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풍 스타일’ 밴드 Queen의 뮤직 스토리②
‘중세풍 스타일’ 밴드 Queen의 뮤직 스토리②
  • 이근형
  • 승인 200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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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들의 모임, 퀸의 진짜 비극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1974년 퀸은 ‘Queen II’에 이어서 3집 ‘Sheer Heart Attack’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 앨범은 퀸이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들 중 하드 록과 헤비메탈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지만 퀸의 자존심인 중세풍 스타일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사실 이 앨범은 하드 록이라는 장르의 강렬함과 익사이팅함에 초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중세풍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느낌을 준다. 그런 것들은 이 앨범의 히트 트랙인 ‘Now I'm Here, Stone Cold Crazy’ 등에서도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은 후반부 트랙에서 배킹 보컬을 전면 배치해서 고풍적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힘썼으며 그렇기에 중세풍 음악의 연장선에 ‘Sheer Heart Attack’이 삽입되어도 무난하다는 게 대세다.



그리고 대망의 1975년, 퀸 최대의 명작 4집 ‘A Night At The Opera’을 통해 그들이 약 3년 동안 몰두하고 연구했던 중세풍의 음악이 마침내 꽃을 피우게 됐다. 퀸 멤버들은 한밤중의 오페라 공연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이리저리 오페라 풍(다시 얘기해서 중세풍 스타일의)의 트랙들을 퍼즐 맞추듯 차곡차곡 앨범에 삽입시켰고, 결정적으로 이 앨범의 얼굴이자 불후의 명곡 ‘Bohemian Rhapsody’가 그 중심에 서서 정상의 깃발을 꽂았다. 퀸의 소속사는 물론 주변 관계자들, 그리고 언론들까지 그 누구도 ‘Bohemian Rhapsody’라는 장편 트랙이 히트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퀸이 ‘Bohemian Rhapsody’에서 이뤄낸 중세 유럽 스타일의 한편의 희곡, 그리고 철저히 계산된 웅장한 세션 등은 대중들의 가슴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퀸은 ‘Bohemian Rhapsody’로 대변되는 중세풍 스타일의 곡이 드디어 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 정상 중의 정상을 차지하고, 또 그 안에서 수많은 핫 이슈를 터트리자 비로소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퀸을 바라보는 시각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록음악답지 않은 섬세한 배킹 보컬의 선율과 중세풍 스타일의 칙칙한 맛은 평론가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고, 팬들 역시 그들의 음악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Bohemian Rhapsody’를 통해 퀸이 3년 동안의 중세풍 스타일 연구 끝에 찾아낸 결과물, 바로 오페라처럼 웅장한 면모를 만들어내는 아레나(Arena) 형 배킹 보컬 삽입노래가 퀸의 명성을 드높이는 것임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다.





다시 중세풍 스타일로 돌아가고 싶었던 '비극의 퀸'


퀸은 4집 ‘A Night At The Opera’를 시작으로 수많은 히트 앨범을 쏟아내며 일약 세계적 밴드로 급부상했다. 퀸이 1980년대까지 달려왔던 최정상의 스토리는 이야기해봤자 입만 아프다. 이때까지 내놓은 퀸의 히트곡들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그제야 퀸은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어필하기 위해 밴드의 패션을 세련된 스타일로 연출하고, 뮤직비디오를 이용한 시각적 효과 등 쾌거를 이룩하며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간 머리를 치렁치렁 길렀던 프레디 머큐리가 이때부터 짧은 스포츠형 머리로 바꾸고 근육으로 무장한 신체를 앞세워 '퀸의 세련됨'을 일부 증명하기도 했다.



퀸은 사실 내부의 트러블이 표면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팀워크가 좋았다. 하지만 퀸의 프론트맨 프레디 머큐리에게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다. 프레디 머큐리는 기자들에게 종종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혀왔으며, 동성애 파티에 많이 참석한다는 가십도 끊이질 않았다. 동거를 목적으로 하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결국 머큐리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 즉 에이즈에 걸렸고 이후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그때부터 퀸 내부에서는 잦은 말싸움이 일어나는 등 트러블이 생겼다.



퀸은 1991년 앨범 ‘Innuendo’를 녹음하는 내내 점점 병색이 악화되고 있는 프레디 머큐리를 억지로 스튜디오에 모셔 음악 작업을 하는 등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앨범의 히트곡인 ‘The Show Must Go On’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당시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증세가 악화돼 피부가 문드러지고 뼈만 앙상히 남게 됐다. 프레디 머큐리는 코디네이터들의 힘을 빌어 덕지덕지 화장한 상태로 촬영에 나서야 했다. 퀸 멤버들은 프레디 머큐리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Innuendo’앨범 발매 후 각자의 길로 돌아서자는 암묵적인 약속을 했고, 그래도 의리를 지켜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할 때까지 퀸의 이름으로 남을 것을 맹세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여기까지가 모든 음악 팬들이 다 아는 퀸의 마지막 비극이다. 하지만 퀸의 가장 큰 비극은 퀸이 결국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음악적 스타일을 다 못 보여주고 공중 분해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1991년 앨범 ‘Innuendo’는 주된 장르가 프로그레시브 록이다. 게다가 앨범 표지의 광대 하며 전제적인 트랙 스타일이 마치 1970년대 초반 퀸이 구현한 바 있는 중세풍 스타일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인터뷰에서 종종 "퀸의 초창기 시절 중세풍 음악을 한 번 더 만들어보고 싶다"고 발언했으며, 그 뜻은 브라이언 메이 등 나머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마 ‘Innuendo’앨범 작업에 착수할 때 그 뜻이 최대한 반영된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퀸은 ‘Innuendo’를 발매했지만 같은 해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면서 다시는 그의 천재적 보컬을 기반으로 하는 중세풍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Innuendo’를 통해 다시 한 번 표현하고자 했던 중세풍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채 좌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퀸의 8할이나 다름없는 프레디 머큐리가 병마와 싸우느라 앨범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까지 멋지게 꽃피우고 싶었던 '중세풍 스타일의 음악' 은 지지부진해졌다. 그것이 바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임, 퀸의 진짜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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