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즐기는 느린 피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도심에서 즐기는 느린 피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 김다인
  • 승인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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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년, 시골 소녀를 만나다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더워서 지치고 습해서 돌기 직전인 날씨, 산들바람 부는 곳을 찾았다. 청담동 로데오 거리 근처에 있는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에서 일본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봤다. 작은 극장 안은 관객 예닐곱명으로 한가하고 에어컨은 빵빵했다.

이 영화는 <린다린다린다>의 야마타 노부히로 감독과 국내에서도 여러 사람 마음을 움직였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와타나베 아야 작가의 콤비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우선 선택의 기준이 됐다. 원작은 일본 만화 <천연 꼬꼬댁>이라 한다.

영화의 무대는 작은 시골마을, 그곳에 작은 분교가 있다. 전교생은 겨우 여섯 명,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2년생까지가 선생 세 명의 지도 아래 옹기종기 공부를 하고 있다. 가장 학년이 높은 소요가 하급생들을 친동생처럼 보살피는 가운데 도쿄에 있던 남학생 오사와가 전학을 온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이 마을 출신인 어머니를 따라 돌아온 것이다.

동급생인 오사와와 소요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한 걸음씩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소요의 접근은 호들갑스럽지 않다. 하지만 내숭을 떠는 것도 아니다. 딱 자신의 마음만큼 자신이 아는 만큼 오사와에게 다가간다. 오사와가 입고 있는 코트를 사고 싶어하고 그 코트에 묻어있는 무스 냄새를 좋아하고 오사와가 살던 도쿄로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같은 것도 없다. 소요보다는 더 세상을 아는 오사와가 키스는 손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소요는 오사와가 입고 있는 코트를 가지는 대신 키스를 하자 한다. 산사 안에서 서로 머뭇거리며 미숙하게 해버린 첫 키스. 소요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손 잡는 것과 똑같다는 평만 내놓는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사계절을 함께 한다. 그리고 오사와는 도쿄로 돌아가는 대신 소요와 함께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으로 첫사랑을 이어간다.



영화에는 오사와의 어머니와 소요의 아버지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였음을, 그리고 오사와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면서 이들의 못다한 사랑이 관심으로 되살아나는 것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역시 호들갑스럽지 않고 마을 풍경에 묻힌다. 그저 살아가는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것같은 온기와 소박함이 있지만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우리나라 시골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시골은 서로 담이 없는 곳, 서로 왁자하게 한 핏줄처럼 얽혀 정을 나누는 곳으로 묘사되기 일쑤인 데 비해 이 영화에 나타나는 일본의 시골 사람들은 매우 단정하고 관계도 깍듯하다. 우리처럼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사이가 아닌 것이다. 일본과 우리는 정서가 참 다르구나를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잔잔하고 특별한 드라마가 없는 이 영화를 두 시간 동안 이끌어가는 것은 소요와 오사와, 그리고 분교 아이들 역을 맡은 어린 배우들, 그리고 일본 시골 풍경을 잘 잡아낸 촬영이다.

롱샷으로 보여지는 마을은 이 영화가 부산한 인간사와는 거리가 있으며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임을 잊지 않게 한다. 그 속에서 지루해지는 리듬을 잡아채는 것은 소요 역을 맡은 배우 카호 그리고 일본에서 인기 높다는 오사와 역의 오카라 마사키다. 특히 카호의 매력은 시골 여중생 소요를 그려내는 데 성공적인 캐릭터 캐스팅이다. 알맞게 영리하고 알맞게 시골스러운 십대 소녀 소요가 카호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이 영화는 다수의 관람객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두 시간 동안 지루해 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액션과 총격이 난무하는 한여름 영화가 한 귀퉁이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는 덥다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보다는 부는 바람을 기다려 땀을 식히는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 타이들이 올라갈 때 이런 가사의 주제가가 나온다. “말은 삼각형, 마음은 사각형, 동그란 눈물을 닦아주네...” 쉬운 멜로디에 실린 색다른 가사가 영화 상영 동안 무장해제했던 마음에 마지막 부채질을 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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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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