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겨울여자〉의 김추련, 겨울남자의 미스터리
내가 만난 〈겨울여자〉의 김추련, 겨울남자의 미스터리
  • 김두호
  • 승인 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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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김두호】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만큼 충격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사건은 없다.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세상을 등진 사람이 유명하지도 않고 자신과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모질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숨을 끊어버린 비정한 결말에 가슴 아픈 연민을 금할 수가 없다.
영화 <겨울여자>의 주연 남자배우로 그 시대 청춘스타의 심벌로 사랑을 받았던 김추련이 시골도시의 6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살며 가난과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비슷한 처지로 얼마 전에 떠난 <겨울나그네>의 영화감독 곽지균까지 다시 떠올려 낙엽지는 이 가을을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다. 1977년에 김호선 연출에 장미희와 함께 출연한 <겨울여자>라면 지역별로 단일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던 시대에 서울에서 60여만명을 동원해 20여년 가까이 영화 흥행 사상 1위 기록을 고수한 작품이다.
생전의 영화배우 김추련을 잘 알고 있고 친밀감 있게 교분을 나눈 한사람으로 그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이해할 수가 없는 수수께끼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김추련을 유명하게 한 <겨울여자>의 한 장면. 장미희와 공연했다.


“잘 지내시지요? 내 꼭 연락드릴 테니 식사나 해요.”
충무로를 떠난 뒤 어쩌다 만나면 그는 아주 반갑게 그런 인사를 해왔다. 그러나 연기활동과 관련해서는 근황을 전해주었지만 별도로 특별히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 일이 없었다. 주로 영화인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 만났고 어쩌다 충무로 부근의 거리에서 마주치면 버릇처럼 같은 인사말을 반복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특유의 큰 입에 미소를 담아 아주 상냥하고 밝게 무슨 사업을 한다고 말했지만 한 번도 자신 있게 일의 결과물을 기쁘게 자랑하던 일도 기억에 없다. 한 때는 사업으로 레스토랑을 한다는 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연기활동 이면의 사생활은 새 작품에 출연하게 될 때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배역을 소개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그늘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들리는 소문도 그가 영화 밖의 다른 일로 성공했다거나 행복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한번도 전해준 적이 없었다.


김추련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영화 ‘빵간에 산다’의 한 장면


영화배우로서도 그는 알 수 없는 생애를 보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1974년 <빵간에 산다>로 연기를 시작해 <겨울여자>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그의 그 후 활동은 작품의 흥행과 관계없이 그렇게 윤기를 내지 못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40여 편이 넘는 연기자로 한 때는 영화사까지 차렸으나 그의 활동모습은 시작도 끝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스캔들 같은 큰 사건은 없었지만 결혼생활을 비롯한 가정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남자다운 섹슈얼한 개성미로 상징되는 매력 있는 배우가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힘들고 외롭게 살아야 했던 이유를 선듯 밝힐 수가 없다. 그렇게 살게 된 이유가 투쟁적이지 못한 소심하고 약한 성격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겨울여자>에서 김추련을 발탁한 김호선 감독도 그런 쪽으로 보고 있다. 다소 야성적인 인상과 달리 마음씨가 여성적이고 매우 여리다는 점이 그의 삶을 비운으로 안내한 원인이라는 시선이다. 그렇다 해도 착한 마음이 불행해진다는 것은 역설이지 정답은 아니다.
65살로 떠난 김추련의 생애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비운의 생애는 아니었을까? 그는 필자의 눈에 늘 겨울남자로 비쳐졌다. 찬바람이 불어와 은행잎이 도로를 노랗게 덮은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김추련은 저 먼 남쪽의 연고를 알 수 없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살다가 눈을 감았다. 그의 지난 생애를 생각해 보니 그의 인생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 안가는 일들이 물안개처럼 뿌옇게 피어오른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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