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열정의 외길 시나리오작가 지상학
40년 열정의 외길 시나리오작가 지상학
  • 김두호
  • 승인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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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마을에서 충무로 역사를 썼다”

【인터뷰365 김두호】지상학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62)은 한국영화 현대사에 큰 획을 찍은 시나리오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최근 영화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TV특집극으로 나눈 영상작품집 3권을 동시에 출간한 그를 ‘예술평론’지를 발간하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2011년 제31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로 선정했다. 지난 40여 년간 <로보트 태권V> <죽음보다 깊은 잠>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이장호의 외인구단> <자녀목>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학생부군신위> <칠수와 만수> <산부인과> 등 그의 창작 시나리오 가운데 60편이 영화관객들을 만났다. 시츄에이션 사극 <암행어사> 베스트셀러극장으로 발표된 <세화의 성> <개> <도깨비꿈> 등과 특집극 <우리들의 신부> <돈> <남태평양 3000마일> <사랑은 구름을 비로 내리고> 미니시리즈 <왕초> <숲은 잠들지 않는다> <검생이의 달> <지구인> <우리들의 넝쿨> 일일 연속극 <은하수를 아시나요> <꽃피는 둥지> <만남> <골목안 사람들> 등 TV드라마도 수십 편에 이른다.

충무로시대가 고전으로 넘어갔지만 지상학 작가는 여전히 이 시대의 영상작가로 가장 바쁘게 살고 있다. 지금 그는 JTBC 개국 아침연속극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의 집필을 시작했다. 매회 40분물의 분량으로 A4용지 20장씩을 쓰기 시작해 최소 120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한편 20년 역사의 한국영상작가교육원을 운영하면서 후진양성을 위해 강의를 하는 것도 그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시나리오와 방송극 창작분야의 거장이 된 지상학 작가의 지난 40여 년은 그처럼 틈을 남기지 않고 공백기 없이 외길을 달려온 집념과 열정의 삶이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부문에 <광화문>이 당선되면서 충무로에 입성했고 사극과 현대극에서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집필한 그의 시나리오를 유현목 정진우 김호선 이장호 이두용 김응천 전조명 이석기 박철수 신승수 선우완 김양득 박광수 송경식 감독 등이 영상으로 옮겼다.

자그마한 체구, 흐트러짐이 없는 눈빛과 인품은 꼬장꼬장한 선비의 기개를 느끼게 하지만 고금(古今)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스토리와 인물을 소재로 삼은 지상학의 작품세계는 끈끈한 정감과 해학이 번득이는 서민사회를 얼개로 한 작품이 많다. 영화가 감독 중심의 제작시스템으로 관객 앞에 선을 보이지만 그 영화의 창의성과 작의(作意)는 시나리오를 토양으로 하고 있다.

지상학 작가에게 이제 온 몸으로 써온 40여 년 영화인생의 뒷얘기를 물었다.


최근 들어 문화뉴스 면에 지 작가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로 선정했다는 소식도 있고, 새 종편 TV에서 120회 장편드라마를 시작한 것도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아직도 현역 작가의 한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런데 주변의 후배 작가나 제자들이 작품선집을 낼 때가 넘었다고 한 마디씩 해서 영화, TV, 애니메이션으로 나누어 3권의 작품집을 내놓았다. 상을 받은 것은 예술평론가들이 그 책을 주목 해준 덕분이다. 시나리오를 문학부문으로 인정해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또 JTBC 드라마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는 평소 구상해 둔 소재가 있어서 기꺼이 응했다. 작가는 늘 그 시대의 얘기를 꾸준히 풀어나가야 머리가 녹슬지 않는다.

어떤 드라마인가?
- 근래 들어 성장한 해외 입양아 출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귀국해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양부모의 사망으로 다시 고아가 된 입양아 출신 처녀가 모국에 돌아와 겪는 사랑과 배신의 굴곡 된 삶을 그려나가는 드라마다. 피혁제품 디자이너라는 입양아 출신 직업여성의 인생역정을 이 시대의 사회 풍경 속에 담아 본 것이다.

영화와 TV드라마를 집필할 때 작가가 고민하고 겪는 차이점은 어떤 것들인가?
- 드라마는 육체노동에 가깝다. 영상보다 대사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쓰는 데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1회 40분짜리 연속극을 매회 A4용지 20장씩 매워 나가야 해서 초주검 상태로 집필하고 있다.


지 작가의 데뷔 시절로 돌아가 보자.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발표는 1975년 1월1일자)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면 지금 37년을 넘어섰다. 그 후 각종 시나리오나 영화 소재 공모에 8회 이상 당선 및 입선하였는데 동아일보 당선작 <광화문>은 어떤 작품인가?
- 한말 개화기 풍운의 선각자였던 김옥균의 암살범 홍종우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었다. 친구에게 내가 쓴 시나리오를 한 부 베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그 때는 복사기도 없던 시절) 그 친구가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제출해 뜻밖에 당선작이 됐다.

