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예인들, 사랑과 행복 그리고 눈물의 비화①
가족 연예인들, 사랑과 행복 그리고 눈물의 비화①
  • 김두호
  • 승인 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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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이름으로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대중문화 쪽에는 부모의 예(藝)와 기(技)를 물려받아 2대와 3대를 이어온 연예인 대물림 가족이 많다. 음악인 가정은 뒤로 미루고 우선 탤런트나 영화배우 가계(家系)를 들여다보자.



지난 3월 현직 판사와 백년가약을 맺은 탤런트 송일국. 그의 어머니가 얼마 전 국회의원에 당선된 탤런트 김을동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머니는 평소 송일국이 만들어 준 효행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연기자의 바통을 이어받은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며 산다. 김을동의 아버지가 ‘장군의 아들’ 김두한, 할아버지가 ‘청산리전투’의 전설적 독립투사 백야 김좌진 장군임을 생각하면 송일국의 외가 혈통은 보통 평범한 게 아니다.



송일국의 외조부가 되는 김두한은 일제 강점기 주먹으로 서울 종로통을 평정했고,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권 때에도 야당 국회의원이 되어 국무총리 면상에 파고다공원의 인분을 뿌릴 만큼 배포가 큰 인물이었다. 김두한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는 영화와 TV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송일국의 여동생 송송이도 연기자로 입문해 김을동은 지금 잘 풀리는 가족 탤런트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해방이후를 기점으로 2007년까지 연예인 2대, 3대 집안과 연예인 부부까지 모두 열거하면 80여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 순서나 뿌리는 역시 현대 대중문화의 모태인 영화배우 쪽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들 중 TV드라마 <모래시계>의 박태수역으로 가장 선명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최민수는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애정 멜로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한 최무룡과 1952년 결혼한 첫 부인 강효실 사이의 1남 3녀 중 막내다. 어머니 강효실도 배우이고 외조모도 ‘눈물의 배우’로 불린 전옥이므로 모계 쪽으로는 3대째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1957년 ‘항구의 일야’라는 영화에서 최무룡은 장모 전옥과 연인관계로 출연하여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필자는 타계한 최무룡과 ‘기자와 배우’ 관계지만 또한 선후배 사이처럼 서로 편안하게 지낸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무엇에 얽매이거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자유인이었다. 남의 말을 잘 믿고 정에 약한 성격이 오히려 낭비벽으로 이어져 큰 재산을 모아도 쉽게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서거나 빚에 묻히기도 했다. 자식까지 외면하고 살 정도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벽은 그의 운명 같았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그의 사랑도 ‘인연이 영원할 수 없다’는 순리 같은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그의 특징을 또 꼽아보자면 외롭고 힘들게 살 때도 영화배우의 자존심과 멋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민수는 한 살 때 그런 특질의 아버지와 헤어져 줄곧 어머니 품에서 어렵고 힘들게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아들에게는 아버지와 다른 터프하고 반항적인 분위기가 하나 더 있었다.





1986년 11월 최민수가 영화 ‘신의 아들’로 충무로에 입문하면서 영화감독 지영호와 함께 필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대뜸 아버지와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를 갖자고 제의했다. 지금은 말끔하고 조금은 건방 끼가 있어 보이지만 그때 덥수룩한 머리의 학생 티가 나던 최민수의 눈동자는 순진한 물기가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싫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지도 않겠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혈연을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살 순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그의 대답은 망설이지 않고 이어졌다.


“배우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새삼 부자로서의 인연관계를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야기에 금방 헝클어진 그의 더벅머리가 곤두서는 것 같았다. 최민수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인상적인 모습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독신으로 돌아간 아버지 곁에서 딱 두 달간 산 적이 있다. 그때 어느 깊은 밤에 잠자리에서 훔쳐 본 아버지는 햄릿 같은 슬픈 표정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혼자 술잔을 비우는 아버지의 얼굴에 비친 우수는 철이 들면서 연민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제 와서 부자의 인연을 회복한다는 것은 살아온 무정한 시간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솔직한 태도였다.



