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꽂힌 정지영의 <부러진 화살>
법정에 꽂힌 정지영의 <부러진 화살>
  • 김두호
  • 승인 2012.01.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365 김두호】판사는 신(神)이 아니다. 높은 법대의 상좌에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유죄와 무죄를 가려내고 분쟁을 해결해주며 유죄가 인정되면 형량을 선고하는 준엄하고 냉엄한 자리에 있지만 판사도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법을 공부해 법을 다루는 전문 직업인으로 국가에서 임무를 부여해 준 것인데 법정에 선 피고인이 법을 전공한 판사나 검사, 변호사보다 더 해박한 법지식을 가지고 잘못된 사안을 지적하고 그들의 오류를 추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에게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한 판사에게 분노를 느낀 해직 대학교수가 귀가하는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쏜 죄로 장기간 수형생활을 한 교수의 실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부러진 화살>이다. 부러진 화살은 사건의 진실공방에서 검찰 측과 피고 측의 쟁점 사안이다. 피고는 언감생심 범접할 수 없었던 법관의 성역에서 판사와 검사 등 법조인과 당당하게 법조문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논쟁 정도가 아니라 피고가 잘못된 공판 진행을 서슴없이 지적하고 판사와 검사에게 도리어 법적 고발을 선언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적용법규의 실행을 촉구한다.


교수는 지식층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이다. 피고석에 선 교수는 입시시험의 출제 오류를 지적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하자 대학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엄청난 집단의 힘을 가진 대학과의 대립에서 패한 것을 판사의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해석한다. 항소마저 기각한 판사를 석궁으로 공격한 교수는 겁을 주고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도였지 크게 헤칠 생각은 없었다는 입장이었지만 판사에게 화살을 날린 것은 사법부에서 볼 때 법관의 권위에 도전한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다. 과실상해죄를 주장하지만 살인미수죄의 피고가 된 교수는 철창 안에서 형법조항을 스스로 독파해 재판이 인간에 의하지 않고 법에 의해 집행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피해자인 판사가 주장한 부러진 화살의 실체와 증거로 제출된 피 묻은 옷의 법의학적 검사 등 증거로 채택될 수 없는 점을 판사와 검사에게 추궁하고 피해자가 마땅히 법정에 출석해야함에도 출석하지 않는 이유를 따진다. 물론 변호사도 피고의 입장을 대신해 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쏟아낸다.


영화는 그렇게 쉬지 않고 법정드라마로 이어 가지만 지루하지가 않다. 재미있는 영화, 볼만한 영화, 좋은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의 요건은 여러 가지 겸비해야할 조건이 따른다. 우선 주제에서 이탈했거나 드라마의 흐름을 지루하게 하는 불필요한 군더더기 장면이 없어야한다. 다음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연기자의 배역이 모두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 실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의 생명은 배우가 발휘하는 연기의 리얼리티에 있다.


<부러진 화살>은 장면 구성에서 연기자의 역할에 흠집이 보이지 않는다. 피고역의 안성기, 판사역의 이경영과 문성근, 변호사 역의 박원상, 교수부인역의 나영희까지 적재적소에서 절제력 있게 자신의 임무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이경영의 눈빛에는 여전히 흡인력 있는 연기자의 깊은 내면의 멋을 접하게 한다. 또 박원상의 연기열정도 주목을 받게 한다. 대사 몇 마디하고 지나가는 조연, 단역까지 쓸모 있는 구성원의 임무를 다한다.


한 세대 지나간 감독으로 생각했던 정지영 감독이 아직도 이 시대에 필요한 감독임을 보여준 작품이다. 교수 부인역의 나영희도 뜻밖의 캐스팅이고 문성근을 보수골통 판사 자리에 앉힌 것도 상상 밖이다. 이 영화는 법치주의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실제는 권위주의와 직업적 이해관계, 기득권과 이기주의가 얽혀 돌아가는 우리 시대의 적절하지 못한 단면을 고발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볼 수가 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김두호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