그럼 작가를 지망한 것은 우연이었다는 것인지?
- 아니다. 이를테면 등단 시기가 우연하게 찾아왔지 시나리오를 쓰는 직업작가를 지망한 것은 내 의지였고 희망이었다. 나는 원래 서울대 미대에 진학해 응용미술 분야로 진로를 선택했지만 나의 형님(지상덕 / 작고)이 국도극장과 을지극장(파라마운트극장)의 간판미술사였고 형님 덕분에 극장 출입을 무상으로 하면서 오히려 영화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극장 간판을 그리면 밥은 먹고 살았지만 형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자괴감과 열등감을 느껴 내게 미술보다는 영화작가의 길을 권했다. 형님을 통해 각본을 구해 읽으면서 시나리오 구성이나 작법을 익혔고 군복무 시절부터 틈틈이 습작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 [남부군] 촬영 당시 배우 안성기와 함께

2010년 안동 촬영장에서의 망중한


군복무 시절에 시나리오 습작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
- 군에서 가장 업무량이 많고 재주가 있어야 하는 업무가 차트병이었다. 글씨도 잘 써야 하지만 문장, 미슬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했다. 그 일로 혹사를 당하다가 제대 말년쯤 조수가 들어와 시간적 여유가 좀 생겼다. 그 때 쓴 작품이 신춘문예 당선이 되었고 이후 충무로에서 2, 3년간 선배 작가의 보조 작가도 하고 대필 원고를 쓰기도 하면서 고생길에 접어들었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로보트 태권V>는 초기 작품인데 발표한 배경을 얘기해 달라.
-그때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심사위원이 유현목 영화감독과 연극연출가인 김정옥 중앙대교수였다. 그 때는 뽑아준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미덕이고 예의였다. 그래서 유감독님을 술자리에 모셨는데 감독님은 조선일보 기자였던 정영일 영화평론가와 석래명 김사겸 감독님 등을 대동하고 나오셨다. 그 만남이 있은 뒤에 유 감독님이 자신이 운영하는 유프로덕션으로 나를 불러 일본 만화 <마징가 제트>에 홀려 있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의 혼이 담긴 창작 만화 시나리오를 써보도록 요청했다.

<로보트 태권V>의 탄생비화가 그렇게 시작된 것을 처음 듣는다.
-만화가 출신 김청기 감독이 연출한 그 영화가 대한극장에서 대박이 났다. 시리즈로 제작이 되었고 덕분에 돈이 없어서 장가를 못가고 있던 나는 충분한 결혼비용을 벌었다.

얼마나 벌었는가?
-지금 화폐가치로 4편의 원고료로 1억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일부는 생활비로 받아쓰고 나머지는 장가를 가기 위해 유현목 감독님께 저금해두고 있었는데 결혼하기 직전 돈이 안나와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유감독님이 부랴부랴 돈을 구해 쇼핑백에 넣어주었는데 헌돈, 새 돈, 수표 등 한가득이었다. 사정을 알고 있던 감독님들이 사무실에 모여 있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준 기억이 난다.

<로보트 태권V>는 신씨네에 의해 실사영화 버전으로 다시 제작될 만큼 그 때의 인기 파장이 남아 있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거액을 들여 디지털로 복원해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식은땀이 났다. 76년 당시 화제가 됐던 그 작품이 지금 보니 어찌나 촌스럽던지. 그런데 40년 가깝도록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써왔지만 대표작으로 <로보트 태권V>를 말해야 사람들이 금세 알아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자식이 효자 노릇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산다.

작가의 기질도 유전인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위 어른 가운데 작가 분이 있었는지?
-작가는 아니고 54세에 타계한 아버님(지영만)이 그림에 소질이 많으셨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기도 했지만 거의 일생을 그림이나 그리며 한량처럼 사신 분이다. 그래서 자식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 또한 바로 위의 형과 지금은 동해시가 된 묵호로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가 아버지를 못 만나고 오징어 건조용으로 쓰이는 나무를 해다 파는 나뭇꾼 비슷한 생활을 1년 이상 하기도 했다.

지상학 작가의 소설 같은 얘기다.
-역에서 탄가루가 풀풀 날리는 철길을 따라 나무를 하러 다녔다. 산림 감시원이 완장을 차고 지키고 있어 가까운 길을 두고도 먼 길을 빙빙 돌아다니며 나무를 했다.

몇 살 때인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내 친구가 한 해 선배가 되어 있어서 어리둥절했는데 내가 그 무렵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기억이 그제서야 되살아났다. 그만치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 후의 얘기를 계속해 달라.
-6학년 초에 서울로 와서는 전농초등학교에 다녔고 공부를 제법 잘한 탓에 담임선생님의 총애를 받았다. 선생님은 교과서 뿐인 나에게 문제집을 사주셨고 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나를 데리고 가 중학교 입학 수속을 밟아 주셨다.(고병욱 선생님) 그 선생님 덕분에 한영중학교에 수석 입학을 하였고 가정교사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고2때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학교 재단 측에 반발하는 시위를 주도했다가 퇴학 당한 일도 있다. 그때도 고마운 선생님(김기명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동대문상고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인생이었고... 그런 고마운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형편없는 루저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성기 시절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감독들이 돌아가며 나의 시나리오를 기다리던 시절, 나의 집필 아지트는 충무로 아리랑여관이었고 그 다음은 갑사가 있는 계룡산 아래의 한옥마을이었다. 영화감독들은 내 곁에서 시나리오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의 아지트에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 아리랑여관은 아무나 장기 투숙을 못했는데 이른 바 콜걸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마침 그 여관 지배인의 딸이 배우 지망생이라 내게 특혜를 베푼 것이고 그래서 그녀들의 이면사를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죽음보다 깊은 잠> < 밤의 찬가>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를 연출한 김호선 감독의 작품은 다 아리랑 여관에서 나온 것이다.

