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 선생으로 살다 간 어느 서울시장의 이야기
시골학교 선생으로 살다 간 어느 서울시장의 이야기
  • 김두호
  • 승인 2008.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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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향기로운 만년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요즘 많은 사람들은 누가 장관이 되고 누가 청와대 비서로 일하는 지 기대감이나 관심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장 차관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줄만 잘 서면 아무나 장관을 할 수 있다는 인식 탓인지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선망이나 존경심을 받는 사람도 드물다.

인격과 실력을 겸비해 만인의 사표가 될 만한 인물, 겸허하고 청빈하고 감동적인 인물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이제 권력이 있다고 함부로 처신하면 시끄럽게 비판을 받거나 퇴장시키는 민주주의 여론 시대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이 된 김현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66년 39살에 서울특별시장을 하면서 ‘불도저 시장’소리를 들었다. 서울의 현대화 또는 개발이라는 명제 아래 판자촌을 밀어내 아파트를 짓고, 마포대교 등 새 다리를 놓고, 남산 터널을 뚫고, 전차가 다니던 어지러운 길을 차도로 정비하고, 보도육교를 만드는 등 요란하게 도시를 바꾼 인물이다. 서울시장인 줄 모르고 “아저씨 놀다가요”라며 소매를 붙잡던 종삼(종로3가 윤락가)도 그가 걷어냈다.

청계천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해 슈퍼스타가 된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그 당시의 개발논리로는 오물과 쓰레기로 버려진 하천을 복개해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만드는 발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시대에 따라 관점이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 이제는 그런 ‘불도저’식 개발이 통하지 않고 환경적인 요건이 무시된 도시계획은 배척을 받는다.

그 당시에도 마구잡이 개발에 대한 반대 시각이 있었고 또 개발바람의 부작용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 터져 김 시장은 1970년 책임 퇴진했다. 이듬해 내무부장관으로 발탁되어 다시 화려한 관직생활을 시작했지만 3공화국이 저물면서 그도 모습을 감추었다. 잘나가던 주변의 고위직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국회의원을 하고 기업체도 경영하며 부귀영화를 이어갔지만 그는 장관을 끝으로 서울에서 사라졌다. 이민을 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고향인 진주 부근의 시골로 돌아간 뒤 중학교 교장의 모습으로 근황이 알려졌다. 1981년의 일이다.


“세상사는 재미를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생각하면 신문배달하며 공부하던 소년시절의 꿈이 이 자리였거든요.”


경남 양산군 장안면에 있는 장안중학교 교장이 된 그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소박한 2평 남짓한 시골학교 교장실에서 선생님의 꿈을 이룬 것을 아주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가 일장춘몽인데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2세 교육만큼 더 보람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는 내가 잘나서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나는 여기서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먼 친척의 주선으로 선생님이 된 그는 격식을 버리고 학생들과 체조를 함께하고 교사들이 벽을 느낀다며 교장실 명패 같은 것도 만들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수당 합친 월급 46만원을 받는 부지런한 선생님으로 살았다. 1997년 겨울에 세상을 떠날 때도 그의 사망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필자는 그가 장관시절 가족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있다.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옥인동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렇게 쓸쓸하고 허망할 수가 없었어요. 순식간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지요. 그러다가 다시 내무부장관이 되자 골목길까지 화분이 들어오는 걸 보고 세상사가 이런 건가하고 오히려 착잡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갈수록 낮은 곳을 바라보고 겸손해져야 떠나도 마음이 편하고 존경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 정말 존경을 받을 만한 처신을 하고 반듯한 생애를 살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필자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시장에 서울시장, 장관까지 한 사람이 시골 중학교 교장을 선택한 만년의 용기만은 향기로웠다고 대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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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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