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의 이순재 알뜰 아내의 추억
'엄마가 뿔났다'의 이순재 알뜰 아내의 추억
  • 김두호
  • 승인 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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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돌반지 팔아 만두가게 시작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최고참 탤런트 이순재의 황혼은 황혼이 아니다. 인생은 서산으로 넘어서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정력과 인기는 중천에 떠 있는 해라고 할 만큼 젊은 후배들과 겨루고 있다. 최근 TV 사극드라마 <이산>에서 영조로 출연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천하를 호령했고 지금 한창 떠 있는 김수현의 인기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엄마 김혜자의 시아버지로 드라마의 앞머리에서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독백을 하면서 전양자와 로맨스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한창 시청자들의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1935년생 73세 노 연기자의 체력과 연기 저력이 놀랍기만 하다.


32년 전의 탤런트 이순재는 어떤 모습으로 화제에 올랐을까? 그때야말로 떠오른 싱그러운 별이었다. 탤런트로보다 영화배우로 한창 분주하게 활동할 때인 1976년의 이순재 인터뷰 기사의 머리 제목은 ‘만두가게 6년에 빌딩세운 이순재 부인’이었다. 첫 아들 돌반지를 밑천으로 부인 최정희 씨(당시 36세)가 6년 만에 2백10평짜리 빌딩을 사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성공한 이순재에게는 알뜰하고 억척으로 산 부인의 땀과 눈물의 내조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길게 소개됐다.


이순재 부부는 새로 장만한 한강변의 그 빌딩에 ‘거상’이라는 고급 중국음식점을 개업해 영화 방송계 사람들을 불러 축하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이순재는 말했다.


“모두가 제 아내 덕입니다. 출연료만 받아 사는 건 뻔하지 않습니까? 아내가 구두쇠 노릇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려고 노력한 보람입니다. 6년 전의 작은 코끼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큰 코끼리는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작은 코끼리란 그로부터 6년 전에 차린 식탁 2개짜리 작은 만두가게였다. 동네 아파트에 직접 부인이 배달을 하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부인 최정희 씨는 이대 체육과를 나온 무용가였다. 졸업 뒤 민속무용단 소속으로 외국 나가기가 어렵던 시절에 세계 일주를 두 차례나 한 그녀가 자신의 일을 버리고 결혼과 함께 바닥장사부터 시작한 것이다. 부인은 말했다.


“배우란 직업이 일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됩니다. 늘 불안하게 살림을 해야 하고 남편은 돈 때문에 자신의 뜻을 굽히며 활동을 해야하고요. 어느날 배우들의 모임에서 모두들 화려한데 옷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고 사는 우리가 너무 초라하게 생각되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결심한 거죠.”




작은 코끼리를 큰 코끼리로 만든 부인의 사업 동기였고 성공담이었다. 사업 밑천은 아들 돌잔치에서 나온 42개의 금반지를 처분한 20만원이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이순재의 아내라는 것을 숨겼다. 만두를 좋아하는 남편에게서 사업 힌트를 얻어 시작해 처음 번 돈은 자가용 없는 연예인들이 많던 시절에 남편의 승용차를 사주기도 했다.


이순재는 부인 덕분에 휘파람을 불며 연기생활을 해왔다. 크게 화제를 남긴 TV드라마 <풍운>에서 흥선대원군, <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에서 윤보선, <허준>에서 유의태 역 등 인기 절정을 누린 배역이 헬 수 없이 많다. 1992년에는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최민수) 아버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그길로 서울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해 “제가 대발이 아버집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당선이 되기도 했다.

딱 한번 의원을 하고 미련 없이 정치인 생활을 청산하고 연기자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세종대 영화영상학과 석좌교수로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요즘 나도는 유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나이 60에 염라대왕이 부르면 부재중이라고 피하고, 70세에 부르면 아직은 이르다고 말하고, 80세에 부르면 그렇게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답하고, 90세에 부르면 때를 봐서 이쪽에서 슬슬 가겠다고 대답한다’는데 아마도 탤런트 이순재는 나이 때문에 쉽게 연기무대를 내려오거나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


두만강에 면한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이순재는 서울고 시절부터 연극에 눈을 떴지만 당시 연극영화과가 희귀했던 탓에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황혼에도 건재한 그의 깊이있고 안정된 연기와 삶은 철학적 지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건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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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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