그가 아버지와 화해를 한 것은 아버지가 고향인 파주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자신도 아버지 못지않은 인기 있는 연기자로 인정을 받고부터였다. 주위의 시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과 어려운 환경에서 저만치 벗어난 아들의 성장과 여유가 아버지를 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가 타계했을 때 외아들로서 끝까지 자신의 예의와 도리를 지켰다. 그런데 장례식 때 카메라에 잡힌 상주의 선글라스 모습은 어떤 심경을 보여준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가족 연예인의 원조 격인 고 노재신. 함경도에서 태어나 1934년 <홍길동전>으로 데뷔해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으로 은막의 별이 된 분이다. 바로 신성일(강신성일)의 장모이면서 엄앵란의 친정 엄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강석현도 한 때 배우로 활동했다. 필자가 간혹 한강변에 있는 동부이촌동 신성일 댁을 방문하면 함께 사시는 노재신 어른이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곤 했다.



노재신의 귀여운 딸 엄앵란도 이제는 할머니가 됐지만 1955년 19살 때 <단종애사>로 데뷔, 1964년 신성일과 결혼해 불세출의 톱스타 부부로 살며 1967년 강석현을 낳았다. 3대 배우가 된 강석현은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영화 <내일은 뭐 할 거니>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비 오는 날 수채화>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지금은 배우활동을 접고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강석현도 아버지 못지않게 잘 생겼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할 만큼 마음씨도 착하다. 아버지가 대구에서 고생할 때 부근에 방을 얻어두고 뒷바라지할 정도로 효자로 소문나 있다. 한데 연기자로는 아버지와 다르게 승부욕이 없어 보인다. 아들에 대해 엄마 엄앵란은 속상해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이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와 비교되며 성장해온 것이 석현에게 일찍부터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준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엄마의 생각이 어느 정도는 옳을 것도 같다.





그렇지 않은 2대도 있다. 아역시절부터 중년이 지나도록 씩씩하게 드라마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덕화가 그 중의 한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5년 이강천 감독이 연출한 <피아골>로 데뷔해 김승호(영화배우 김희라의 아버지)와 함께 개성 있는 연기자로 큰 업적은 남긴 이예춘이다. 우리 영화사에 남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론가들이 꼽아온 <피아골>에서 이예춘은 김진규(영화배우 김보애의 첫 남편으로 김진, 김진아의 아버지) 노경희와 함께 은막에 처음으로 얼굴을 선보였다.



개성파 연기자 이예춘은 <다정도 병이런가> <두 남매> <자장가> <나그네 설움> <원효대사> <석화촌> <단종애사> 등 전쟁물이나 토속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성춘향>에서는 탐욕의 화신 변사또의 완벽한 이미지를 재현해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아들 이덕화는 뒤에 장미희와 공연한 <춘향전>에서 이도령으로 출연했다. 아들이 아버지 생전에 “이도령역을 맡았어요”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자 아버지는 “야 임마, 춘향전에서는 이도령보다 변사또 역할이 더 비중이 큰 거야”하고 껄껄 웃었다고 한다.





이예춘 이덕화 부자(父子) 배우의 일화 중 이예춘이 만년에 건강을 잃고 고생할 때 일어난 일들은 지금도 충무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병이 깊어지면서 공기 좋은 산천을 찾아 낚시로 시간을 보내던 이예춘 곁에는 언제나 아들이 있었다. 강원도 산골 파라호 갈대숲에 천막을 쳐놓고 살기도 했을 때 이덕화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새벽을 맞으면 자욱한 물안개를 밀어내며 보트 한 척이 나타났다. 다른 쪽에서 낚시를 하다가 직접 끓인 커피를 아들에게 주기 위해 찾아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눈에는 신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덕화는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효성으로 그 무렵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다. 최근에는 이덕화의 예쁜 딸 이지현 양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3대 연기자로 탄생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서 이덕화의 처갓집으로 이동해 보자. 이덕화의 부인 김보옥은 영화배우 김보애의 동생이다. 김보애는 이덕화의 처형이 되므로 김진아까지 넝쿨처럼 배우 가계가 이어진다. 1980년대 가장 발랄하고 끼가 넘치는 청춘스타로 김진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김진아는 김진규와 김보애 사이의 세 딸 중 둘째 딸이다. 소문을 피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서로 애틋하게 정을 주고받은 부녀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할 때가 온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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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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