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한국판 테레사’ 였다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한국판 테레사’ 였다
  • 김두호
  • 승인 200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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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이들과 평생을 함께한 삶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묵은 취재 노트를 뒤지다가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를 만났다. 지금의 근황이 궁금해 검색창을 열었다. 지난해 6월 1일 호암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기록이 떠있다. 필자가 그분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1978년 6월 10일이었으므로 꼭 30년 전이다. 그 때 47세였는데 지금은 77세가 되었다. 아직도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구근교인 칠곡의 한센인(나환자)마을에서 살며 봉사활동을 하신다니 그저 숙연해진다. 그분의 고향은 아름다운 숲과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찰스부르크였다.



누군가가 한마디로 그분을 소개할 수 있는 말을 묻는다면 필자는 ‘한국판 테레사 수녀’라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다. 한 평생 인도의 불행한 사람들을 돌본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노벨평화상도 받았고 사후에도 인류의 성자로 추앙을 받는 분이지만 엠마 여사는 한국에서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엠마 여사는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설립한 칠곡 가톨릭피부과의원에서 한센인을 치료하고 틈나는 대로 그들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고통과 가난을 함께 하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 가톨릭피부과의원도 엠마 여사가 1965년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의 지원을 받아내 설립한 한센전문 치료시설이다.



필자가 엠마 여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도 엠마 여사는 가톨릭피부과의원 원장으로 80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늦은 저녁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고 병원 숙소에서 환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김치보다 콩자반이 더 영양이 많아요. 많이많이 드세요.” 엠마 여사는 능숙한 우리말로 환자들의 식사뒷바라지를 했다. 그녀는 한센병이 치료가 가능한 피부병인데 무서운 병으로 자포자기하거나 경계하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부모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엠마 여사를 환자들은 숫제 이름과 비슷하다고 ‘엄마’라고 불렀다.



엠마 여사는 29살 때인 1961년 오스트리아에서 해외 순회봉사 길에 한국에 왔다. 비엔나 간호대학을 다닌 엠마 여사는 그 학교에 교수로 있다가 귀국한 한국인 신부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을 찾았다. 직업도 백의의 천사였고, 마음씨도 천사였던 엠마 여사는 2년을 예정했다가 결국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대로 그들 곁을 지켰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해온 지 47년, 엠마 여사는 어느 덧 흰머리의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엠마 여사는 한센인을 도우는 ‘릴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봉사 정신을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 온정의 물결이 불행한 환자들에게 미치도록 브리지 역할을 했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눈을 감으면 장례식을 치러주고 무덤을 찾아 성묘하고 벌초까지 했다. 필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고향과 가족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고향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찰스부르크에 인접한 엡스랍니다. 유명한 건축가인 아버지와 8남매 중 내가 둘째지요.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내가 없어도 괜찮아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기도하며 살아야지요.”



아마도 지금은 부모도 계시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아왔다. 젊은 시절 엠마 여사는 늘씬한 키에 부드러운 인상의 서양 미녀였다. 고국과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잊어버리고 한국에서 봉사의 일생을 살고 있는 ‘한국판 테레사 수녀’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아직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온전치 못한 환우들과 은양원이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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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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