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그들의 거침없는 질주 과연 어디까지
에픽하이, 그들의 거침없는 질주 과연 어디까지
  • 이근형
  • 승인 200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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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출신 만능 음악가 ‘타블로’ 혹은 이선웅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2005년 초, 3인조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본격적으로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에픽하이는 이미 2003년에 첫 앨범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마니아층 외에 이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베일에 싸여있던 그들이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은 이유를 들자면, 2004년 말 이현도를 중심으로 결성한 프로젝트성 단체 <힙합구조대>에 에픽하이가 합류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을 들 수 있겠다. 이와 함께 2집 앨범 ‘High Society’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두 가지 작용이 잘 맞물렸던 것이다.



이 외에 또 한 가지,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에픽하이의 프론트맨이자 팀의 전체적인 도선을 조종하는 인물, 타블로의 프로필이었다. 그의 본명은 이선웅. 주지하다시피 캐나다 국적을 가진 미국 유학파 출신이다. 유학파 출신의 음악가들이라면 타블로 이전에도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일 테지만, ‘세계적 명문대학교 출신’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스탠포드대 창작문예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수료를 마쳤다. 이 사실은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타블로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죽했으면 한 TV 오락 프로그램의 MC였던 이혁재가 타블로에게 "스탠포드 대학 졸업장을 가져와보라"며 농담 삼아 반문 했을까.



소신이 단단한 아웃사이더 타블로


그렇다. 타블로는 ‘아티스트가 되는 꿈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 명문대에 들어갔다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는 일단 엘리트 출신의 비범한 음악가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타블로가 스탠포드대 출신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학력 지상주의를 부추길 우려를 낳지만) 어쨌거나 학력 덕분에 일단 그가 지니고 있는 내공을 표면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블로의 천재성은 여러 곳에서 증명되었다. 그는 에픽하이에서 거의 모든 곡의 작곡과 작사를 번갈아 맡고 있었으며 대중들의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먼저 아티스트가 지녀야 할 1차적 덕목 ‘음악성’ 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타블로는 또한 정치적 방향과 신념이 비교적 뚜렷하다. 그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웃사이더' 라고 일갈해왔다. 그것은 곧 주류에 연연하지 않고 비주류의 자리 혹은 음지에서 주류의 독주를 비판하는 방향에 자신이 서있겠다는 뜻이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도 약간 좌로 기우는 조짐을 보인다. 그는 몇 해 전 당시 우리나라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는 갱스터 랩 스타일의 비밀 앨범을 만들 것이라고 말해왔으며, 무언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앞으로 전진하는 의미의 정치적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많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자신의 성향이 뚜렷하고, 소신이 단단한 아티스트는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가요계가 대중들의 입맛만 고려해 달콤한 주류의 꿈에 젖어있는 이때에 말이다.





여기에 더해 타블로는 힙합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라디오DJ’ ‘오락프로그램MC’ ‘작가’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 이렇게 다양하고도 성격이 제각각인 일들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가 지닌 천재성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의 쓰임새가 활발한 작용을 한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런 각각의 일들이 어느 하나 서투른 것도 없다. 이제는 그가 넓혀갈 분야가 또 어느 곳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다소 왜소한 체격에 유약한 외모의 그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멀티플레이어적 기질을 지녔다는 것은 사자성어 '외유내강' 을 몸소 보여주는 것과 다름 아니다. 타블로, 혹은 이선웅으로 부르는 그에게 있어 아직까지 한계점은 없어 보인다.