갑사 부근의 한옥마을이라니?
-한때는 예술인들의 명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내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후에 많은 작가, 감독들이 상주하게 되었다. 나는 7년간 그곳 별장 같은 민가에 둥지를 틀고 창작 활동을 했다. 머리를 식히는 곳은 낚시터였고 아이디어를 얻는 곳도 찌를 바라보면서였다. 30대 중반 창작의욕이 충천할 때 그곳에서 쓴 시나리오와 TV극을 정진우 박철수 선우완 김양득 송경식 감독 등이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은 외롭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

<학생부군신위> <헬로 임꺽정> <산부인과> <들개> 등을 연출한 박철수 감독이나 <우담바라> <춤추는 달팽이> <바람난 도시>를 만든 김양득 감독의 연출 작품 대부분이 지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두용의 <우산속의 세 여자>, 정진우의 <자녀목>, 이석기 의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신승수의 <엑스트라> 등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그 가운데 애정이 남는 작품은?
-애정과 함께 부끄러움이 남는다. 상업적이든 작품으로든 그때 그때 최선을 다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다. 그런데 작가는 외롭다. (TV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영화의 경우 관객들의 엄청난 호평을 받아도 그 영화는 늘 감독이나 배우의 것이 되었으니까.

이해가 간다. 평론을 하는 사람들까지 작가의 창작의도를 마치 감독의 의지와 컨셉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족 얘기를 듣고 싶다.
-내 고향은 충주시 무학동이고 1949년 (음) 3월 13일 생이다. 5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내(최경희 / 60)는 서초고 국어교사로 얼마전 명퇴했다. 아들(지한솔 / 33)은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는데 느닷없이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여 나를 당황케 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해 나의 전철을 밟고 있는데 같은 계통의 선배로서 걱정도 되고 또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점에서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잠시 지상학 작가의 아내로 산 부인 최경희 여사가 <지상학 영화 시나리오선집> 뒤쪽에 ‘나의남편 지상학’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만난 청년 지상학에게는 미소년 같은 풋풋함이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길에 대한 뜨거운 열정, 포부 그리고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있었다. 그가 움켜진 펜 끝에서 -나의 남편 지상학은 항상 이를 앙다무고 검정색 모나미 볼펜을 힘을 주어 꼭 움켜쥐고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작품을 쓴다.- 그렇게도 많은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사실이 이제 돌아보면 새삼 놀랍고 존경스럽다. 한편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중에 행복하게 훌륭한 영화작품으로 TV드라마로 제길을 걸어 간 작품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장된 작품도 있기에, 그의 피와 땀과 눈물이 책장마다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바라보면 가슴 시린 아픔이 밀려온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얼마나 많은 낮과 잠들지 못한 밤이, 담배연기와 술잔이, 또 열띤 논쟁과 입씨름들이 그 속에 있었던가를 떠올리면 참 어느 작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분신들이다.......>

기자가 서울신문 기자 시절에 지 작가가 당한 가슴 아픈 사건을 접했다. 사랑하던 딸 한별 양이 13살 되던 해 실종된 사건이다. 집으로 전달된 협박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가 한별 양 찾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 후 일어난 일을 얘기할 수 있는가?
-더 이상 한별이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고 아내와 아들에게 그 고통의 시간들을 되새기게 하고 싶지 않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들을 써 온 지상학 작가는 지금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시나리오작가협회를 이끌면서 영상작가교육원과 대학교 강의, 영화와 관련된 각종 행사의 심사활동까지 바쁘게 살고 있다. 그 동안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상, 한국예술발전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소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학의 작품을 여러 편 연출한 선우완 감독은 지상학 영화 시나리오선집의 해설에서 그의 재산목록 1호는 품안에 지니고 다니는 메모수첩이라고 했다. 술을 마실 때도, 낚시를 가서 찌를 노려 볼 때도 그의 곁에는 항상 노트가 놓여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무언가를 적었다고 기억한다. 지 작가는 그것을 자신의 블랙박스로 불렀다”고.


영화와 방송예술에 기여한 업적과 활동 경륜으로 이제는 거장의 문을 넘어 선 지작가의 모습은 놀랍게도 옛날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산술적인 나이를 먹었다는 것 외에 그 열정과 패기, 작품 집필에 대한 집념과 고집은 그때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올해 최초로 주관한 <기성작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그가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최소 2편 이상의 작품 크레딧을 갖고 있는 프로 작가들만이 응모할 수 있는 진검승부에서 그는 젊은 피의 작가들에게 밀리지 않고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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