오선영이 “최고급입니다”라고 답하며 물건을 보여준다. 요즘으로 말하면 “명품입니까”로 바꿔도 될 이 대사는 그 당시의 사치바람을 알게 하는 것으로, 한동안 유행어가 됐다.

영화에서 오선영과 그 친구들은 ‘화교회’라는 상류사회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 함께 춤도 추고 담배도 피워 문다. 유교적인 사회 속에서 이같은 여성들의 모습은 파격이었다.

이처럼 화제의 중심에 서있던 <자유부인>에서 ‘50년대 애마부인’이라 할 수 있는 오선영 역을 맡은 여배우는 김정림이었다.

김정림의 본명 김복순, 당시 26세였다. 한형모 감독이 신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안 친구의 남편이 김정림을 한 감독에게 소개한 것이다. 양장과 한복이 다 어울리는 신인 여배우를 찾고 있었던 한 감독은 눈매가 맵싸하니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김정림을 보고는 단번에 오선영 역으로 낙점했다.

평양 술도매상집 딸로 태어난 김정림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 해방 후 서울에 있는 언니를 찾아 단신 월남했다. 언니가 경영하는 다방에서 일을 하는 한편 스탠드바에도 나가며 생활을 하던 김정림은 가정 있는 남자와 만나 살림을 꾸리며 딸 둘도 낳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도 여전히 다방 마담 노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이때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던 김정림은 <자유부인>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1957년에는 <속 자유부인>에 출연해 ‘김정림=오선영’이라는 등식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선영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정림은 이어진 영화 <여성전선> 등이 흥행에 참패하자 다시 언니가 운영하는 요릿집 마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옛 신신백화점 뒤 고급 요정이었는데 여기서 번 돈으로 두 딸과 무일푼으로 아편중독자가 되어 귀국한 남편까지 거둬 먹여야 했다. 김정림은 <자유부인>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줄곧 숱한 루머와 호시탐탐 사생활을 캐내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렸고 영화로 재기하는 데 끝내 실패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게 될 <자유부인>은 당시에는 문란한 여성들을 그렸다 해서 비난도 받았지만 지금은 1950년대의 예외적인 영화로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또 기술적으로는 제대로 된 크레인과 이동차를 처음 사용한 영화로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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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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