또다시 히트 홈런 준비하는 에픽하이


에픽하이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점점 발전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처음에는 힙합으로만 나가는 것 같더니, 갈수록 ‘블루스’ ‘재즈’ ‘일렉트로니카’ ‘발라드’ ‘팝’ 등 각종 장르를 혼합하면서 에픽하이 고유의 음악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미 에픽하이는 최근 가요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약 3년 전부터 구현한 적이 있으며(에픽하이 3집 Fly 등), 그런 안목은 에픽하이를 타 그룹과 비교해서 차이점을 확실하게 긋는 작용을 했다. 에픽하이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본인들스스로 다듬고 닦아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유명 작곡, 작사가 및 프로듀서의 힘으로 히트하는 가요계의 전반적 트렌드에 정확히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에픽하이는 1년 만의 신보이자 5집 ‘Pieces, Part One’을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이 앨범이 나오기 몇 주 전에 타이틀곡의 음원이 P2P 프로그램 등 각종 음지에서 유출되는 사건 때문에 홍역을 앓기도 했지만 발매 직후부터 정상 궤도에 오fms 이 앨범의 히트로 다시 한 번 그들의 놀라운 실력을 입증했다. 에픽하이는 한번 앨범 작업에 들어가면 그것에만 몰두하기로 유명한데, 바로 그런 집중력이 이번 앨범을 통해 발휘된 데다 전체적으로 타블로의 진두지휘 아래 각 곡마다 그의 천재성이 또 한 번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타이틀곡 One은 전 러브홀릭 보컬 지선이 피처링을 맡아 전체적인 멜로디의 안정성을 꾀했으며, 많은 이들은 이 곡에서 타블로의 독창적 음악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박수를 보냈다.



에픽하이는 2005년 3집 Swan Song을 기점으로, 발표하는 앨범마다 후속곡까지 히트를 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2007년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은 그해 가요계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아쉽게도 이 앨범은 연초에 나온 것이라 그해 가요계를 전체적으로 둘러봤을 때 후반기에 대대적으로 히트한 원더걸스나 빅뱅에 비해 어느 정도 덮어진 감이 있지만, 팬들과 평단의 반응은 굉장히 고무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이렇게 2007년을 자신들 앞으로 가져온 에픽하이는 이번 5집을 통해 또다시 히트 홈런을 칠 태세다.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과 평단의 긍정적 평가가 직구로 제대로 들어오면 풀스윙으로 때려 넘길 모양새다. 아니, 이미 직구가 들어올 낌새가 있다.





한계를 모르는 멀티플레이어 타블로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에 5집을 발표한 에픽하이를 비판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우선 에픽하이가 점점 대중들의 입맛만 고려하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팝 성향의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에픽하이는 2004년 2집 ‘High Society’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음악에 제대로 반영하여 비교적 대중성을 배제한 모습을 보였다. 2집 수록곡 <평화의 날>은 일단 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투박하고 정형화된 러브송이 아닌 “세상을 좀 더 부드럽게 살아보자”는 건전한 내용의 메시지 내포 음악이었다. 그 외에도 심의규정에 걸린 위험한 내용의 노래나 마니아층을 겨냥한 힙합 뮤직 등을 만들며 웰메이드 음악을 만드는 그룹이라는 자존심을 지켜왔다.



이번 5집에서 에픽하이가 선보이는 음악에는 여전히 날선 칼이 들어있다. 앨범에서는 사회적 약자, 사랑에 지친 자들, 패배자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타블로는 자칭 아웃사이더라고 말해왔으며 그의 시선은 늘 비주류의 편에서 지배하려는 집단을 향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정체성이 이번 5집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렇게 일회성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판을 치고 아직도 정형화된 러브송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무언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앨범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모험적인 일인가.



하지만 5집에서 에픽하이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결여되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확실히 그들이 대중들 쪽으로 시선을 거의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팬들은 에픽하이만의 음악적 특색이 앨범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야만 입맛이 당기는 모양이다. 일단 5집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지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에픽하이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상당하다. 이번 5집이 너무 추상적 이미지와 미학만을 쫓는다는 평가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것은 앞으로 에픽하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다. 또한 음악적 지향점 뿐 아니라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상이나 타이틀이 없기에)평단의 적극적 피드백이 있어야 하겠다. 그들 앞에 놓인 의문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야 타블로와 에픽하이는 비로소 완전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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