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도 말을 한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죽은 자도 말을 한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 유성희
  • 승인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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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 해결의 열쇠는 DNA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며칠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길가던 40대 남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인 김모(25)씨는 단지 누군가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소위 ‘묻지마 살인’이었다. 한 달여 전에는 관공서에 난입한 괴한으로부터 여성 공무원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역시 이유가 없었다. 두 사건 모두 범죄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대낮에 일어났던 터라 더욱 큰 충격을 줬다. 원한이나 치정에 의한 것이 아닌 ‘묻지마 살인’의 경우 용의자가 검거되지 않으면 연쇄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저지른 범죄와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 <한국의 연쇄살인>에서는 연쇄살인이라는 것이 단 한명의 괴물이 저지른 일회성 해프닝이 결코 아님을 강조한다. 범인에게 최고 형벌인 사형을 선고하여 응징하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자족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제를 폐지하느냐 마느냐하는 작금의 논란 속에서 주목되는 의견이 아닐 수 없다. 책의 저자인 표창원 교수. 각종 방송과 강연을 통해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범죄심리학’ 분야를 대중들에게 알려온 표 교수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찰대학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과학수사 수준은 세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일까요?

두 가지 답변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과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 지난 번 동남아시아 쓰나미참사와 서래마을 영아살인사건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DNA분석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특히 쓰나미참사 때는 시신의 DNA를 채취해 사망자 신원을 일일이 찾아냈고, 다른 나라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요청할 정도였죠. 하지만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를 제외하면 그 외의 다른 곳들은 과학수사가 열악한 편입니다. 중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는 과학수사학과와 법의학과가 따로 없습니다. 국과수의 기능직이나 법의학 계통은 미달사태인데 이유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기피현상 때문입니다. 외국이 순차적으로 교육받은 전문인력으로 과학수사를 진행한다면 우리는 현장수사를 통해 도제식으로 습득해 나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자기희생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앞으로 외국과 경쟁하려면 이대로는 힘들 것입니다.

 

‘완전한 범죄는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완전 범죄가 없다’는 말은 가해자가 남긴 증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남겨진 사체는 곧 증거입니다. 사체에는 가해자가 남긴 행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의 시신이 없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신을 불에 태우는 방화의 경우에는 주변의 변화된 환경이나 목격자의 제보 등 또 다른 요소에 의해서 범행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성연쇄살인이나 이형호 유괴사건, 그 외에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느냐. 그 당시의 열악한 수사시스템이나 잘못된 초기 대응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겠지요.

 

 

 

 

과학수사 수준이 향상되어가면서 예전 같으면 해결되지 않았을 사건이 풀린 적도 있겠습니다.

10년 전 주점 여주인 살해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창고에 남아있던, 당시 증거물인 맥주병 지문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담당형사가 검색해봤더니 일치한 사람이 나오더라는 거죠. 사건당시에도 맥주병에 지문은 남아있었는데 쪽지문(일부지문)이었던 데다가 범인이 미성년자여서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범죄사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합니다. 범인은 무죄로 판결됐습니다. 우리나라 상해치사의 경우 공소시효가 7년이라 범인이 풀려나게 된 거죠. 하지만 처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지 밝혀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건해결이라 하면 죽은 피해자의 원혼을 달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미제사건 같은 경우는 공소시효(어떤 범죄사건이 일정한 기간의 경과로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와도 관련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과학기술은 언제나 발전하고 DNA 기술력도 진보하고 있습니다.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나 목격자의 마음이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점을 찾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 만에 범인을 잡은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소시효의 배에 달한 시간이죠. 집념만 있다면 범죄해결은 가능합니다.

 

교수님은 평소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잔혹범죄를 직간접적으로 겪어오면서 느꼈을 분노와 무관치 않겠지요?

결론적으로 분노는 없어야 합니다. 범죄에 대해 선입견과 감정을 품고 객관적이지 못한 편파수사를 한다는 것은 직업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수사관들은 사건에 대해 직접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에 반해 잡히지 않는 범인을 생각할 때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건 범인 개인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사건자체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집념을 넘어 집착이 생기죠.

 

반대로 공포심을 느낄 때는 없나요?

그렇지는 않고요. 사건을 다룬 공포영화를 보면서는 느낍니다.(웃음) 사체에 대해 죄송스럽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나 현장에 가게 되면 저희는 사체를 수사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사건과 사체에 대한 충격보다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증거를 찾기 위해 더욱 냉철해 집니다. 법의학 경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포라는 감정은 사치’라고요. 책을 내면서 수감돼 있는 범인으로부터 협박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공포심을 느끼겠지만 당사자인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협박성 이야기들이 실행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고요. 저뿐만 아니라 경찰관들이라면 빈번하게 겪는 일입니다. 협박이든 위협이든 검거 중에 당할 수 있는 반격이든.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일을 하기 어렵겠죠.

