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관광지로 거듭 난 베니스의 힘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 난 베니스의 힘
  • 김세원
  • 승인 200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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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든 베니스비엔날레의 위력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지난해 6월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숙소를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격년제인 베니스 비엔날레(6월 10일~11월 21일), 연례행사인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6월 13~17일), 5년 주기의 독일 카셀 도쿠멘타전(6월 16일~9월 23일), 10년마다 열리는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6월 26일~9월 30일) 등 유럽의 대형 현대미술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의 시작 장소가 베니스인 때문이었다.



일주일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웹서핑을 한 끝에 떠나는 당일 아침에서야 겨우 숙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마르코 폴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베니스 영화제 개최지로 유명한 리도 섬에 내려 버스와 택시를 갈아탄 끝에 새벽 1시를 훌쩍 넘겨서야 입간판도 없는 숙소에 도착했다. 붉은 공단 벽지와 고풍스런 가구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예약한 숙소는 15세기에 지어진 여관이었다.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요, 실내는 미술관이란 말이 실감났다.



카페 플로리안에서
물의 도시 베니스는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인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맞아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베니스의 랜드마크 산마르코 성당 앞의 아케이드에 자리 잡은 카페 플로리안에선 수 세기 전 이곳을 자주 찾았던 장 자크 루소, 바이런, 괴테, 바그너, 조르주 상드 같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앉았던 그 자리에 전 세계에서 몰려온 국제적 화상과 콜렉터, 예술가들이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저녁이면 플로리안의 전속 악단이 연주하는 푸니쿨리 푸니쿨라, 산타 루치아, 축배의 노래 같은 이탈리아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가 산마르코 광장을 휘돌며 잠자는 에로스의 본능을 깨웠다. 하긴 로리안은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지금 막 로마신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과 조각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이탈리아 꽃미남과 로망스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다. 이우환, 김창열, 로랑 헤기 생테티엔느 미술관장, 후안 푼테스 뉴욕 화이트박스 미술관장 같은 현대미술의 대가들과 함께 300년 역사의 카페 플로리안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황홀한 경험이었다.





베니스의 영화와 전락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배경이 되기도 한 베니스는 1000년간 독자적인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며 지중해의 상권을 제패했던 해상 강국이었다. 십자군 원정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고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베네치안 고딕의 걸작 두칼레 궁전 내부나,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이자 천사들의 계보가 자세하게 묘사된 틴토레토의 ‘천국’(1590), 공국을 통치했던 총독 76명의 초상이 걸린 대회의실의 규모를 통해 베니스공국이 누렸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베니스는 1805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점령당한 뒤 이탈리아 반도 최강의 도시국가에서 일개 도시로 전락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갯벌에 박은 150만개의 말뚝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가옥, 120여개의 섬을 잇는 170여개의 운하와 480개의 다리, 미로처럼 얽힌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인 독특한 구조 덕분에 베니스는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변신하는 데는 성공한다. 운하를 오가는 곤돌라, 환상적인 카니발 가면,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품도 관광도시 베니스의 명성을 높여주는데 한 몫 했다.



문화예술의 힘
하지만 베니스를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아닐까 싶다. 112년 전인 1895년 시작된 이래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몇 번 중단되기도 했으나 2차대전 이후 팝아트 등 첨단 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권위 있는 미술제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초현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를 꽃피우게 했던 전설적인 콜렉터 페기 구겐하임이 베니스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르네상스 시대 귀족 저택인 팔라조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를 사들여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게 된 것도 비엔날레의 영향이 컸을 터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01년 구찌 그룹을 인수한 프랑스의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는 베니스 그란데 운하에 있는 팔라조 그라시를 사들여 개인 미술관으로 개조한 뒤 자신의 방대한 미술품을 다양한 주제로 엮어 전시 중이다. 찬란했던 과거를 끄집어내 되새김질하는 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전통을 팔아 명맥을 이어가던 베니스를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든 것은 문화예술의 부드럽지만 강한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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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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