 

 

 

 

요즘은 치정, 원한, 돈을 노린 살인보다 익명을 상대로 한 ‘묻지마 살인’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살인의 동기가 없다고 해서 무동기 살인이라고 하는데 동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동기가 없지만 가해자에게만 있는 일방적 동기가 있겠지요. 그가 가지고 있는 이상(異常)성격 때문이죠.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신경생물학적 원인에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가장 오래된 학술적 이론은 19세기 이탈리아에서 제기 되었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밝혀진 것인데 동물들에게서는 외형적이고 신체적인 돌연변이들이 나타나지만, 인간세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격ㆍ심리적인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분열증처럼 두드러진 착란이나 망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뇌의 특정부위 손상으로 인한 신경대사 작용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아 양심이라 부르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이유는 변화된 환경과 사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변화된 환경이라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산업화 후기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가정의 해체로 인한 소외현상, 물질문명의 확산, 대중매체로 인해서 발생하는 과잉통신 등으로 인해 세상의 극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스턴트식품의 과잉 섭취 등 섭생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는 의견도 있지요. 이러한 성격적인 문제를 안게 된 사람들이 사회와의 불협화음이 강해지고 반사회적인 충동과 욕구를 갖게 되면서 자신의 탓이 아닌, 잘못된 사회로 원인을 돌리는 가치관이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 심정에 처했을 때 인간에게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들은 자극적, 폭력적인 미디어로부터 대리만족하는 경험을 맞보다가 어느 일정수치에 이르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 때 체험해보고 싶은, 실현해보고 싶은 환상을 갖게 되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살인’이 발생되는 시점입니다.

 

잔인함의 정도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없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낙원을 만드는 거죠.(웃음) 미움도 없고, 사회적 불만도 없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사회의 한계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 같고요. 가급적이면 공동체적 삶을 가꿔나가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범죄가 점점 더 잔인해지는 이유는 그만큼 사회에 대한 분노로 열등감의 반작용이 강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적달성만이 전부라는 인식이 범죄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보니 범죄도 수용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범죄자들에게도 로망이 있었습니다. 절도범들이 결의를 하죠. 절대 사람은 해치치 말자고. 요즘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은 절도가 목적인데 사람이 있으면 죽여 버려요. 공동체적인 분위기에서 일어난 범죄와, 이웃에 대한 동질감이 없는 파편화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범죄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범죄자들에게서만 원인을 찾을 게 아니라 사회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연쇄살인자들의 경우 전과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다시 범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만드는 데에는 우리사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나온 이후 사회와 접촉하면서 교정처우를 포함한 부정적, 적대적 인식을 갖게 됩니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은 버려지고 사회와 완전히 담을 쌓게 되는 것이죠. 이후 그들에게 잔혹성은 곧 생존수단이 됩니다. 다시 재활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 줘야합니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부여받게 된다면 사회를 향해 휘두르는 칼날이 좀 더 무뎌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입니다.

 

 

 

 

범죄수사에 대한 시민들의 협조는 어떤 편인가요.

범죄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제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우에 해결된 강력사건의 90%가 시민의 신고와 협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74%정도 입니다. 이 74%를 90%로 올리자는 것입니다. 신고를 함으로써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이나 보복 심리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를 위해 오고 가는 귀찮은 불편이 있을 수 있거든요.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편쯤은 감수한다는 마음, 제3자로서 선의를 다하는 시민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표 교수에 따르면 강력범죄 해결의 열쇠는 DNA에 있다고 한다. 지문은 범죄자들이 워낙 잘 알고 있어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간 신체적 접촉으로 인한 DNA가 남을 확률이 높다. 문제는 DNA분석이 지문과 달리 일대일 대조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수사협조가 요구된다.

 

“저 역시도 DNA 샘플을 채취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영국 유학시절 제가 하숙하던 지역에서 여고생이 강간피살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저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터라 코피 쏟으며 밤을 샐 때였죠. 한국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어느 날 국제전화 한 통이 오더군요. 영국 해당경찰서에서 한국을 방문할 테니 제 DNA 샘플채취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 나라 경찰 수사 현실이 너무 부러워 눈물을 쏟은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박사과정 구두심사를 위해 영국으로 갈 일이 있어 저는 영국으로 날아가 기꺼이 그들에게 입을 벌려 주었습니다.”

 

 

범죄심리학자로서 일상생활에서의 직업병은 없으신가요?

일반인들보다 과민한 정도는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언쟁이 붙은 사람들을 보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합니다. 내용을 파악한 후에 별 문제가 없으면 지나가게 되죠. 특히 학생들이 무리지어 있는 걸 보면 범죄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다른 때보다 유심히 살핍니다. 그렇다 해도 대화를 하며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그런 식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많이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기분전환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음...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범죄문제만 파묻혀 산다면 정말 제 성격도 우울해 질것이고요. 초기에는 집에서 우울모드로 지낸 적도 있습니다.(웃음) 집에서 아내나 아이들하고 대화 할 때도 가라앉은 기분이 전이가 되는 경우가 있었고요. 아무래도 가족들이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줬습니다. 시간만 되면 가족과 여행을 하며 신선한 자연과 호흡함으로써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밖에도 코미디영화를 자주 보고, 운동을 하면서 심리적인 상쾌함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삶에 활력을 주고 있고 일과 가족을 분리시켜내는 차단막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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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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